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시급히 처리해야 할 '더 좋은' 미디어법 있다
[해설] 3월까지 처리 예고한 '6대 미디어 피해구제 민생법' 원점 재논의 필요…박광온·정필모·김승원 의원 법안 주목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신중해야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문재인 정부 4년 차에 내놓은 '6대 미디어 피해구제 민생법' 또는 '가짜뉴스 3법'으로 불리는 6개 법안은 한마디로 실망스럽다. 홍익표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지난 16일 “가짜뉴스 3법(형법·정보통신망법·언론중재법)을 통해 건강한 언론 생태계를 정립해 표현의 자유를 끝까지 지켜나가겠다”고 말했는데, 이를 위해 시급히 논의해야 할 '우선 처리 법안'은 따로 있다.
지난 1월 박광온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보자. 포털사업자의 임의적 임시차단 조치를 없애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50명 이내의 온라인 분쟁 조정위원회를 설치하는 내용을 담았다. 임시조치는 누구든 자신의 권리가 침해됐다고 주장하면 30일 동안 해당 게시글을 무조건 차단하고 기간 내 이의신청을 하지 않으면 영구삭제하는 제도인데,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는 분쟁 조정 요청 이후 10일 내 차단 정보를 복원할 수 있다.
'포털의 임시조치 제도 개선'은 표현의 자유를 위한 문재인 대통령 대선공약이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포털사업자의 일방적 임의 임시조치가 정보게재자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방어권 보장에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임시조치에 이의제기가 있으면 차단을 풀고 분쟁기구를 통해 차단 결정이 나올 때까지 게시를 허용하는 내용을 공약으로 내놓았다.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우선 논의해야 할 것은 대통령 공약인 '임시조치' 변화다.
정필모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1월 내놓은 공영방송 지배구조개선안도 우선 처리 법안에 올려야 한다. '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 '방송통신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 등 총 4개 법률 개정안으로, 방송통신위원회가 국민 100명으로 구성된 '이사 후보 추천 국민위원회'를 구성하면 앞으로는 이들이 뽑은 후보 중 다득표순으로 KBS·MBC(방송문화진흥회)·EBS 이사를 각각 13명씩 선출하게 된다. 공영방송 사장은 국민위원회가 투표로 추천한 복수의 후보 중 이사회가 특별다수제로 의결한다.
이명박·박근혜정부에서 실감한 공영방송 지배구조의 고질적 문제인 정치적 후견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법안으로 이미 방송기자연합회와 한국PD연합회 등이 환영 입장을 내며 빠른 입법 논의를 요구한 상황이다. 100명의 국민위원회 구성과 운영 사항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등 추가 개정 작업이 필요한 법안으로, 올해 하반기 KBS·MBC(방송문화진흥회)·EBS 이사진이 모두 교체되는 시기인 만큼 지금이 법안을 논의할 적기다. 언론 피해구제는 가장 공정하고 정확해야 할 공영미디어가 '피해 유발 보도·제작물'을 내놓지 않는 구조 설계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전문위원은 “어떤 방식으로든 민주당 내에서 당장 논의가 필요한 법안”이라고 강조했다.
김승원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1월 취재·제작 및 편집의 자율성 보장을 위해 편집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하고 포털의 사회적 책무를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만든 신문법 개정안도 우선 처리 법안에 올려야 한다. 편집위원회는 △편집의 공공성 및 자율성 보장에 관한 사항 △양심에 반하는 취재 또는 제작에 대한 거부권에 관한 사항 △독자의 권익 보호 및 독자 의견의 반영에 관한 사항 등이 담긴 편집규약을 제정해야 한다. 앞서 2009년 한나라당이 신문법을 개정하며 삭제해버린 편집위원회와 편집권 조항을 복구하는 것으로, 당장 신문사주의 반발이 예상된다. 그러나 기자와 사주 간의 건강한 긴장 관계는 사주의 이해에 복무한다는 일부 신문에 대한 불신을 걷어내고 신문 전반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이 역시 '언론 보도 피해구제'와 무관하지 않은 법안이다.
민주당은 또한 2009년 신문법 개정 당시 편집권 조항과 함께 삭제된 기사형 광고 과태료 조항도 되살릴 필요가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건강식품, 건강보조기구, 상가·오피스텔 분양 등 기사형 광고는 눈에 띄게 증가했고, 이에 대한 피해는 오롯이 소비자인 독자들의 몫으로 가고 있. 이에 대한 피해 규모는 정확한 산출조차 어렵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 산하 한국소비자원이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기사형 광고를 읽었다는 응답자의 64.4%가 '기사형 광고를 기사로 오인했다'고 답했으며, 58.9%는 '기사형 광고를 허용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언론의 기사형 광고에 따른 피해구제 역시 국회가 해야 할 몫이다.
민주당이 선별한 6개 법안 중 악성 댓글 피해자가 신고하면 게시판 운영을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양기대 의원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악성 댓글을 이유로 게시판 전체를 운영 제한하는 것은 과도하다”(민주언론시민연합)는 우려가 다수인 상황에서 우선 처리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인터넷에서 허위사실유포나 불법 정보로 명예훼손 등의 손해를 입힌경우 피해액의 3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도록 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윤영찬 의원안)도 제외하는 게 적절하다.
