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LG 배터리 합의 장기전 가나..최태원 소송 언급 '전무'
급할 것 없다는 SK…LG는 '징벌적 손해배상' 언급도
[더팩트|이재빈 기자]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여부를 두고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벌인 소송전의 결과가 나온 지 열흘이 지났지만 양사는 여전히 합의를 진척시키지 못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국제무역위원회(ITC)가 SK이노에 수입금지 유예기간을 제공하면서 당분간 기존 고객사에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만큼 양측의 협상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최태원 SK 회장이 ITC 판결 이후 처음으로 배터리 행보에 나섰지만 소송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하지 않은 점도 이같은 관측에 힘을 더하고 있다.
◆ 최태원, 배터리 행사 참여했지만 소송 언급은 없어
최태원 SK 회장은 19일 최종현학술원이 개최한 '배터리 기술의 미래' 온라인 세미나 환영사에서 "배터리시장의 성공은 연구자들의 오랜 협업 덕분"이라며 "자신의 전문영역 밖에 있는 전문가와 협업·소통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태원 회장은 사전에 촬영해둔 이날 환영사에서 지난 10일(현지시간) 나온 ITC 판결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앞서 ITC는 LG엔솔이 SK이노를 상대로 제기한 전기자동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LG엔솔의 손을 들어주며 SK이노에 배터리 관련 제품의 미국 내 수입을 10년간 금지시켰다.
당초 업계에서는 최태원 회장이 이날 배터리 판결과 관련해 시사점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날 세미나 참석이 ITC 판결 이후 첫 배터리 관련 행보였기 때문이다. SK이노가 미국 지역경제에 공로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기대하고 있는 만큼 최태원 회장의 입을 통해 배터리와 경제의 연관성에 대한 언급 정도는 이뤄질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이날 최태원 회장이 관련 발언을 일절 하지 않음에 따라 SK이노와 LG엔솔의 합의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중이다. 양측은 현재까지 협상 재개 여부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판결 직후 LG엔솔이 다소 고자세로 나오고 있지만 SK이노도 유예기간이 주어진 만큼 급할 것 없다는 입장"이라며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나 SK이노의 항소 가능성도 남아있는 만큼 협상이 급진전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귀띔했다.
◆ 합의금 간극 조 단위…"협상 장기전으로 번질 가능성 높아"
양사의 합의가 진전되지 않은 상태로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까닭은 서로 원하는 합의금 액수의 간극이 조 단위이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합의금 액수로 LG엔솔은 2~3조 원, SK이노는 5000억~6000억 원을 원하고 있다. 여기에 ITC 판결 이후 LG엔솔이 징벌적 손해배상 등을 언급하며 SK이노를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LG엔솔은 지난 11일 ITC 판결 직후 컨퍼런스콜을 열고 "미국 연방 영업비밀보호법의 손해배상 기준을 따르면 법적으로는 손해배상 금액의 200%까지 배상금을 높일 수 있다"며 "협상금액에 이를 포함할 지 여부는 전적으로 SK이노의 협상 태도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SK이노는 급할 것 없다며 장기전을 각오하고 있는 상황이다. ITC가 수입금지 판결을 내리면서 기존에 SK이노가 배터리를 납품하던 폭스바겐과 포드에 대해서는 각각 2년과 4년의 유예기간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SK이노 입장에서는 2~4년간 안정적으로 미국 수출이 가능한 만큼 합의금 액수가 맞춰질 때까지 추이를 지켜볼 수 있는 셈이다.
현대자동차의 코나EV 대규모 리콜이 예정돼 있는 점은 LG엔솔에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19일 국토교통부에 화재가 발생한 코나EV 리콜 계획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리콜 비용은 1조 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화재 원인이 배터리 결함으로 확인될 경우 배터리 공급사인 LG엔솔이 적잖은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LG엔솔 입장에서는 SK이노와의 합의를 통해 현금성 자산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SK이노가 10년 동안 미국에 배터리를 수출하지 못하게 됐지만 유예기간이 주어진 덕에 장기전을 대비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판결에 대한 대통령 검토 기간이 60일이고 합의는 언제든지 할 수 있는 만큼 판결이 나왔다고 해서 급진적인 변화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fueg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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