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름길의 덫[동아광장/최인아]
좋아하는 일 다양하게 시도하며, 끈기 있게 시간 들여 연마해야
축적된 시간이 자아의 기립근 된다
종종 기업 강연을 한다. ‘생각하는 힘’ ‘큐레이션’ ‘퍼스널 브랜딩’ ‘여성 리더십’ 등이 주된 주제인데 강의를 시작할 때 나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저는 답을 알려드리지 않는다. 오히려 여러분을 흔들어 놓을 거다. 그러니 강의를 마치고 혼란스럽거나 헷갈리시면 오늘 강연이 효과가 있는 것이다”라고. 이렇게 말하는데도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달라는 질문이 꼭 나온다. 그러면 난감하다. 방법을 알려주지 않겠다는데 그걸 물어서가 아니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본강연에서 이미 내가 생각하는 해법을 말했기 때문이다. 해법을 말했는데 또 방법을 알려달라니! 이런 경우를 반복적으로 겪으면서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것’을 원한다는 것, 음식으로 치자면 간편 조리식이나 인스턴트를 찾는다는 것을.
음식 얘기를 더 해보자. 재료를 다듬거나 시간을 들여 요리하는 수고가 없이 바로 먹을 수 있으니 좋기만 할까? 그렇지 않다. 인간이 하는 일에는 숙제를 남기지 않는 게 별로 없어서 편리함을 취하면 반드시 놓아야 하는 게 생긴다. 신선하고 좋은 재료가 주는 고른 영양이 그렇고, 요리하는 과정에서 쌓이는 손맛이 그렇다. 애써 준비한 음식을 다른 이들이 맛있게 먹을 때의 기쁨도 느끼기 어렵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지름길을 찾는다. 하지만 지름길엔 덫이 있어서 지혜와 경험이 쌓이지 않는다. 속성반으론 시험 성적은 오를지언정 영어 실력은 잘 붙지 않는 이치다.
젊은 세대는 앞선 세대처럼 무조건 일하지 않는다. 왜 해야 하는지 따져 묻고 수긍이 가야 비로소 시동을 건다. 100만 부나 팔린 베스트셀러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라는 책의 제목이 보여주듯 중심에 내가 있고 내 인생을 살고 싶어 한다. 북돋아줄 일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원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은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는 거다.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으면 다양하게 시도해 보라는 말에 한 가지를 더 보태고 싶다. 시간을 충분히 들이라는 거다. 책방을 찾은 한 친구가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다. 여러 회사에서 몇 달씩 인턴을 해봤지만 여전히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이 친구가 빠뜨린 게 바로 시간을 들이는 것이다. 물론 짧은 인턴 기간에 첫눈에 반하듯 운 좋게 그 일이 좋아질 수도 있다. 하지만 무언가가 좋아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처음부터 흥미를 느끼진 않았지만 이렇게 저렇게 해보는 사이 겉에선 보이지 않던 속살이 보이면서 재밌어지고, 도무지 되지 않던 것이 어느 날 쓱 되면서 재밌어지고, 좀 더 중요한 일을 받아 일의 핵심에 닿게 되면 또 한번 재밌어진다.
책방 일도 그렇다. 처음엔 클라이언트의 동의 없이 내가 생각하는 걸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재밌었다. 그 다음엔 독특한 큐레이션 등 우리가 기획한 것이 통할 때 기뻤고 좀 더 지나니까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어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어 좋았으며 최인아책방이 하는 거라면 신뢰가 간다는 평에 흐뭇하다. 코로나 고비를 넘고 나면 어려움을 넘어선 자가 느끼는 기쁨 또한 알게 될 거라 기대하고 있다.
나태주 시인은 ‘풀꽃’이란 시에 이렇게 썼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일도 그런 것 같다. 좋아하는 일, 재밌는 일이란 시간의 선물이다. 고병권 선생은 ‘철학자와 시녀’에서 철학한다는 것, 생각한다는 것은 지름길을 믿지 않는 거라 썼다. 동의한다.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은 당장의 방법을 구하는 대신 시간을 들여 길을 구하고, 그렇게 애쓰는 사이 축적된 것들이 훗날의 자산이 되고 자신을 붙잡아 주는 기립근이 된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니 당신이 무얼 좋아하는지 모르거나 여전히 단기 속성반을 찾고 있다면 지름길의 덫에 빠진 게 아닌지 돌아보시라. 좀 위악을 섞어 말해 보자면 지름길을 찾는 것은 노력하지 않고 열매를 얻자는 마음에 다름 아니다.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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