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네덜란드 풍경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영국의 화가 윌리엄 터너(1775~1851)는 날씨에 따른 풍경의 변화뿐만 아니라 보는 사람의 심상 변화까지도 화폭에 담아냈다고 한다. 단순히 자연 대상의 충실한 반영을 넘어 그림 속, 또 그림 바깥에 있는 사람의 울림까지도 잡아내고 이끌어냈다. 초상에서 인물의 정신까지 그려낸다는 동양 전신사조(傳神寫照)의 서양적 발현이라 할만하다.
터너의 그림에서 당연히 눈에 띄는 것은 화폭을 가득 채우고 있는 구름이다. 대기의 변화에 따라 형태와 명암, 색을 달리하는 터너의 구름은 후기로 갈수록 그 형태가 해체되면서 색과 면으로 변해간다.
천변만화하는 구름은 현대 사진가들의 단골 메뉴다. 일부 작가들은 아예 규칙적으로, 혹은 수시로 하늘을 기록한다. 자연이 주는 무한한 변화상과 사람의 힘으로는 감히 흉내 낼 수조차 없는 황홀한 색을 외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늘에 떠 있는 뜬구름, 즉 부운(浮雲)은 부정(不定)과 부정(否定), 감정이입의 대상이다. 그래서 덧없고 유한한 인생이 부운(浮雲)이고 곧 깨지고 마는 집착이 뜬구름이다. 공자는 옳지 못한 부귀를 뜬구름이라 했고 고려 공민왕 때 나옹화상의 누이는 구름을 빌어 인생을 정의했다.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 태어남과 죽음이 모두 뜬구름과 같다는 것.
덧없어 오히려 애틋한 것이 구름이 아닐까? 인도를 두루 돌아왔던 신라의 고승 혜초는 "달밤에 고향길 바라보니 뜬구름만 쓸쓸히 돌아가네"라며 구름에 애틋한 감정을 녹여냈다. 이역만리 혜초에게 구름은 고향에게 보내는 안부이면서 동시에 그 자신일 것이다.
원로 사진작가 송영숙이 '덧없음'과 '그리움'을 구름에 담아냈다. 이번 사진전에서 작가는 2019년과 지난해 휴대폰으로 틈틈이 촬영한 20점의 시리즈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휴대폰의 진화가 놀랍고 작가의 적극성이 다시 한번 놀랍다.
전시 주제는 ≪Another…Meditation≫. 지난 2018년 열었던 전시 ≪ Meditation≫의 후속이다. 송영숙의 2018년 전작에 대해 미국의 몽타주 사진작가 제리 율스만은 "작가가 일상의 순간을 사진 속에 붙잡아 둠으로써 자연의 무한한 생명력을 전하고 있으며 자연과의 사적인 관계를 차근차근 설명했다"고 평가했다.
2018년의 'Meditation'이 이처럼 자연에 대한 관조에 가깝다면 이번 작업에선 형태를 일부 더 해체함으로써 더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작가의 지향이 엿보인다. 대신 유별나게 드러나는 색(色)은 형태를 최소한 것에 대한 일종의 보상일 것이다. 전시와 관련해 중국의 사진작가 왕칭송은 "모든 작품에서 송영숙은 색채에 대해 독특하고 주관적인 통제력을 발휘한다"라며 결과적으로 평안함과 고상함이 감지된다고 밝히고 있다.
그동안 송영숙은 표현주의적 작업에 천착해왔다. 대상의 형태를 물리적인 방법으로 해체하면서 파스텔 색감을 고집스럽게 추구해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 작품의 색채는 대부분 2014년 ≪THE RED≫나 ≪Instant Meditation≫의 연장선에 있다. ≪THE RED≫에서 송영숙은 중국 자금성의 '퇴락한 아름다움'을 담대한 구성과 색으로 포착해냈다. 또≪Instant Meditation≫에서는 폴라로이드 인화지의 물성을 최대한 활용해 색과 형태를 재조합했다.
이번 전시에서 송영숙은 온전히 구름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소재와 방법, 색은 오롯이 전작의 연장선에 있다. 다만 이번 시리즈에서 송영숙은 피사체에 대한 거리두기, 즉 관조적 자세를 통해 내면의 울림을 부각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이번 시리즈를 소개하면서 "자연을 훔쳤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빼앗긴 것은 자연이 아니라 작가의 마음일 터이다.
송영숙 사진전 ≪Another…Meditation≫ 3월 31일까지, 서울 삼청동 아트파크 (02-733-8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