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소리로 세계를 탐구하는 사람들

신예슬 음악평론가 2021. 2. 2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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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해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들’(Unheard Voices)이라는 전시를 기획했다. 음악·사운드를 다루는 아트 인큐베이터의 페스티벌 ‘ATM2020: 메가폰’에서였다. 제목에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여기서 다룬 것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신예슬 음악평론가

전시가 열렸던 문화비축기지에는 자연, 동물, 기계소리, 인간의 귀로 듣지 못하는 저주파와 고주파, 필드 레코딩, 상상의 소리 풍경을 다룬 작업이 한데 모였다. 전시 목적은 음악 바깥, 그리고 인간 바깥의 세계를 탐구하고 상상하는 작업을 함께 들어보는 것이었다. 이는 인간에게만 특권적으로 부여된 목소리라는 개념을 다른 주체에 적용해보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모든 참여작이 탈인간중심적 사고에 입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이 이에 관해 고민해볼 만한 이야깃거리를 던져주었다.

예컨대 류한길은 ‘소시오프리컨시’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곰팡이는 비록 뇌가 없지만 군집을 형성하면 어떤 의지를 통해 확산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처럼 우리가 인간중심적 시선을 걷어내면 인간 없이 지속되는 세계를 생각할 수 있고, 인간 없는 세계의 모든 구성물들은 고유의 사회성을 가질 것이다.” 이런 가정에서 출발한 그의 작업 소시오프리컨시는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주파수 조직체를 만든다. 이를 통해 그는 “인간 중심 세계에 대한 허구적 대안을 상상”한다. 한편 에이스케 야나기사와는 ‘울트라소닉 스케이프’에서 박쥐 탐지기로 도심 속 곳곳에서 들려오는 초고주파를 잡아내어 이를 가청 음파로 변환시켜 들려준다. 전형산은 ‘불신의 유예#3; contact’에서 인간의 가청영역을 벗어나지만 세계에 분명히 존재하는 주파수를 잡아내 이를 해체하고 재배치한다. 공간에 넓게 울려 퍼지는 저음과 간헐적으로 점멸하는 빛을 보고 들으면서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여기에 어떤 함의가 있는지 단번에 파악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영역 밖에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이승린은 ‘비인간 존재들의 존재론적 지대에 다가가는’이란 제목의 글을 썼다. 소리문화연구자이자 필드 레코디스트인 그에게 “필드 레코딩은 현장연구의 연장선으로서 청각을 앞세워 시각 지형과는 ‘다른 것’을 더듬어보려는 또 다른 방법론적 시도”다. 그는 인류학에서 민족지의 주요 연구 대상이었던 문화를 인간의 활동 바깥으로 확장시켜 자연을 문화적 연구대상으로 바라본다. “내가 잘 모르는 세계에 나의 ‘상상력’으로 얼마나 근접하게 다가갈 수 있는지 실험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말하는 그의 시도는 이를테면 ‘자연의 소리문화’를 탐구하는 것으로 읽힌다.

또 전시에서 직접 다루진 않았지만 리서치 과정에서 알게 된 노르웨이 작가 야나 빈데른은 깊은 물속이나 얼어붙은 수면 아래 소리를 채집하고, 그 안의 유기체들을 관찰해왔다. 최근 BBC에 소개된 해양소음 연구를 접한 뒤 그의 작업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연구진은 해양에서 동물들이 주고받는 건강한 음파들을 추적하며, 인류의 해양소음이 해양 동물의 소통과 사회관계망을 이루는 소리문화를 교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두 사례를 나란히 놓아보며, 일찍이 예술 영역에서 이루어진 다른 소리세계에 대한 탐구가 실제 세계와 어떻게 조응할 수 있을지 상상해볼 수 있었다.

전시·기획 과정에서 만난 작업들을 통해 나는 인간 너머에 수많은 소리세계가 있음을 배우고, 직접 내 귀로 들어볼 수 있었다. 물론 우리의 귀는 인간문화에 맞게 프로그래밍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 신체로 다른 세계를 탐구하는 것은 많은 불가능성을 전제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우리의 삶과 교차하는 다중적인 소리의 장을 주의깊게 들여다보려는 시도를 통해 세계를 조금이나마 다르게 그리고 풍성하게 인식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신예슬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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