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바이든 정부, 한일 갈등에 '중재 외교' 나설까
전문가들 "미국의 적극 개입엔 한계..한국 부담이 더 크다"
(서울=뉴스1) 장용석 기자,김정근 기자 =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한껏 악화된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중재 외교'에 나설지 주목된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필요하다면 미국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면서다.
정 장관은 1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한일관계가 풀리지 않으면 앞으로 한미관계도 제대로 될 수 없다는 얘기가 미 워싱턴에서 나온다'는 박진 국민의힘 의원의 지적에 "그렇게 보지 않는다. 최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도 통화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우리 외교부에 따르면 정 장관과 블링컨 장관은 지난 12일 전화통화에서 "한미일 협력이 지속되는 게 중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미 국무부도 당시 통화 뒤 배포한 자료에서 "블링컨 장관이 지속적인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올 1월 출범한 미 바이든 정부는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이어 '중국 견제'를 강화하면서 이를 위한 역내 동맹국들 간의 연대를 강조하고 있다. 민주주의·인권 등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이 '한 목소리'를 냄으로써 중국에 의해 역내 질서가 훼손되는 것을 막자는 취지다.
그런 바이든 정부 입장에선 자국의 주요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이 과거사 문제로부터 촉발된 정치·경제·외교·군사적 갈등을 이어가는 게 탐탁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본 측은 바이든 정부 출범 전인 작년 말부터 계속된 우리 정부의 관계 개선 '신호'에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 기업·정부에 대한 우리 법원의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및 일본군 위안부 피해배상 판결과 관련해 "한국 측이 책임지고 해법을 내놓지 않는 한" 관계 개선의 진의를 믿을 수 없다는 게 일본 측의 기본 입장이다.
이 때문에 정 장관이 국회 답변에서 "미국의 도움"을 얘기한 사실을 두고 "사실상 미국 측에 'SOS'를 친 것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부통령으로 재임하던 2015년 당시 한일위안부합의 성사 과정에도 관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바이든 대통령은 일본 정부가 2015년 말 부산 소재 일본총영사관 앞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된 데 항의하는 차원에서 주한대사와 부산 총영사를 일시 귀국시켰을 땐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촉구한 적이 있다.
그러나 한미 양국의 전문가들 사이에선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에도 그런 '적극성'을 보일지는 의문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위안부 문제의 경우 한일 양국이 이미 한 차례 '합의'에 이르렀던 사안인 만큼 또 다시 중재를 시도하기보다는 오히려 '양국 스스로 합의정신으로 돌아가라'는 식의 압박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뉴스1과의 통화에서 "블링컨 장관 등 바이든 정부 외교라인은 위안부합의에 관여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 측에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라며 "미국이 개입하더라도 우리 국내 사법판단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일본 측은 한국이 '현상을 변경했다'며 미국 측을 설득하고 있다"면서 "미국은 그런 일본의 주장에 설득력이 있다고 볼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바이든 정부가 '한국이 한일청구권협정과 위안부합의를 깼다'는 일본 측 주장에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마이클 그린 선임부소장은 일본 지지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바이든 정부와 미 의회 인사 대부분은 '한국이 일본과의 약속을 깨고 문제를 일으켰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 싱크탱크 해리티지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선임연구원도 최근 미국의소리(VOA)와의 인터뷰를 통해 "미국이 목표 달성을 위해 한일 간 갈등을 해소하는 데 어느 정도 노력을 기울이긴 하겠지만 공개적이고 적극적인 방식은 아닐 것"이라며 "미국은 한일 사이에서 '재판관'(judge)처럼 보이는 걸 원치 않는다"고 설명했다.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한일관계가 악화되는 건 미국으로서 바람직하지 않지만, 양국의 역사문제엔 직접 개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한일 모두 기존 입장으로부터 한발 물러설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걸 국민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가 문제"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역사문제는 단시간 내에 해결할 수 없지만, 경제·안보문제와는 분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ys417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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