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0대 젊은 기업가 시대' 경영철학 새물결 오나
2월 말, 대한상공회의소·한국무역협회 등 경제단체마다 수뇌부 얼굴이 새로 바뀌고 있다. 전기차·수소차·배터리·반도체·태양광·택배 배달앱 등 신산업에서 수조원대 투자, 인수·합병과 합작, 국내외 증시 상장 등 굵직한 소식들이 현기증이 날 정도로 날마다 쏟아진다. 흥행하는 스타 배우처럼 주요 기업의 젊은 회장·의장(이사회) 얼굴들도 신문·방송에 어질어질할 지경으로 연일 등장하고 있다. 어디를 둘러봐도 요즘 산업·기업 세계는 정보기술(IT) 기반 플랫폼기업 창업자부터 전통 제조업 3~4세 기업인들까지 바야흐로 ‘40~50대 젊은 기업가 시대’를 실감케 한다.
40대 김봉진(배달의민족 창업자), 50대 김범수(카카오 창업자)의 수천억~수조원 ‘재산 사회환원 행렬’은 가난한 청년 시절을 경험한 자수성가 흙수저들의 일회성 신선한 사건을 넘어, 새로운 하나의 ‘현상’과 풍속을 만들어낼지 모른다. 우리가 통념으로 알고 있던 전통 제조업 재벌기업가들의 ‘부와 기업 상속 열정’과는 뚜렷이 대비된다. 재계에 출현하고 있는 이런 맹아적 방아쇠가 가져올 파장과 장래 결과가 어떤 것일지 아직은 어렴풋하고, 그 실상을 완벽하게 파악하거나 섣불리 상상해보기도 어렵다. 희망컨대 어쩌면 사회공동체를 향한 기업가의 철학·신념이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길 위에 들어섰던 때로, 훗날 판명될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한상의 회장으로 추대된 최태원 에스케이(SK) 회장은 김범수·김택진(엔씨소프트 대표)·장병규(크래프톤 의장) 등 아이티·게임·스타트업계 40~50대 젊은 기업가 7명을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단에 새로 합류시켰다. 표면상으로는 “전통 제조업뿐 아니라 미래 산업을 책임질 혁신 기업들의 목소리를 경제단체 정책 노선에 반영하겠다”는 것인데, ‘기업(가)의 사회적 가치와 책임 행동’ 확산을 도모하겠다는 뜻이 깔려 있다고 한다. 고인이 되거나 은퇴한 저 1~2세대 기업가들이 선구적 집념으로 매출 성장을 이뤄내 ‘사업보국·기업보국’을 해냈다면, 지금 40~50대 기업가들은 달라진 시대와 호흡하며 기업 활동 좌표와 목적을 새로 설정하는 일을 새 소명으로 여기는 걸까? 아무튼 한국 기업가 세계는 신산업 급변 시대와 코로나 시절을 통과하면서 사뭇 다른 길에 접어드는 양상이다.
이들은 대체로 이중으로 ‘운 좋은’ 기업가 세대 축에 속한다. 디지털·친환경 시대를 맞아 코리아 국적 기업들이 경이롭게 도약하는 시점에 기업을 맡아 경영하고 있다. 삼성전자·현대차 등은 1960년대 후반에 설립돼 50년 남짓 짧은 역사에도 글로벌 거대 기업으로 위상이 변모해 전혀 새로운 단계로 이행했고, 수소차·배터리·태양광·배달앱은 “지구촌에서 활약하는 검투사”(앨빈 토플러 <권력이동>)처럼 세계 1등을 다투며 자신감 넘치는 혁신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아이티 기업들마다 ‘시대의 복권’을 맞은 듯 바이러스 비대면 특수를 누리며 작년에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것도 행운이다. 연간 매출액 수십조, 수백조원에 이르는 글로벌 기업을 이끌게 되자 사회공동체와 인류를 의식하는 기업가 작풍이 밑바닥에서 점차 형성되고 있다고 분석하는 시각도 있다.
‘젊은 유튜버 회장님’이 상징하듯 기질과 정서에서 개방적이고 활달한 것도 젊은 기업 총수들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위압적이고 근엄한 ‘은둔의 경제권력’ 세대가 아니다. 때로 몹쓸 악덕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직업으로서 기업가는 대체로 생산적이며, 좋은 제품을 만들어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는 열망을 갖고 있다. 이런 활동적 면모를 발휘해 일부 총수끼리의 회동에서나 경제단체 모임에서 기업의 목적과 책무를 놓고 가볍게 토론하는 풍경도 벌어진다고 한다.
기술이 이끄는 산업 세계가 더 넓고 빠르게 확산될수록 고용과 소득, 일상 삶을 지배하는 기업의 영향력은 광범하게 누적되면서 깊어진다. 21세기 국내외 산업 경제는 종래의 경기순환 법칙이나 경제 석학들의 진단·처방보다는, 막강한 ‘보이는 손’으로 활보하는 법인기업의 투자 행동이 지휘한다. 국가와 정책 제도뿐만 아니라, 기업가들이 신봉하는 행동모델 이념과 경영철학도 사회를 바꾸고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한다.
쌀가게로 시작한 정주영 회장은 생전에 “기업은 인간을 위한 인간의 단체다. 기업이 일단 커지면 그것은 저절로 공익성을 띠게 되고 또 띠어야 한다”며 “기업은 규모가 작을 때는 개인의 것이지만 커지면 종업원 공통의 것이요, 사회·국가의 것”이라고 했다. 더 젊은 지도부로 새 진용을 갖춘 경제단체들이 대정부 압력단체 기능에만 머물지 않고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한 이윤 창출 △공정한 번영 △사회·환경적 책임과 역할 같은 ‘다양한 기업 목적’을 표방하면서, 시대의 요청에 화답할 것인가? 새로운 한국 ‘기업(가) 문명’ 물결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조계완 산업팀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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