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소외된 이웃을 위로하는 화해의 시"..박재홍 시인 7번째 시집 출간
[경향신문]
비 오는 숲속 소로에는 갈참나무 무리 지어 섰었지 덮고
누운 낙엽 아래, 방공호에 숨어 마려운 똥을 내려놓았는데
굴참나무 무리가 어깨를 흔들어 숨겨 주었지
그 후로 40년이 흘러 거름이 된 시심(詩心)은 모자 쓴 상수리와
도토리처럼 깊은 그늘 속으로 숨었지 반추한 기억 속
손에 신발을 끼고 기어 다니는
친구도 없는 열네 살 장애인 박재홍
박재홍 시인이 최근 실천문학을 통해 내놓은 시집 <갈참나무 숲에 깃든 열네살>의 표제시 ‘갈참나무 숲에 깃든 열네살’은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시에는 생후 6개월부터 열네 살까지, ‘직립 보행’ 꿈꾸는 시인 박재홍의 유년이 잠겨 있다.
그는 생후 8개월에 소아마비로 중증 장애인이 됐다. 열네 살까지 네 발로 기어다녔다. 그때부터 아버지와는 성격이 맞지 않았고, 그건 가족 간의 불화의 원인이 됐다. 바닷가에서 보던 아름다운 소라게는 자신을 닮았다는 생각에 슬퍼 보였다. 자신도 소라게처럼 짊어 진 장애와 가난한 부모와 형제와 함께 지금껏 살아왔다.
시인 박재홍은 불혹을 지나 지천명에 이르러 비로소 육체적 장애를 인정하고, 가족과의 화해를 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시간의 치유적 기능 덕분이었는지 모른다.
2010년 계간 <시로 여는 세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박재홍 시인이 이번에 일곱 번째 시집을 냈다. 시집에는 장애를 승화시킨, 선시(禪詩) 같이 여운이 있는 시 60편이 실려있다.
김종회 문학평론가는 “박재홍 시인의 시는 오랫동안 가족사의 아픔과 그 강박감을 붙들고 있었다”면서 “(이번 시집에서는)‘장애’의 불편을 감수하면서 겸손한 마음으로 이를 넘어서는 정신적 개가(凱歌)에 이르기도 하고, 삶의 현장에 부드럽게 밀착한 인식들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고 평가했다.
박재홍 시인은 발문에 “가장 낮은 곳의 민중을 향한 시선을 놓치지 않고, 급변하는 시대적 정세에 오염되지 않고자 했다”고 썼다.
그는 “장애가 불편했기 때문에 세상을 바르게 볼 수 있는 근력이 생겼다”면서 “왜곡된 세상에 상처받고 있는 장애인과 소외된 이웃들을 위로하는 화해의 시라고 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박재홍 시인은 1968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났다. 2015년 제10회 대한민국 장애인 문화예술대상 문학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마당>의 발행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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