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예견된 자사고 부활, 두 번의 지정취소와 세 번의 소송
"자사고 재지정 제도 자체를 폐지하거나 자사고 운영기준을 현저하게 다른 형태로 운용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중대한 공익상 필요가 인정되지 않는데도, (중략) 학교가 지정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고 평가한 것은, (중략)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이다."
18일 서울행정법원은 배재학당(배재고)과 일주세화학원(세화고)이 서울시교육청의 자사고 지정취소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이 같이 밝히며 자사고 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가 문제삼은 건 2019년 평가계획에서 신설·변경된 교육청 재량지표, 감사 및 지적사례 평가지표다. 갑작스럽게 바뀐 내용을 자사고에 소급적용한 것이 문제가 됐다.
해당 지표는 학생 참여, 자치 문화 활성화 등 조희연 서울교육감의 정책적 사업 시행 여부를 주로 묻고 있다. 2014~2015년 시행된 1차 재지정 평가 때엔 지표에 포함되지 않았다. 쉽게 말해 자사고 입장에서는 시험범위도 알려주지 않고 시험을 치른 격이다.
재판부는 시교육청이 별 다른 이유 없이 해당 지표를 소급 적용해 평가하는 것이 공정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시교육청과 자사고의 악연은 2014년 교육감 선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자사고에서 우수 학생들을 선발해 가다보니 일반고 학습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일명 '잠자는 일반고' 론이 거셌다. 자사고를 가기 위한 중학생 사교육이 성행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사고를 폐지해야 한다는 진보 측 주장을 공약으로 내세운 조희연 서울교육감 등 진보계 인사들이 대거 당선됐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보란듯이 당선 직후 자사고 재지정평가를 통해 경희고, 배재고, 세화고, 우신고, 이대부고, 중앙고 등 6개교의 자사고 지위를 박탈했다.
하지만 이는 보수 정권 당시 교육부의 직권 취소로 무산됐다. 시교육청은 교육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대법원은 2018년 교육부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이번에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또 한 번 자사고 폐지에 드라이브가 걸렸다.
교육부는 아예 시행령에서 자사고 설립 근거가 되는 시행령을 삭제하는 방식으로 2025년 자사고 일몰 폐지를 예고했다. 자사고 측은 이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다.
자사고가 지정된 2009년부터 지금까지 지정취소가 두 번이나 번복됐고 세 번의 소송이 진행됐다. 행정낭비라는 지적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지점이다.
교육 당국이 자사고를 폐지하려는 이유는 사교육 유발과 일반고 황폐화 두 가지다.
하지만 자사고가 사교육의 주범이라는 지적은 정확하지 않다.
학생들이 사교육을 받는 궁극적 목표는 자사고가 아닌 명문대 입학이다. 더군다나 조기 사교육을 유발시키는 영재학교, 과학고 등을 놔두고 자사고만 없애서는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우수학생 유출로 인한 일반고 황폐화 문제는 현 정부가 추진하는 고교학점제 등을 통해 일반고 역량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완화하는 게 바람직하다.
좋은 학생이 들어와야 좋은 학교가 된다는 논리는, 바꿔 말하면 학교의 역량은 오직 학생에게만 달려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양질의 교사들이, 학교 자원이 학생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다.
어떤 정책을 펴든 장단점은 생길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문재인 정부의 공약인 고교평준화를 추진하더라도 학교 간 교육격차가 실제로 줄어들지 않으면 명문고 쏠림현상이 생길 수 있다.
결국 정책을 신중하게 입안하되, 이를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관리·감독하는 일관성이 정책 성패를 가른다.
2년 전 김철경 대광고 교장(서울자사고교장연합회장)은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사고는 처음 지정되던 때만 해도 한시적인 학교가 아니었습니다. 5년마다 재지정 평가를 받아야 하는 조항 때문에 시교육청에 '점수를 받지 못하면 학교를 문 닫아야 하냐'고 몇 번을 물었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라는 확답을 받고 시작한 일이었어요."
10여년 넘게 오락가락 하는 자사고 정책을 보며 앞으로 어떤 학생, 학부모, 학교가 정부의 정책을 믿고 따라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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