[백영옥의 말과 글] [188] '레디, 액션'에 걸리는 시간

백영옥 소설가 2021. 2. 20.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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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월부터 새벽 5시 기상을 시도 중이다. 전투적인 1월을 보낸 탓인지, 오전 10시의 낮잠이라는 부작용에 시달리며 자주 소파에 누워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렇게 비몽사몽간에 읽은 이왕주의 ‘쾌락의 옹호’에서 이 문장을 발견했다.

“‘옛날 중국에 추앙추라는 유명한 화가가 있었다. 어느 날 황제가 그에게 ‘게’ 하나를 그려달라고 했다. 추앙추는 열두 명의 시종과 집 한 채, 그리고 5년의 시간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5년이 흘렀으나 그는 아직 그림을 시작하지도 않았다. 추앙추는 5년을 더 달라고 했고 황제는 이를 수락했다. 10년이 지날 무렵 추앙추는 붓을 들어 먹물에 찍더니 한순간에, 단 하나의 선으로, 이제까지 보았던 것 중에 가장 완벽한 게를 그렸다.’”

이 이야기는 느림을 칭찬한 것일까, 속도를 칭찬한 것일까. 빠름은 종종 느림을 전제로 한다. 1만 시간 이상의 연습을 통해 5분 만에 곡을 쓰고, 30분 만에 코딩을 끝낸 작곡가와 프로그래머가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결과를 보기에 과정의 지난함을 잊는다. 임스체어로 유명한 임스는 “의자 디자인 아이디어는 어떻게 떠오른 겁니까”라는 질문에 “그건 한 30년 동안 떠오른 거예요”라고 답한다.

촬영 현장에서 ‘레디'와 ‘액션’은 감독이 가장 자주 외치는 말이다. 촬영장을 본 적이 있는데, 몹시 슬픈 장면인데도 촬영 전 배우는 웃으며 스태프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다음 장면의 감정을 준비하기 위해 비통해할 것이란 내 생각이 무너진 것이다. 훗날, 개봉한 영화를 보니, 사람들은 그 장면을 명장면으로 꼽았다. 배우에게 ‘레디’는 촬영하기 전 짧게 준비하는 순간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것은 한 배우가 그 장면을 위해 일생을 연습하고 준비해온 기간인 셈이다.

내가 뒤늦게 아침형 인간이 되고 싶었던 건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새벽에 일어나니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잡아먹지만 역시 일찍 존다’는 말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이 또한 시간이 필요하니, 하루아침에 되는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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