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진보 큰 어른 백기완 영면
수백여 명의 조문객 몰려
"노동자, 농민, 빈민의 편이었던 선생님"
장지는 경기도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임을 위한 행진곡. 故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을 상징하는 이 노래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19일 오전 백 소장의 발인식이 엄수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백 소장의 장편시 '묏비나리'를 가사로 인용해 만들어졌다.
장례식장 인근은 새벽부터 백 소장을 추모하기 위한 사람들로 가득 찼다. 이들은 '노나메기 세상(너도 나도 일하고 올바르게 잘 사는 세상)'이 써진 하얀색 마스크와 '노동해방'이 써진 검정 머리띠를 착용했다. '노동해방'은 백 소장이 생전 남긴 마지막 글귀로 전해진다.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 사회장 장례위원회'는 오전 8시쯤 발인을 시작했다. 상복을 입은 유족은 고인의 영정 앞에 절을 올리며 예를 갖췄다. 상주인 아들 백일씨는 "아버지, 안녕히 가세요. 아버지 뜻을 잇겠습니다"라고 말하며 흐느꼈다. 이후 유족이 영정과 위패를 들고 안치실로 향하며 발인은 오전 8시 10분쯤 마무리됐다.
◇통일문제연구소 위치한 대학로 돌며 '노제'…"겨레 큰 어른 가셨다"
장례위는 발인을 마친 뒤 장례 행렬을 이끌고 대학로로 향했다. 장례 행렬 제일 앞에는 고인의 영정이 자리했다. 흑백 영정 속 고인은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마이크 앞에선 백발의 머리가 휘날렸다. 오른손은 하늘을 향해 높이 뻗었다.
장례위는 오전 8시 40분쯤 백 소장이 거점으로 삼아 활동하던 통일문제연구소에 도착했다. 연구소 앞 낡고 허름한 골목길에는 간소한 제사상이 차려졌다. 이후 유족은 영정을 들고 통일문제연구소를 한 바퀴 돌며 백 소장을 추모하기도 했다.
좀 더 넓은 장소인 소나무길에서 진행된 노제에서는 조사가 이어졌다. 한국진보연대 박석운 상임대표는 "겨레의 큰 어른 백기완 선생님께서는 이 땅의 민주화와 노동자, 민중 해방을 위해 한평생 헌신하셨다"며 "백 선생님께서 돌아가시면서 이제 한 시대가 저물어간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선생님께서 병상에서도 간절히 기원하셨던 '온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김진숙 힘내라 노나메기' 세상은 아직 진행형"이라며 "저희가 좀 더 힘을 합쳐 간절하게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영결식은 오전 11시 30분쯤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진행됐다. 장례위는 코로나 상황을 고려해 무대 앞 좌석 개수를 제한하고 좌석 간 거리를 뒀다. 계속해서 "거리두기를 지켜달라. 유족과 장례위 관계자 등을 제외한 시민들은 통제선 밖으로 나가달라"고 공지했다. 미리 영결식에 참여하기 위해 광장에 모여있던 시민들이 더해지며 추모객은 1천여 명까지 늘었다.
추도사를 맡은 김용균재단 김미숙 이사장은 "선생님께서 '김진숙, 김미숙 힘내라'는 말씀을 마지막 유언으로 남기셨다고 들었다"며 "마지막으로 청와대 앞 기자회견에 오셨던 기억이 스치면서 절절함에 가슴이 아파진다"고 말했다.
이어 "선생님께서 평생 낮을 곳을 향해 힘주셨던 것처럼 저도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 발맞추며 따르겠다"라고 다짐했다.
유족들의 인사도 이어졌다. 백 소장의 여동생 백인순씨는 "오라버니는 이미 이 벗나래(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마음이 찢어진다"며 "그래도 (노나메기) 큰 꿈을 위해 다시 길을 찾아 나설 것을 안다. 먼 곳에 계시지만 힘내시라"고 마음을 전했다.
마지막 행사인 영결식은 이날 오후 1시 10분쯤 끝났다. 이후 오후 3시쯤 경기도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서 하관식이 진행됐다. 장례위에는 노동·통일·종교·시민사회·학술 등 인사와 시민 6104명과 562개 단체가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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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차민지 기자] chacha@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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