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가두방송' 전옥주 여사..'5월 영령' 곁에 잠들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가두 방송을 했던 고(故) 전옥주 여사가 국립5·8민주묘지에서 영면에 들었다.
이날 추도사는 1980년 당시 고인과 국군통합병원에서 만나 인연을 맺었던 이지윤 전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사무총장이 맡았다.
그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19일 밤부터 새벽, 계엄군의 잔혹한 진압을 시민에게 알리기 위해 광주시내에서 마이크를 잡고 가두방송을 한 주인공이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계엄군 고문 후유증..남파간첩 몰려 옥고도
(광주=뉴스1) 이수민 기자 =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가두 방송을 했던 고(故) 전옥주 여사가 국립5·8민주묘지에서 영면에 들었다.
19일 오후 1시30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2묘역에는 전옥주 여사의 안장식이 진행됐다.
안장식에는 가족·친지를 비롯해 고인과 함께 1980년 5월을 보낸 동지들이 모였다. 이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고인에 대한 그리움을 나눴다.
식은 고인에 대한 경례와 하관, 허토, 묵념의 순서로 진행됐다.
정부를 대표해 김주환 국립5·18민주묘지 부소장, 유족을 대표해 배우자 강병선씨가 먼저 허토에 참여했다. 유족과 5·18단체 회원, 지인 등이 뒤를 이었다.
한 지인은 애써 눈물을 참으며 "누님! 이제는 고통과 독재없는 하늘에서 편안한 안식을 취하십시오"라고 외쳤다.
이날 추도사는 1980년 당시 고인과 국군통합병원에서 만나 인연을 맺었던 이지윤 전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사무총장이 맡았다.
이지윤씨는 "꽃처럼 아름답고 젊은 날 평범했던 전옥주 언니는 무자비한 계엄군의 만행 앞에서 더 정의롭고 위대했다"며 "그로 인해 겪은 온갖 모진 고문은 평생을 후유증과 싸우게 한 지난한 세월이었을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5·18을 왜곡하는 규탄집회, 국회농성 등을 찾아다니며 '우리 오월정신을 잊지 말아주세요'라고 외치던 언니의 음성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그 정신을 잊지 않고 가슴깊이 되새기겠다"고 추모했다.
고 전옥주 여사는 지난 16일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19일 밤부터 새벽, 계엄군의 잔혹한 진압을 시민에게 알리기 위해 광주시내에서 마이크를 잡고 가두방송을 한 주인공이다.
1949년 12월 태어나 원광대학교 체육학과에서 무용을 전공하고 무용학원 강사로 재직 중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하게 된 전씨는 계엄군의 고문 후유증으로 고생했다.
또 당시 많은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이유로 남파 간첩으로 몰려 계엄포고령 위반과 내란음모 등의 죄명으로 광주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그가 당시 가두 방송을 통해 전한 "광주시민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게 편안하게 집에서 잠을 잘 수가 있습니까? 우리 동생 형제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는 음성은 여전히 많은 시민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breath@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 무인사진관서 성관계한 커플…"바닥엔 체모·체액, 청소하는데 현타오더라"
- '통아저씨' 이양승 "70년전 친모, 시부 몹쓸짓에 나 버리고 가출"
- 연쇄살인마 유영철 "밤마다 희생자 귀신들 나와 잠 못자" 괴로움 호소
- 성유리 "억울하다" 했지만…남편 안성현 징역 7년 구형에 벌금 20억·추징금 15억
- 유비빔, 불법영업 자백 "무허가 식당 운영하다 구속돼 집유…죄송"
- 짧은 치마 입은 여성 졸졸 쫓아간 남성, 사진 찍고 차량 틈에서 음란행위
- "오빠~ 아기 나와요"…'최애 가수' 콘서트장서 출산한 여성 팬
- 김민희 "10년만에 이혼 밝힌 이유? 남자들 다가올까봐…지인 남편도 만나자더라"
- 로버트 할리, 콩나물더미 내팽개쳐…아내 명현숙 오열
- 지하철서 맞은편에 불빛 쏜 노인…"젊은 여성 상대로만 하는 듯"[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