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
변화에 적응하려는 기업 전략으로 봐야
소유구조보다 사회적 책임이 더 중요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설 연휴 국내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쿠팡이 미국 뉴욕증시 상장을 신청하면서 느닷없이 ‘차등의결권’이 화제로 떠올랐다. ‘국내 증시는 차등의결권을 허용하지 않아 뉴욕 증시에 유망 기업을 빼앗겼다’는 보도 때문이다. 이는 사실과 거리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이를 계기로 차등의결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점은 반갑다. 차등의결권 논쟁은 우리 정부의 시대착오적 기업 정책의 문제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차등의결권이란 신생기업이 상장할 때 창업주나 최고경영자(CEO)의 지배력을 유지하도록 이들이 보유한 주식에 일반 주식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2004년 구글(현 알파벳)이 기업공개를 하면서 차등의결권을 부여한 게 시작이다. 이후 테크 기업들 사이에 이를 따라 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미 증권거래소 상장 기업 5분의 1이 차등의결권을 가지고 있다. 차등의결권은 취약한 지배구조를 가진 기업의 경영권을 노리는 행동주의 펀드 위협에서 벗어나, 창업자가 적극적인 투자에 나설 수 있게 해준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이 2007~17년 상장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차등의결권 기업 주가가 더 많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정부도 2019년 ‘제2 벤처 붐 확산 전략’의 하나로 비상장 벤처기업 차등의결권 허용 방침을 밝혔고, 기획재정부는 이를 위해 벤처기업법 개정을 약속했다.
반대로 상장 초기에는 차등의결권 기업의 주가가 높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빠르게 하락한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차등의결권을 가진 경영진은 실제 보유 주식은 적어 기업 실적을 높여 배당금을 지급하기보다는 자신의 보수를 높게 책정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차등의결권이 ‘1주 1의결권’ 원칙을 위반한 것이 기업의 장기적 성장에 걸림돌이 되는 주요 원인이다. 그런데 이는 우리 대기업이 피라미드식 지배구조나 순환출자를 통해 총수 지배권을 지분율보다 강하게 유지하는 것과 같은 문제점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기획재정부는 이를 회피할 뒷문을 열어주려는 웃지 못할 상황인 셈이다.
이런 딜레마는 우리 기업 정책이 ‘주주자본주의’ 시각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주주자본주의는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기업뿐 아니라 국가 경제에도 궁극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지분율과 지배권이 일치할수록 주주와 경영자 간 이해 상충이 적어진다고 본다. 그래서 ‘1주 1의결권’ 원칙이 중요해진다. 하지만 이 주장은 시대변화를 반영하지 못한다. 한 기업 주주가 전 세계에 분산된 상황에서 대다수 주주는 주가에만 관심이 있다. 그 대리인인 전문 경영인 역시 주주들의 단기 이익을 만족시키기 위해 직원 처우나 고객을 위한 중장기 투자는 뒷전으로 미루기 쉽다.
이런 주주자본주의 문제점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글로벌 초일류기업들 사이에서 이미 대세다. 경영자의 최우선 임무는 주주보다 고객ㆍ직원ㆍ협력사ㆍ사회에 대한 책임감이라고 강조한다. 차등의결권은 이런 새 흐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스웨덴의 존경받는 기업 발렌베리 그룹이 대표적 예이다. 뉴욕타임스는 언론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차등의결권을 도입했다.
기업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데, 기업 지배구조 정책이 ‘1주 1의결권’ 원칙에만 매달려서는 곤란하다. 차등의결권 결정은 기업에 맡기자. 기업의 차등의결권은 상장 시 디스카운트 요인이 되기 때문에 그런 결정의 남발은 시장이 제어할 수 있다. 대신 정부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늘어나도록 하는 정책이 힘을 쏟아야 한다. 기업의 장기적 운명을 가장 걱정하는 이가 기업의 진정한 주인이며, 그들은 경영자 직원 협력사 그리고 그 기업을 품은 사회이다.
정영오 논설위원 young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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