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심혈관계 질병 산업재해보상 신청, 쉽게 포기하지 마세요

2021. 2. 19.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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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2020년 12월 22일 서울 동작구의 한 시장에서 배송품을 나르던 40대 택배 기사 K씨가 뇌출혈로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K씨의 가족은 “매일 16시간 이상 일한 기록이 남아 있다”라면서 과로로 인한 산업재해를 주장하였다.

뇌출혈과 같은 뇌·심혈관계 ‘질병’도 산업재해로 인정될 수 있을까?

업무 중에 ‘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는 비교적 산재로 인정받기가 수월하지만 뇌출혈, 뇌경색, 심근경색과 같은 ‘질병’이 발생한 경우에는 산업재해로 승인되어 보험 급여를 받는 것이 아직도 쉽지 않다. 왜냐면 산업재해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발생한 질병이 업무와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이 입증되어야 하는데 그 질병이 업무로 인해서 발생한 것인지 업무 외의 다른 이유로 발생한 것인지 구별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의 고시는 업무시간 뿐만 아니라 업무강도와 정신적 스트레스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도록 하고 있지만 사실상 업무시간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강하다. 고용노동부의 고시에 따르면 업무시간이 발병 전 12주 동안 평균 1주 60시간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업무와 질병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평가한다. K씨의 경우처럼 매일 16시간 이상 일한 기록이 남아 있다면 아마도 산업재해로 인정될 가능성은 높을 것이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전문 노무사는 ‘객관적인 업무시간’은 사실상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료이지만 장시간의 업무가 아니더라도 업무로 인한 산업재해는 발생할 수 있고 따라서 이를 입증하면 산업재해로 인정받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뇌·심혈관계 질병의 경우에 산업재해 승인률이 아직도 30%~40%로 높지 않고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려워서 신청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장시간의 근로를 제공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조사해보면 산업재해에 해당하는 경우가 있다.

한 예로 주 29시간을 근무한 아파트의 여성 청소근로자의 뇌출혈 산재 승인 사례를 들 수 있다. 퇴근 후 자택에서 쓰러진 근로자는 응급실로 이송되었고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렇지만, 당시 산업재해 신청을 대리했던 담당 노무사는 동료 및 회사의 협조를 이끌어 내고 뇌출혈과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증명할 자료들을 모아서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하였고 결국 산업재해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가족과 동료와의 심층인터뷰를 통해 재해자가 수행했던 구체적인 업무를 날짜와 시간별로 확인한 노무사는 재해 발생일 이틀전에 재해자가 아파트 계단의 신주를 닦는 업무를 장시간 수행한 후 체한 증세를 보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체한 증세가 뇌출혈의 전조증상이라고 판단하였다. 사업장을 방문하여 근로자가 수행하던 업무와 장비등을 확인하고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모았다. 병원의 기록과 동료 10여명의 진술서를 확보하였다. 재해자가 사용하던 장비를 사용하여 업무수행의 구체적인 방법을 재현하고 이를 녹화 등의 방법으로 기록하였다. 해당 업무가 신체에 줄 수 있는 부담을 설명하기 위하여 업무의 자세와 방법에 관한 자료를 질병판정위원회에 제출하였다. 그리고 해당업무의 강도를 설명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자료들을 제출하였고 결국 질병판정위원회에서 산업재해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해당 사건을 담당했던 노무법인 우광의 권준희 대표노무사는 “객관적인 자료들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료들뿐만 아니라 회사의 협조도 필요합니다. 산업재해는 회사의 과실이 있어야 인정된다고 생각하거나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회사에 큰 피해가 생긴다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설명하는 것도 실무적으로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산업재해는 회사과실이 있어야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출·퇴근재해나 업무상 질병의 경우에는 회사의 개별실적요율을 계산하기 위한 보험수지율에서 제외가 됩니다. 이런 부분들을 잘 설명하고 산업재해로 인정받으면 재해자와 가족들이 어떤 급여를 받을 수 있는지 알려 드리면 대부분의 사업장에서는 필요한 자료는 모두 협조할테니 산재인정을 받을 수 있게 잘 처리해 달라고 당부합니다.”라고 전했다.

이어 권 노무사는 “산재 인정이 되느냐 안 되느냐는 재해자나 유족들에게 정말 중요합니다. 산재를 인정받으면 입원비나 수술비뿐만 아니라 일을 못하는 기간 동안 평균 임금의 70%에 해당하는 휴업 급여를 받을 수 있어서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마음 졸이지 않고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뇌출혈이나 뇌경색,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경우에도 업무와 사망의 상당인과관계를 입증해서 산업재해로 인정받으면 남은 유족들이 유족연금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추스르기도 전에 자녀양육의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게 남은 유족의 현실적인 문제입니다.”라며 산재보상이 재해자 또는 유족들의 마지막 보루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근로시간이 특별히 길지 않더라도 기존에 고혈압 등의 질병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뇌출혈, 뇌경색, 심근경색 등 뇌·심혈관계 질병과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고 해서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rea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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