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인문정원] 국가라는 우상에 대하여

남상훈 2021. 2. 20.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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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9월 16일 새벽, 경기도 화성의 한 주택에서 13세 소녀가 살해되었다.

화성 살인사건의 경찰 수사 과정에서 무고한 용의자들은 소름끼치는 국가 폭력으로 짓밟혔다.

국가라는 우상이 거머쥔 권력이 폭력의 정당화에 기반을 두고 있는 한에서 나는 국가의 달콤한 약속("광주에서 민간인 학살은 없었다", "대학 등록금을 반값으로 내리겠다", "부동산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 등등)을 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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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폭력 주체이면 변화 못해
무고한 국민 피해 막는 건 우리 몫

1988년 9월 16일 새벽, 경기도 화성의 한 주택에서 13세 소녀가 살해되었다. 화성 연쇄 살인사건으로 뒤숭숭하던 때였다. 경찰은 같은 동네에 사는 22세 청년 윤씨를 용의자로 붙잡았다. 윤씨는 집에서 잠을 자다가 들이닥친 경찰에 끌려가 고문을 받고 제가 죽였다고 허위 자백을 했다. 그는 자신과 상관없는 형사 사건에서 줄곧 무죄를 주장하는 목소리를 냈지만 대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피해자는 윤씨 말고도 더 있었다. 당시 경찰은 16세에서 41세까지 남성 여섯 명을 용의자로 지목했다. 이들은 가혹한 고문과 구타를 당했다. 그 후유증으로 16세 소년은 뇌사를 하고, 세 사람은 자살했으며, 한 사람은 정신분열 증세로 병원 신세를 졌다. 윤씨가 19년 6개월 감옥살이를 하고 가석방된 뒤에야 진범이 나왔다.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이 자기 짓이라고 자백했다. 윤씨는 무죄가 확정되어 형사보상금을 받게 되었지만 살인범의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한 억울함과 한이 쉬이 씻겨질 리는 없다.
장석주 시인
경찰은 검찰과 더불어 치안을 맡는 국가 권력의 한 부분이다. 철학자 니체가 말한 바와 같이 두 조직은 “바로 존재할 가치가 없는 이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을 위해 고안된 것”이라고 규정한 국가 권력의 말단 촉수다. 국가가 거머쥔 거대한 힘의 실체는 법과 규범 안에서 행해지는 폭력이다. 화성 살인사건의 경찰 수사 과정에서 무고한 용의자들은 소름끼치는 국가 폭력으로 짓밟혔다. 누가 이들이 당한 억울함을 보상해줄 수 있을까.

국가라는 우상이 거머쥔 권력이 폭력의 정당화에 기반을 두고 있는 한에서 나는 국가의 달콤한 약속(“광주에서 민간인 학살은 없었다”, “대학 등록금을 반값으로 내리겠다”, “부동산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 등등)을 믿지 않는다. 국가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국가는 폭력 주체인 한에서 도덕과 정의의 면류관을 쓴 우상에 지나지 않는다. 철학자 니체는 “좋은 사람 나쁜 사람 가리지 않고 모든 백성이 독배를 들어 죽어 가는 곳, 그곳을 나는 국가라고 부른다”고 말한다. 니체는 국가가 감춘 추악함과 기만성을, 거짓말과 가면으로 가린 비루함의 실체를 폭로한다. “국가는 선과 악이라는 말을 다 동원해 가며 사람들을 기만한다. 국가가 무슨 말을 하든 그것은 거짓말이다. 그리고 국가가 무엇을 소유하든 그것은 그가 부당하게 취득한 장물에 불과하다.”(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영토, 국민, 주권을 토대로 이루어진 상상의 동맹체에서 국민은 노동과 납세와 병역의 중요 자원이다. 국민을 포획하고, 그 자원을 부당한 방식으로 전유하는 국가는 니체의 명명대로 ‘우상’이고, 성경 묵시록에서 말하는 ‘짐승’이며,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가타리에 따르면 ‘전쟁-기계’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치안을 핑계 삼아 무고한 자를 붙잡아 고문을 하고(“네 죄를 자백하라!”), 무자비한 짐승같이 노동 소득을 세금 따위로 착취하며(“국가 때문에 돈을 벌었으니 국가에 세금을 바쳐라!”), 베트남전 같이 우리와 상관없는 위험한 전쟁에 청년들을 동원한다(“네 피와 생명을 국가 경제를 살찌울 달러와 맞바꿔 오라!).

우리는 이 우상이 무고한 국민에게 얼마나 쉽게 폭력을 쓰는가를 보아왔다. 이것은 정말 거대해서 한 걸음 떨어진 자리에서 바라보아야만 그 실체가 또렷하게 드러난다. 우매한 애국주의와는 멀리 떨어진 언덕에 서서 보라! 국가 권력이라는 우상이 무너진 자리에 “무지개와 초인에 이르는 다리가 보이지 않느냐?”(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고, 니체는 묻는다. 그 다리를 놓는 일이 자신의 길을 찾아 자신의 길을 가야 하는 우리 몫이 마땅하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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