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법지대' 법원 ② 법원이 70억 몰아준 업체의 '수상한 계약'

임선응 2021. 2. 19.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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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개의 업체가 있다. 둘 다 영세하다. 이 중 한 곳은 법인도 아닌 개인사업자로 신고돼 있다. 공장이나 가공 시설은 없다. 소규모 가구 도·소매 점포에 불과하다. 겉만 봐서는 내걸은 이름과 달리 '크게 흥한' 것 같지 않다. 

 그런데 이 두 업체가 수 년간 법원의 가구 구매 수의계약을 독차지했다. 나란히 1등과 2등이다. 전체 계약의 35%를 따냈는데, 70억 원에 이른다. 더 놀라운 건 두 업체가 실은 '하나'라는 거다. 어머니와 외삼촌이 각 대표로 일가족이 운영한다. 이 수상한 업체의 '경이로운 수의계약의 비밀'을 뉴스타파가 추적했다.  

"법원이 '편법'으로 계약 질서를 어지럽혔다"

 '수의계약'은 국가기관이 임의로 업체를 선택해 세금을 주고 물품을 구매하는 방식이다. 공개입찰 같은 별도의 공모 절차가 없다. 업체로서는 일단 선정만 되면 손쉽게 이익을 챙길 수 있다.

 2017년 7월, 엑스레이 검색기 3대를 구매한 부산지방법원 서부지원을 보자. 검색기 3대 구매하는데 세금 1억 4,850만 원을 썼다. 5,500만 원을 넘을 경우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이하 국가계약법)에 따라 반드시 '경쟁입찰'을 해야 한다. 

 하지만 법원은 이 법을 지키지 않았다. 계약을 1건이 아닌 3건으로 잘게 쪼갰다. 1건당 5,500만 원 밑인 4,950만 원으로 낮추고 경쟁입찰 대신 수의계약으로 검색기를 사들였다. 감사원은 법원의 편법을 이렇게 꼬집었다. "다른 업체의 입찰 참가 기회가 박탈되는 등 계약 질서를 어지럽혔다."

▲부산지법 서부지원은 경쟁입찰을 피하기 위한 편법 행위, 이른 바 '쪼개기'를 통해 수의계약으로 검색기를 구매했다. 

 '수의계약이든 경쟁입찰이든 구매만 잘하면 되지 않느냐' 하는데 그렇지 않다. 사달이 나고 문제가 생긴다. 수의계약은 공무원과 업체 사이에 유착·비리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이유로 서울시는 특정 업체와 한 해 5차례 이상 수의계약을 할 수 없도록 규정으로 못박고 있다.

 국가계약법도 수의계약을 엄격하게 제한한다. 구매 대금이 5,500만 원을 초과할 땐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26조에 따라 '천재·지변, 작전상 병력 이동 등' 아주 특별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반드시 경쟁입찰을 해야 한다.

법원이 ‘법을 우습게 안다'

 그러나 국가기관인 법원은 이 국가계약법을 수시로 무시했다. 수원고등법원은 2018년 10월 30일, 세금 5,290만 원을 들여 법원장 집무실 가구를 샀다. 같은 날 동일한 업체와 법원 사무국장실에 들어갈 가구의 계약도 맺었다. 금액은 3,057만 원이다. 

 법원장실, 사무국장실에 들어간 가구의 구매 대금을 합치면 8,347만 원. 즉, 5,500만 원을 넘기에 경쟁입찰을 해야 하지만 법원은 법을 지키는 대신 편법을 택했다. 계약을 두 개로 쪼개는 수법으로 금액을 5,500만 원 이하로 낮추고 수의계약으로 세금을 집행했다. 뉴스타파의 지적에 법원은 "적절하지 아니한 수의계약을 체결한 것에 대하여 송구하게 생각한다"며 잘못을 인정했다.

▲수원고법도 경쟁입찰을 피하기 위한 편법 행위, 이른 바 '쪼개기'를 통해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뉴스타파는 2015년부터 2020년까지 국가 예산으로 가구를 산 법원과 법원 부속기관 81곳의 구매 내역을 더불어민주당 김승원 의원실을 통해 확보해 전수 조사했다. 6년 동안 법원이 지출한 세금은 352억 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약 200억 원이 수의계약으로 집행됐다. 전체 예산의 절반이 넘는 56.8%를 차지했다. 

 수의계약 비중이 다른 정부기관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조달청이 발표한 '조달사업통계'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우리나라 전체 공공기관의 수의계약 비율은 평균 19.5%였다. 비슷한 기간, 대법원은 가구 19억 원 어치를 100% 수의계약으로 사들였다.

▲ 전국 법원의 가구 구매 수의계약과 우리나라 전체 공공기관의 평균 수의계약 비율 비교

탈법 넘어 위법까지...전국 법원의 ‘수상한 가구 계약’

 6년 동안, 법원으로부터 가구 구매 수의계약을 따낸 업체는 모두 600여 곳이다. 어느 업체가 수의계약을 많이 가져갔는지 분석했다. 

