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재난지원금과 재난 자본주의
[경향신문]
재난지원금 관련, 논의가 다양하다. 그 핵심 하나는 선별지원이냐, 보편지원이냐다. 실은, 이것만도 우리 시민사회 수준이 꽤 높다는 증거다. 왜냐하면 논리적으로 ‘시장경제’에선 국가의 계획적 지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좌우를 떠나, 국가의 지원·통제가 없는 시장경제는 실존하기 어려움을 안다. 시장·국가 간 대립은 이론일 뿐, 현실은 둘의 융합이다. 좌우파의 입장 차이조차 대개 ‘정도 차이’일 뿐이다. 나라 살림을 총책임지는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정도 차이만 있을 뿐 코로나19 위기로 어려움에 빠진 상공인을 국가가 지원하는 데는 반대하지 않는다. 이미 “매출 10억원 이하 소상공인, 4차 재난지원금 지급 검토” 중이라고 국회에서 밝혔다. 나아가 코로나19 방역 조치에 따른 ‘손실보상제’ 도입까지 연구 중이다.
물론 부총리는 보편적(전 국민) 지원은 반대한다. 최근에도 “전 국민에게 드린 1차 재난지원금이 14조3000억원”인데 “한국개발연구원(KDI) 분석으로는 지원 금액의 30%가 소비 진작에 기여”했음이 확인됐다고 했다. 무려 14조원 소요된 보편지원도 30% 효과밖에 없다니, ‘가성비’가 낮은 편이다! 여전히 경제는 ‘돈맥경화’다.
정부는 이미 3차 재난지원금 때 연매출 4억원 이하 소상공인 280만명, 영업제한 자영업자 81만명, 집합금지 소상공인 약 24만명에게 각각 100만~300만원씩 지급했다. 4차 지원은 연매출 10억원 이하까지 확대한다고 한다. 게다가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 5~6명 정도의 영세기업이나 노점상·플랫폼노동자 등에 대한 지원 역시 검토한다. 이 입장 변화는 아무래도 보편 지원을 요구하는 사회여론 덕이다.
이렇게 1년 넘게 이어지는 코로나19 재난으로 생존위기에 빠진 민생을 챙기는 건 긴요하다. 그러나 재난지원의 사회적 공론장에도 3가지 사각지대가 있다.
첫째, 국가가 앞장서 민생을 챙기는 건 ‘경세제민(經世濟民)’ 원리에도 맞다. 하지만 문제는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할 때 올 수 있는 ‘총체적 파산’이다. 정부 예산 규모는 2000년 92조원대에서 2010년 292조원대, 2020년 482조원대, 2021년 558조원대로 해마다 빠르게 급증하고 있다. 더 놀라운 건 국가가 진 채무가 2012년 443조원대, 2020년 815조원대에서 2021년 900조원대로 치솟는 것이다. 가히 ‘빚더미 공화국’이다!
5000만 국민의 절반이 매일 열심히 일하는데, 정부 예산만 어림잡아 600조원에 빚만 900조원이라니, 게다가 가계부채도 1600조원 이상이다. 기업부채와 공공부채까지 합친 국가총부채는 5000조원이다! 국민 1인당 평균 빚이 1억원이라니? ‘설마 나라가 망할까?’ 싶어도, 25년 전 ‘외환위기 트라우마’처럼 설마가 사람 잡는다!
둘째, 빚더미 공화국 안에서도 사회경제 양극화가 심각하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보라. ‘재벌닷컴’에 따르면, 총수 있는 10대 그룹 상장사의 최근 시가총액이 약 650조원으로,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 시가총액의 약 53%다. 사상 최고다. 최근엔 카카오나 네이버 등 디지털 재벌 역시 매년 신기록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온라인 수업·회의·토론 관련 상품도 인기다. 주식(금융)이나 부동산까지 거품이 충만한 활황(?)인데, 반면 실물경제는 정체·침체일로다. 청년들은 사회에 진출하자 마자 고용절벽에 서 있고 노동자들은 고용불안과 산업재해, 스트레스로 힘들다. 600만 자영업자 중 70% 이상은 파산 공포다. 이런 질문이 절실하다. 정부가 혈세를 부단히 쏟아붓는데, 어찌하여 ‘민생’은 나아지지 않고 돈이 엉뚱한 데로 흘러가나. 한쪽에는 돈 홍수, 다른 쪽엔 돈 가뭄, 이 모순을 어떻게 풀까.
셋째, 선별·보편 지원금이건, 기본소득·사회복지 방식이건 대중 구매력을 높이고 상공업을 살려 결국 ‘상품-화폐-노동-자본’의 시스템을 지속하려는 프로그램은 지속 가능성이 문제다. 실은, 재난이나 위기를 활용해 무한이윤을 추구하는 ‘재난 자본주의’만 좋은 일이다! 개별 기업이나 상인의 흥망성쇠와 관계없이, 화폐-상품 관계 전반을 지양하지 않으면 늘 가성비 없는 헛발질이다.
생각건대 우리는 각종 위기 때마다 단기처방에만 몰두한다. 좌우간 정도 차이를 넘어 상품·화폐가치 시스템 자체를 지양하려는 중·장기 안목은 어디에 있나. 돈벌이를 넘어 진정한 살림을 추구하는 새 시스템을 상상·실천하지 않으면 오류만 반복하다 공멸한다. 현실의 참상을 보는 따뜻한 눈도 필요하나, 그 참상의 깊은 뿌리를 보는 지혜의 눈이 더 절실하다. 익사 직전의 인명을 구하면서도, 홍수가 반복되는 원인을 봐야 하니까.
강수돌 고려대 교수·세종환경운동연합 난방특위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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