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층주의자' 영수씨의 선택
판교 테크노밸리 IT기업 사원 김영수 씨(32)는 자칭 ‘복층주의자’다.
대학 때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하면서 1년 생활하는 동안 복층의 매력에 빠졌다.
“우리나라와 달리 주거용 아파트가 거의 없는 미국은 실내 공간 활용을 위해 복층으로 지은 집들이 많았어요. 집이 좁아도 복층이 있으면 그 면적만큼 활용공간이 넓어지기도 하고 무엇보다 층고가 높아 시원한 개방감을 느낄 수 있거든요. 실제로 층고가 높을수록 공기순환이 더 잘된다고 하더라구요.”
청소나 관리가 불편하지는 않을까.
“사용면적이 늘어나는 만큼 청소시간도 늘어나겠지요, 하지만 복층에서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훨씬 더 커요. 첫째는 영화감상이었어요. 천정까지 올라오는 대형 롤스크린을 세우고 복층에 올라가서 영화를 보면 정말 극장에 온 듯한 느낌이 들거든요. 둘째는 요즘 유행하는 ‘홈술’이에요. 복층은 같은 집이라도 다른 공간처럼 느껴져서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어요. 복층에 한번 살아보면 단층 집은 밋밋하고 답답해서 살기 힘들어요“
영수 씨는 결혼하고 신접살림을 차리면서 복층 아파트를 찾았지만 자금여력을 넘는 큰 평수뿐이어서 포기했다고 한다.
최근 전셋값이 크게 오르면서 평수가 작더라도 아파트를 한 채 구입하기로 마음먹고 물색하다가 경기도 이천시 안흥동의 신축아파트 분양 광고를 접하게 됐다.
부부와 3살짜리 아들이 살기 적당한 면적이기도 했지만 복층이라는데 끌렸다.
지난 주말 가족 나들이를 겸해 이천 이마트 옆 이천하이앤드천년가 모델하우스를 찾아갔다.
무엇보다 아들 민준이의 반응이었다. 복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뛰어올라가서는 아빠에게 손을 흔들고 환호성을 질렀다.
“엄마! 아빠! 나 봐라. 내가 아빠보다 더 크다.”
“우리 민준이가 제일 신났네. 녀석, 거기가 그렇게 좋아?”
복층을 올라가 보니 건축규제상 4m 실내층고 제한 때문에 남자 성인이 똑바로 서기는 힘들었지만, 침실과 수납공간, 아이들을 위한 놀이공간으로는 손색이 없었다.
홈술을 위한 ‘좌식 홈바’로 꾸며도 좋을 것 같았다. 영수 씨의 로망인 ‘극장형 홈시어터’에는 최고의 조건이 될 것 같았다.
45㎡(13평형) E타입 모델하우스는 복층 공간이 좌우로 분리된 더블복층이어서 한층 널찍해 보였다.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모든 가전제품이 빌트인으로 제공돼 공간활용도가 높았다.
가격은 30㎡(9평형) B타입이 1억5000만원, E타입은 2억1000만원이라고 했다. 현재 전세보증금을 빼면 큰 부담은 없었다. 다소 무리하면 E타입은 주거용, B타입은 임대수익용으로 구매해도 좋을 것 같았다. 용도가 생활형숙박시설인데다 임대관리회사가 수익을 보장해 준다고 했다.
하지만 아내 윤지영 씨(29)가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다 좋은데 대중교통이 문제야. 아파트에서 이천역까지 1.3킬로라니 걸어 다닐만한 거리긴 하지만 여자 걸음으로 20분은 걸릴텐데. 그렇다고 우리 형편에 자가용을 또 한 대 살 수도 없고.”
“아, 이천과 잠실을 왕복하는 버스노선이 생긴 걸 말씀 안 드렸네요. 작년 초부터 G2100번 광역버스가 아파트 바로 앞 이천터미널을 경유해서 잠실광역환승센터까지 운행되고 있어요. 저도 타보진 않았는데 딱 한 시간 걸린다고 해요.”
“여보. 그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영수 씨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아내의 반응을 살폈다.
지영 씨가 이번에는 아파트 주변 주거환경과 교육환경을 물었다.
“이천 인구가 현재 22만명 정도인데 하이닉스 협력업체가 많아지고 최근 준공된 M16공장과 용인 클러스터가 이어지면 2030년까지 35만명 규모로 늘어날 거라고 해요. 이천에서는 안흥동 하이앤드 부지가 최고 부촌으로 형성되고 있어요, 이미 롯데캐슬, 브라운스톤 같은 고급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고 아파트 1층은 명품브랜드 중심의 상가로 조성돼 입주하시면 원하시는 물건은 모두 집 앞에서 구입하실 수 있을 거예요.”
지영 씨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지만 여전히 근심을 거두지 않았다.
“학군은 어때요? 우리 민준이가 몇 년 후면 초등학교 들어가야 하는데, 교육 때문에 결국 서울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닐까요?”
“물론 지금 현재를 기준으로 이천의 교육여건이 서울보다 낫다고 하기는 어렵겠죠. 하지만 이 곳은 이천에서는 8학군으로 불린답니다. 아무래도 고급택지지구니까 학교 수준도 같이 올라가게 되겠죠. 이천에 하이닉스를 비롯한 IT 기업들이 많아지면서 전반적인 생활수준이 높아지기 때문에 지금보다 좋은 학교들도 많아질 겁니다.”
영수씨 부부는 신이 나서 복층계단을 오르내리는 아들 민준이를 품에 안고 모델하우스를 나섰다.
이천시를 떠나는 차 안 네비게이터 화면을 보던 지영씨가 물었다.
“여기는 왜 서희라는 이름이 이렇게 많아? 서희청소년문화센터, 서희테마파크, 서희역사관...”
“그거 몰랐어? 고려시대 거란 침략 때 강동6주를 외교 협상으로 얻어낸 서희장군을 배출한 곳이 이천이래.”
“그래? 다른 점보다도 난 그게 끌리네. 민준이 교육에 좋을 것 같아. 얘가 커서 뭐가 될지 몰라도 자기가 자라난 지역에 애착을 갖는 건 나쁘지 않지.”
“자기도 결정한 거야?”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당신이 그렇게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복층이잖아.”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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