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퇴장속 ILO비준안 통과..브레이크 없는 거여 친노동입법
'文 공약' ILO 협약 강행 수순
"실업·해고자 노조가입 허용등
노조에 힘쏠려 파업 부추길것"
반발하던 노동계도 찬성 선회
재계 요청 불구 재개정 힘들듯
◆ ILO 비준안 강행처리 ◆
19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에서 더불어민주당은 ILO 핵심협약 87호와 98호 비준안을 단독 처리했다. 87호는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협약이고, 98호는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 적용에 대한 협약이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은 해당 비준안의 일방적인 처리에 반발해 회의장에서 퇴장했다.
외통위 민주당 간사인 김영호 의원은 유럽연합(EU)에서 강한 외교적 압박을 받고 있어 비준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여야는 강제 노동을 금지하는 내용이 골자인 ILO 핵심협약 29호에 대해선 합의 처리했다.
이후 법제사법위원회에서도 충분한 심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국민의힘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에 항의하면서 법사위 일정을 보이콧했기 때문이다. 야당은 본회의에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진행했지만 여당의 입법 독주를 막아내지는 못했다. 이에 여당은 ILO 3법을 환노위에서 의결한 지 24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법사위와 본회의에서 단독 처리했다. 이 법은 7월 6일부터 시행된다.
정부와 여당은 EU가 ILO 핵심협약 비준 여부를 통상 압박 수단으로 삼고 있는 만큼 비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앞서 EU는 2019년 7월 한국이 한·EU 자유무역협정(FTA)에 명시된 ILO 핵심협약 비준 노력 의무를 위반했다며 전문가 패널 심리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야당과 재계가 ILO 3법을 여전히 반대하는 이유는 법이 개정되면서 해고자·실업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내용이 담겼고, 노조 전임자에게 급여 지급을 금지하거나 관련 쟁의 행위를 막을 수 있는 규정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경색된 노사관계가 이어지고 있는 한국 경영 환경을 고려할 때 노조 단결권과 노조로의 힘 쏠림 현상만 강화돼 결국 노사 관계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라는 주장이다.
재계는 ILO 3법이 이미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해버린 만큼 시급히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008~2018년 한국과 주요 선진국(미국·일본·독일·영국) 노사관계지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노사분규 등으로 인한 우리나라 노동손실일수가 일본의 209.0배, 독일의 9.7배, 미국의 6.2배, 영국의 2.1배에 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경연은 "노사 간 대등한 협의가 이뤄지기 힘든 제도적 영향이 크다"고 지적했다.
노사 간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방안으로 한 재계 관계자는 "사용자에 대한 직접적 형사처벌 규정을 폐지하고, 파업 시 대체근로 일부 허용과 사업장 점거 전면금지 등 사용자 대항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근로시간면제한도를 자율로 정할 수 있도록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에 정부 및 공익위원 참여를 배제하고 경영계와 노동계 위원만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 측 근로시간면제한도 초과 요구와 이와 관련된 쟁의행위가 있을 때 이를 제재할 수 있는 처벌조항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조합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경영계 요청 사항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고, 노동계 요구 사항만 반영돼 당초 정부 제출 법안보다도 더욱 편향된 내용이 됐다"며 "임시국회에서라도 경영계 핵심 요구 사항이 최소 일정 부분이라도 반영될 수 있도록 보완 입법을 추진해주길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ILO 3법 재개정은 당장 어려울 전망이다. 당초 해고자와 실직자는 간부 직책을 맡을 수 없게 한 개정안이 독소조항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던 노동계가 ILO 핵심협약 비준을 앞두고선 입장을 선회했기 때문이다.
이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외통위 법안심사소위 출발로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가로막는 국내외 노동 관련 법을 모두 재정비하자"고 주장했다.
여당도 재·개정에 신중한 입장이다. 여당 소속 환노위원은 "외통위에서 ILO 비준안을 처리하더라도 당장 노조법 재개정을 논의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노사 의견을 조율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ILO가 한국 특수성을 고려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도 한국·EU FTA 전문가 패널이 지적한 문제는 해결됐다고 밝혔기 때문에 경제사회노동위원회와 고용노동부 등에서 추가 입장을 밝히지 않는 이상 재·개정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는 취지다.
[조성호 기자 / 이희수 기자 / 최예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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