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근의 묵언] 백기완 선생께서 묻고 있다

김택근 시인·작가 2021. 2. 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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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하늘이 큰일을 맡길 때에는 그 몸을 수고롭게 하거늘 필시 천명(天命)을 받음일 것이다. 붓을 들면 비와 바람이 숨을 죽였지만 길 위에 서야 했다. 길에서는 묘수와 재주가 통하지 않는다. 높고 낮음이 없다. 백기완 선생. 그는 평생을 세상의 가장 아픈 곳에, 서러운 곳에 있었다. 고문을 당해 육신이 으스러졌어도 포효했다.

김택근 시인·작가

시위 현장마다 선생의 백발이 깃발처럼 나부꼈다. 우리 시대 아주 익숙한 삽화였다. 많은 이들이 영웅적 서사로 선생의 투쟁을 감싸지만 거리의 투사는 지독하게 고독했을 것이다. 용기만이 공포와 유혹을 떨쳐낼 수 있지만 무작정 저항하는 맨 용기였다면 한시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진정한 용기는 스스로에게 비겁하지 않아야 했다. 날마다 자신의 둥지를 부수고 퇴로를 끊었다. 선생은 스스로를 다스렸기에 자신에게서 도망치지 않았다. 비로소 벼랑 끝에서 손을 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불의에 맞서는 ‘장산곶매’가 되었다.

길가의 꽃과 나무는 그대로 의젓했지만 해마다 사람들 얼굴은 달라졌다. 어느 날 둘러보니 구호가 어설프고 대열이 성글었다. 한평생 함께 나가자던 맹세는 여전히 뜨거웠지만 길 위의 동지들은 보이지 않았다. 비단 옷을 걸친 가슴들은 시나브로 식어갔다. 세력을 잃었으니 ‘재야’라는 말도 희미해졌다. 그럴수록 정신을 차려야 했다. 현장을 놔두고 떠날 수는 없었다. 광장에 남아 함께 울었다. 하지만 남아있는 혁명의 시간은 짧았고 끝내 울음에 피가 섞였다.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났다. 그를 본 적이 없는 사람도, 또 그를 미워했던 사람조차도 불현듯 광장을 떠올렸다. 하얀 두루마기 하나로도 광장을 가득 채웠는데 그가 떠나갔구나. 선생과 동행했던 한 시대가 저물었구나. 그때는 마냥 순수했구나. 이제 누가 있어 저 광장에서 노래하고 춤출 것인가. 선생은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함께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었다. 떠난 자리가 이리 클 줄은 몰랐다. 추워진 후에야 송백(松柏)이 뒤에 시드는 줄 알았다. 지나고 보니 홀로 푸른 사람이었다.

선생이 병상에서 마지막으로 쓴 글씨가 “김진숙 힘내라”였다. 죽을힘으로 쓴, 삐뚤빼뚤한 글씨가 가슴 한 조각처럼 느껴졌다. 인간을 진정으로 껴안았던 사랑의 문신이었다. 노동자가 억울하게 죽는 일, 억울하게 해고되는 일은 없게 하자는 마지막 당부였다. 한때는 동지였던, 지금도 분단의 조국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과거의 동지들에게 남긴 유언이었다. 그러고 보면 마지막에 머문 병상도 현장이었다.

“김진숙 힘내라”는 여섯 글자를 받쳐 들어야만 하는 해고노동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차라리 뭉쳐서 투쟁했지만, 정권이 바뀌고 주변 사람들이 정권 인사가 되자 더 어렵고 외로웠다. 거의 유일하게 남아계셨던 분이 백 선생님이었다.”(경향신문) 그는 암투병 중임에도 부산에서 서울까지 걸어와 청와대를 향해 외쳤다. 그의 외침은 군더더기가 없었다. 힘줄이 보일 만큼 투명했다.

“전두환 정권에서 해고된 김진숙은 왜 36년째 해고자인가. 그 대답을 듣고 싶어 34일을 걸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약속들이 왜 지켜지지 않는지 묻고 싶어 한 발 한 발 천리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36년 동안 나는 유령이었습니다. 자본에게 권력에게만 보이지 않는 유령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내가 보이십니까. (…) 민주주의는 싸우는 사람들이 만들어왔습니다. 과거를 배반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입술로만 민주주의를 말하는 자들이 아니라, 저 혼자 강을 건너고 뗏목을 버리는 자들이 아니라, 싸우는 우리가 피 흘리며 여기까지 온 게 이 나라 민주주의입니다.”

앞서간 백기완 선생이 산 자들에게 묻고 있다. 새날을 열겠다는 초심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도대체 당신들이 서있는 곳이 어디인지, 또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묻고 있다. 미움보다 무서운 것이 있으니 무관심이다. 김진숙의 마음 하나 얻지 못하면서 어찌 하늘을 우러러볼 것인가.

삼가 선생의 야윈 볼에 흐르던 눈물을 기억한다. 눈물의 대통령 백기완, 아주 좋은 봄날 선생의 무덤가에는 그 눈물을 먹은 꽃들이 피어날 것이다. 그것은 지조(志操)의 문장(文章)일 것이다. 그 앞에서 옷깃을 여미고 스스로 의관(衣冠)의 도적은 아닌지 살펴야 할 것이다.

김택근 시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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