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고민하는 공연계, 지속가능한 예술 나눔의 시작

김기윤 기자 2021. 2. 2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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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국립극단에서 무대 소품, 세트를 보관 중인 창고. 역사극에 쓰이는 다양한 전통용품부터 가면, 문구류를 비롯해 웬만한 생활용품이 다 있다. 이와 별도로 무대의상 창고에도 수많은 의상을 보관 중이다. 국립극단 제공
“이번 앨범 홍보를 위한 세계 투어(콘서트)는 하지 않겠다.”

영국의 세계적 록 밴드 콜드플레이의 리더 크리스 마틴은 2019년 말 새 앨범을 발표하며 이같이 선언했다. 공연하는 곳 어디에서든 수천억 원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이들이 이 같은 결정을 한 이유는 다름 아닌 환경 보호.

공연과 환경이 도대체 무슨 상관인가 싶은데 마틴은 꽤나 깊은 고민 끝에 진지한 답변을 내놨다. 이들이 타고 다니는 비행기부터 대형 공연 장비 운반, 공연 중 발생하는 쓰레기, 관객들이 먹고 마시고 이동하는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이 환경 보호에 반한다는 것. 그는 “환경적으로 유익한 방법을 찾기 위해 앞으로 2, 3년 정도 공백 기간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단체들이 유명인의 결단에 흡족해한 것은 물론이고 아쉬워하던 팬들도 이내 그의 결정을 지지했다. 다른 해외 아티스트도 이에 공감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친환경 공연’ 실천에 동참해 왔다.

최근 국내에서도 공연 제작 과정에서 환경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태동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공연계가 초토화됐지만, 팬데믹은 지구와 환경을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지난달 김광보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공연 제작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탄소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공연을 준비하는 데 제약이 따를 수 있지만 연극계도 중요하게 인식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기 중 청사진과 운영 계획을 밝히는 자리였던 만큼 아직 구체적 방안이 마련된 것은 아니다. 공연계에서는 “국립 기관이 작품 주제가 아닌 제작 과정에서 환경 보호를 언급한 건 처음이다. 고무적이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김 감독은 최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그간 연출 작업을 하면서 무대 세트를 막판에 다 들어냈던 경험이 있다. 전부 탄소를 과다 배출하고 돈을 까먹는 일이다. 돌이켜 보면 조금 먼저, 치밀하게 움직였다면 다 막을 수 있었던 일”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연습 과정 중 세트, 소품을 새로 만들고 쓰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이 같은 낭비를 줄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공연계 풍토를 단번에 바꿀 수 없기에 국립극단은 작은 것부터 시도할 방침이다. 우선 소품, 세트, 장비 등을 무상으로 대여하고 공유하는 플랫폼을 구축한다. 민간 공연단체도 이를 빌릴 수 있다. 이를 위해 현재 창고에 보관 중인 소품, 의상, 장비를 점검해 목록을 작성하고 있다. 국립극단의 윤리헌장에도 환경 보호 관련 항목을 넣을 계획이다. 김 감독은 “물리적으로 이를 보관할 창고와 여력을 갖춘 국립 기관이 캠페인을 시작한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했다.

그간 국내 공연계에서 ‘친환경 공연’을 만들려는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공쓰재’(공연 쓰레기 재활용 커뮤니티)는 “공연과 환경이 공존하며 지속 가능한 형태로 나가는 방법”을 고민하던 일부 연극인들이 2013년 만들었다. ‘당근마켓’처럼 쓰고 남은 물품을 커뮤니티에서 교환하는 식이다. 지금도 일부 물품이 교환되고 있지만, 활성화되진 않았다.

뮤지컬 ‘위키드’의 친환경 패키지 굿즈. 클립서비스 제공
친환경 굿즈 판매는 제작사가 곧바로 실천할 수 있는 환경 보호 방법 중 하나다. 최근 개막한 뮤지컬 ‘위키드’는 일상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자는 취지로 ‘친환경 에디션’ 굿즈 패키지를 17일 선보였다. 종이와 면으로 만든 파우치, 손수건으로 굿즈를 제작했다. 이는 환경, 동물이 등장하는 ‘위키드’의 메시지와도 맞닿아 있다.

하지만 여전히 현장 인식은 저조한 편이다. 지난해 7월 ‘연극in’이 공연계 관계자 5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다수는 불필요한 무대장치와 세트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공감하면서도 응답자의 70%는 제작 과정에서 겪은 환경 문제에 대해 ‘잘 인식하지 못하는 편’이라고 답했다. 김 감독은 “예술지상주의를 추구하는 이들을 존중하기에 절약을 무조건 강요할 순 없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공연을 고민하는 움직임은 시대적 흐름”이라고 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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