인터넷 기사로 피해를 본 경우 기사의 열람 차단을 청구할 수 있는 신현영 민주당 의원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경우 이미 언론 중재 심리과정에서 실무적으로 양측이 기사삭제 합의를 많이 하는 상황에서 이를 명문화하고 수치화하자는 취지여서 현재 '우선 처리법안'에 해당할 만큼 시급한지는 의문이지만 입법에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언론중재위원을 최대 90명에서 120명으로 증원하는 김영주 민주당 의원의 중재법 개정안은 중재 사건이 점점 증가하는 만큼 입법이 필요해 보인다. 다만 이 과정에서 중재위원 구성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정청래 민주당 의원의 언론중재법 개정안도 함께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 해당 개정안은 중재위원 중 법관·변호사·전직 언론인 구성비율을 각각 현행 1/5 이상에서 1/10 이하로 낮추는 안이 담겼다.
언론계 관심사인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도입한다면 민주당이 밝힌 것처럼 윤영찬 의원의 정보통신망법이 아닌 언론중재법에서 소화하는 게 맞다. 윤 의원 개정안을 보면 징벌적 손해배상 적용 대상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의 정보와 불법 정보 생산·유통을 하는 '이용자'(제44조의11)인데 법리상 이 이용자에는 언론이 포함될 수 없다. 언론 보도는 언론중재법에서 다뤄야 한다.
만약 중재법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다룬다면 '징벌'이란 표현을 쓰지 않는 것도 고려해봐야 한다. 한국은 언론 보도에 따른 형사처벌이 가능해서 '징벌'이란 개념은 그 자체로 '이중처벌' 논란을 피할 수 없다. 현재 언론 보도에 따른 위자료가 턱없이 낮아 기존의 3배~5배 수준의 배상액 증가를 '징벌'로 볼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때문에 피해구제 현실화차원에서 '배액 배상'이란 표현이 적절할 수 있다. 공익 보도의 경우 위법성이 면책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면책 범위를 구성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이런 가운데 “가짜뉴스의 폐해는 단지 허위가 아니라 허위를 통해 특정 속성이나 집단에 관한 편견과 차별을 조장하는 혐오 표현으로 인해 야기된다”며 “허위표현 처벌에서 혐오 표현 대응으로 국가 정책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언론개혁시민연대)는 주장도 깊게 들여다볼 대목이다. 그럼에도 “언론이 인격권을 침해하지 않고 사회적 책임을 더욱 철저히 지도록 하는 시작점”(언론인권센터)으로서 꼭 징벌적 손배제를 도입해야 한다면, 언론사의 매출액 규모를 고려해 손배액을 산정하는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민주당이 참고할 필요가 있다. 영향력 있는 언론일수록 더 많은 책임을 묻는 취지다.
동시에 언론 보도 피해에 따른 위자료 현실화를 위한 사회적 캠페인도 필요하다. 가장 최선은 징벌적 손배 도입 없이도 판사들이 현행보다 위자료를 높게 산정하는 것이다. 앞서 대법원이 2016년 내놓은 새로운 위자료 산정기준에 의하면 명예훼손 사건의 경우 허위사실을 이용한 악의적·영리적 목적 등으로 범행을 저질렀을 때 특별가중사유로 판단, 가중금액을 산정해 놨다. 이에 따르면 일반피해는 1억 원, 중대 피해는 2억 원의 위자료가 추가될 수 있어 악질적인 명예훼손 가해자에겐 최대 3억 원의 위자료가 부과될 수 있다. 강제성 있는 기준은 아니지만 법원도 명예훼손 위자료를 기존보다 높게 책정해야 한다고 판단한 움직임이다. 판례의 변화는 법관들이 여론을 '실감'할수록 빨라질 것이다.
민주당의 '6대 미디어 피해구제 민생법' 또는 '가짜뉴스 3법'의 궁극적 목적이 '언론개혁'이라면, 민주당이 미디어바우처 제도 시범운영을 도입해볼 필요도 있다. 시민들에게 일정 액수의 바우처를 배분하고, 시민은 자신이 원하는 언론사에 기부하는 제도로 △디지털 환경에 대한 적합성 △정부로부터 언론의 독립성 △지원의 형평성을 충족시키는 새로운 저널리즘 지원정책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오늘날 언론문제가 '조회 수-광고'라는 수익구조에 따른 기사의 품질 저하에서 비롯된다고 했을 때, 바우처 제도는 기사 품질 향상과 뉴스 신뢰도 향상에 기여할 가능성이 있다. '미디어 구하기'라는 저서로 유명한 줄리아 카제 파리정치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앞서 “양질의 뉴스는 공공재이며, 시장에게만 맡길 수 없다”고 강조하며 “모든 시민에게 일종의 바우처를 줘서 미디어에 기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지난해 발행된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 정책리포트는 1만 명의 시민 패널을 구축해 표본으로 선정된 일부 언론사에 연간 5만 원 또는 0만 원의 바우처를 기부하는 방식의 제도 실험을 제안한 바 있다. 보고서는 “미디어바우처 실시를 위해 디지털 광고 시장에서 지배적 위치에 있는 플랫폼 사업자에게 출연금을 징수하거나 디지털 광고에 대한 세금 부과 등의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민주당이 “늦어도 3월 처리”를 예고한 6개의 미디어 관련법은 우선 처리할 만큼 중요한 법안이 아니며, 설령 처리한다고 해도 실효성 있는 피해구제로 이어질지 회의적이다. 이해당사자인 언론계와의 충분한 논의과정도 없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처리법안 선별 과정에서 민주당이 '평범한 명예훼손 피해자'의 이야기를 한 번이라도 들어봤는지 의문이다. 지금이라도 원점에서 시급히 처리할 언론 관련 법안을 다시 추리고,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종합적인 입법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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