 D사와 S사가 1, 2위로 집계됐다. 전국 법원과 법원 부속기관 81곳 중 46곳이 D사, S사와 계약을 했다. 1위인 D사, 56억 6천만 원으로 압도적이었다. 2위 S사는 12억 9천만 원이다. 둘이 합하면 약 70억 원이다. 전체 수의계약 금액의 35%에 해당한다. 

 금액을 기준으로 하위 587개 업체가 가져간 수의계약을 모두 합친 69억 2천만 원보다 더 많다. 두 업체를 제외한 나머지 업체의 평균 수의계약 금액은 2천 100만 원에 그쳤다. 두 업체의 영업력은 그야말로 '경이로운' 수준이다.

▲D사와 S사, 두 업체가 수의계약으로 가져간 세금은 다른 나머지 업체에 비해 압도적이다.

 그런데 수상하다. 상당수 법원이 D사, S사에 수의계약을 몰아주면서 편법과 탈법, 심지어 위법 행위를 벌인 것이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서울동부지방법원은 2016년 12월 19일, 하루 동안 가구를 사는 데 세금 6,410만 원을 썼다. 5,500만 원을 넘기 때문에 국가계약법에 따라 경쟁입찰을 해야한다. 하지만 법원은 2,100만 원씩 계약을 3건으로 쪼개는 편법을 썼다. 그리고 D사와 S사에 각 1건, 2건씩 수의계약을 줬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16년 12월 30일, 6,528만 원짜리 가구 구매 계약을 4개로 잘게 쪼개 D사, S사와 각각 3건과 1건의 수의계약을 맺었다. 수원지방법원은 2018년 12월 10일, 6,800만 원짜리 계약을 두 개로 나눠 D사에 다 몰아줬다. 

 수원지법은 심지어 위법 행위까지 저질렀다. 2018년 12월 10일, 세금 3억 원을 들여 가구를 구매했는데, 약 9,900만 원짜리 계약 3건으로 쪼갰다. 그런데 모두 수의계약으로 D사, S사에 줬다. 국가계약법을 정면으로 위반했다. 

 뉴스타파의 취재 결과, D사, S사가 따낸 법원의 가구 수의계약 70억 원 가운데 약 19억 2천만 원 가량이 이렇게 편법과 탈법, 위법 행위으로 이뤄진 것으로 추산된다.

 D사, S사는 대체 어떤 곳일까. 1위 D사부터 확인했다. 그런데 법인 등기부등본을 찾을 수 없다. 50억 원 넘게 수의계약을 따낸 곳인데, 법인이 아닌 개인사업자로 신고돼 있다. 가구 제조나 공장 시설은 없다. S사의 경우 법인이었다. 역시 가구 생산 공장은 없다. 두 곳 다 흔한 가구 도·소매점으로 보였다.

▲전국 법원 가구 수의계약 1위 업체 D사는 법인이 아닌 개인사업자이다.

 서류 조사를 마치고 현장을 찾았다. 등기부등본에서 확인한 S사의 소재지가 있는 경기도 하남시로 향했다. 가보니 엉뚱한 배관 업체 간판이 걸려 있다. 가구와는 관련이 없는 배관 도매 업체였다. 아무리 둘러봐도 가구 업체라는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전국 법원 가구 수의계약 2위 업체인 S사의 소재지인 경기도 하남시. 배관 도매 업체가 자리하고 있다.

 이번에는 서울 중구 을지로에 있는 D사로 향했다. 여기도 이상했다. D사의 상호 옆에 S사의 간판이 나란히 걸려 있다. '설마... 같은 업체인가?' 의심이 갔지만 D사와 S사 직원은 딱 잡아 뗀다. 서로 모르는 업체라고 말했다. 

▲전국 법원 가구 수의계약 1, 2위 업체인 D사와 S의 간판이 나란히 걸려 있다.

세금 70억 원 따낸 두 업체...알고 보니 '하나의 일가족 업체'

 업체의 거짓말이 곧 드러난다. D사의 개인사업자로 등록한 이는 김모 씨다. 그런데 김 씨는 S사의 법인 사내이사로도 등재돼 있다. S사의 대표이사는 김 씨의 남동생이었고, 감사가 김 씨의 아들이다. D사와 S사는 이름만 다를 뿐 일가족이 운영하는 하나의 업체였다. 이런 증거를 내밀자 그제서야 사실을 실토했다. 

▲취재 결과, D사와 S사는 일가족이 운영하는 하나의 업체로 드러났다.

 법원과의 수의계약 1, 2등 업체가 실은 하나였고, 수십억 원의 수의계약을 따내는 과정에서 법원은 탈법·위법 행위까지 저질렀다. '업체와 법원 사이에 커넥션이 있는 것 아니냐' 이런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가구 업체 사이에선 이런 소문까지 나돌았다. 

'법원에 D사 모르는 사람 아무도 없다. 경조사부터 해서 골프 안 쳐본 놈 없을 거고, 용돈 안 받아본 놈 없을 거다' 할 정도로 아주 오랫동안 그냥 전체적으로 연결돼 있어요.
- 모 가구업체 관계자

 그러나 해당 업체는 펄쩍 뛴다. 업체는 남들보다 'A/S(After Service)'를 잘해줘서 계약을 많이 한 것이라며 '커넥션'을 극구 부인했다.  

