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이번 명절에도 北에 갈 수 없었지만..
北 낱말 '무리등' '내민데' 아리송
南선 '쿼텟 공연' 등 외래어 범람
겨레말큰사전 빨리 편찬해야
나의 스승은 북한 원산이 고향이다. 추석이나 설날이 되면 마음이 울적해 낮술도 드시곤 했다. 매스컴에서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었습니다’란 보도가 나오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북한에 어머니와 형님을 두고 단신 월남했기에 그리움과 향수로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탈북자들이 나와서 남북한 문화의 차이를 말해주는 프로가 있다. 분단 70년이 넘어가니 사고방식, 생활습관, 관혼상제 등 많은 것이 달라졌는데 특히 언어생활에서 달라진 것이 많아 이산가족이 만나도 소통이 될까 의심스러울 정도다.
낱말에서도 많은 차이를 보이는데 냉장고:랭동기, 볶음밥:기름밥, 라면:꼬부랑국수 등은 일부 예에 불과하다. 외래어 표기는 남한 말과 같은 것이 거의 없을 정도다. 샹들리에:무리등, 베란다:내민데, 컨테이너 트럭:뒤주차, 트랙터:뜨락또르, 도넛:가락지빵 등을 보면 남한에서는 외래어를 발음 나는 대로 쓰는 반면 북한에서는 우리말로 고쳐 쓰는 경향이 있다.
국내 모 신문사에서 1995년 3권짜리 ‘해방 50년 한국의 소설’을 펴냈는데 여기에 북한소설 9편을 실었다. 당이나 작가동맹의 주문대로 쓴 것이 아닌, 북한의 소설로서는 드물게 이념적 색채가 옅고 문학적 성취도가 높은 작품을 골랐다. 이 가운데 1992년 북한에서 발표된 ’삶의 향기’란 소설을 읽다가 스무 번 이상 밑줄을 쳤다. 이해 못할 표현이 나와서 사전을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어자어자 키워선지/ 골살을 찌푸리며/ 에어린 발은 인차 퉁퉁 부어올랐고/ 외태머리의 동실한 얼굴/ 야회가 끝난 서느러운 저녁/ 승벽내기로 울어대는 매미들/ 사도공으로서 남을 돕는 데/ 도토리알같이 홀앗이 살면서/ 처녀의 깐진 일솜씨/ 그런데 또 엇서지 않을까?/ 안천주는 인츰 머리를 들었다./ 허리를 갑신갑신 꺾으며/ 호협한 총각/ 곱게 핀 만병초처럼/ 허우룩한 감정이 가슴을 알알이 파고든다./ 호함진 눈/ 애모쁜 마음으로 초연히 앉아 있을 아내/ 아이의 밸풀이로만 생각하면서/ 나는 강잉히 앞서 걸었다./ 똑똑하겠군. 이악하겠어…./ 피타게 노력하고 있는 가정
30년 전 소설인데 남한에서는 쓰지 않은 표현이 20개 이상 나오는 걸로 봐서 언어격차가 그간 여간 크게 벌어진 게 아니다. 북한소설을 읽으려면 큰 국어사전을 갖다놓고 일일이 찾아가며 읽거나 네이버 사전을 일일이 검색하며 한다. 그런데 누가 이런 수고를 해가며 북한소설을 읽을까?
통일을 앞둔 서독과 동독의 문인이 서로의 작품을 읽고 문학적 교류도 갖고 논쟁도 벌였다. 우리라도 남북한 언어의 공통분모를 찾아내고, 북한의 좋은 우리말을 찾아내고, 외래어를 우리 식으로 바꿔 쓴 것 중 좋은 게 있는지 찾아보는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 공연기사 제목을 보니 마린컬쳐 페스티벌 클래식 콘서트, 재즈앨리 쿼텟 공연…. 음악 분야만 이런 게 아니다. 관공서 언어치고 외래어 아닌 것이 없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파크, 반포 컬처랜드….
방송국 MBC가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와 성공적인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겨레말큰사전은 민족 언어의 유산을 집대성하고 남북 언어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 남과 북이 공동으로 편찬하는 최초의 우리말 사전이다. 사전 편찬 작업이 성공리에 끝나기 바란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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