법원에서 저희가 일을 잘해서, 하나라도 더 챙겨줬던 걸지도 모르죠. 저희가 주문 제작 같은 것도 좀 많고요. 그리고 A/S 같은 거…
- D사 직원 손모 씨

서비스 잘해주고 그러니까 자꾸 법원에서 찾아서 납품하는 거지, 위에서 무슨 힘이 있고 그런 회사는 아닙니다.
- S사 대표 김모 씨

 법원이 수의계약으로 세금 70억 원을 몰아준 이유가 'A/S'가 좋아서라니. 믿기지가 않았다. 법원에 아는 공무원이라도 있는 건 아닐까. 그러나 업체는 강력 부인했다. 아는 법원 공무원이 단 한 명도 없다고 버텼다. 

 사실 확인을 위해 추가 조사에 들어갔다. 업체와 법원 주변을 탐문했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소문은 무성했지만 물증은 희박했다. 결국 국회 법사위 소속 의원실에 협업을 요청했다.

 지난해 12월 15일, 뉴스타파는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실을 통해, 각급 법원이  D사, S사에 수의계약을 몰아주던 시기, 구매 담당 공무원이 누구였는지 전국 법원에 자료를 요청했다. 그러나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 법원은 자료를 보내오지 않았다. 

 취재를 포기할 때쯤, 엉뚱한 곳에서 단서가 나왔다. D사 관련 정보를 검색하던 중 2004년 당시 D사 대표였던 손모 씨의 부고 기사가 눈에 띄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공무원 A씨가 별세한 D사 대표의 사위로 등장한다. 

▲2004년 별세한 D사 대표의 부고기사

 취재 결과를 내밀자, 업체는 마지못해 실토했다. "(누나의) 딸들이 많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황당한 해명도 내놨다.  

질문: 법원 공무원 그분 와이프가 손OO 씨가 맞잖아요? 답변: 손OO 씨는 모르겠다니까. 기억이 안 난다니까. (누나의) 딸들이 많아서...
- S사 대표 김모 씨

질문: 법원 조직에서는 (D사, S사가) 장인어른께서 하셨던 업체라는 사실은 알고 있나요? 답변: 일부 사람들은 알고 있겠죠. 저도 결혼한 지 오래됐고 일부 사람들은 알고 있을 겁니다.
- 법원 공무원 A씨 (D사·S사 사위)

 뉴스타파가 찾아낸 법원 공무원 A씨는 20년 넘게 법원에 재직 중이다. A씨가 거쳐간 근무처가 어디인지, 현재 어느 부서에 있는지 추가로 조사했다. 확인 결과, A씨의 현 근무처는 대법원 법원행정처, 그 중에서 기획조정실이었다. 전국 법원의 조직, 예산 등의 운영을 총괄하는 부서다.  

▲D사를 현장 취재하던 중 만난 직원 손모 씨. 남편이 법원 공무원 A씨이다. 

 여기에 중요한 사실을 하나 더 찾아냈다. 취재진이 D사를 방문해 가족 사항 등을 물었을 때,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발뺌한 여성이 있었다. 취재진은 당시 평범한 직원인줄 알았다. 

 그런데 이 여성이 법원 공무원 A씨의 부인이었다. D사 대표인 김 씨의 딸이다. 외삼촌이 대표, 남동생이 감사로 있는 S사에서 전직 감사를 지냈으며, 지금은 D사로 출근해 어머니를 돕고 있다. D사, S사 모두 이런 사실을 끝까지 숨기려고 했다.

▲ 뉴스타파 취재로 완성한 전국 법원 가구 수의계약 1, 2위 업체인 D사와 S사의 가계도.

 당사자인 A씨와 업체는 '커넥션'을 강력 부인했다. A씨는 수의계약에 자신은 어떤 영향력도 행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A씨는 올해 1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에 발령을 받았고, 지금까지 가구 계약 업무를 한번도 담당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지금 서무 업무를 하고 있거든요. 문서 수발이나 행정업무, 행정절차 그런 내부적인 업무를 하고 있고, 예산이나 시설이나, 재무 업무와는 저와 관련이 없습니다.
- 법원 공무원 A씨 (D사·S사 사위)

 지난 두 달 동안의 취재를 통해, 뉴스타파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혀냈다. 

① 지난 6년 동안 대법원을 포함한 전국 46개 법원과 법원 부속기관이 두 업체(D사, S사)에 70억 원의 수의계약을 몰아줬다. 전체 계약의 35%에 해당한다. 

② 두 업체가 법원으로부터 수의계약을 따내는 과정에 수많은 편법과 위법이 동원됐다.  

③ 이 두 업체는 생산시설도 없는 가구 도·소매점이었고 이 중 한 곳은 개인사업자였다. 

④ 두 업체는 알고보니 어머니, 외삼촌, 남동생 등 일가족이 운영하는 '하나의 업체'였다. 이런 사실을 감추려 했다.  

⑤ 업체 대표의 사위, 조카사위인 A씨가 법원 공무원으로 재직 중이었고, 그의 부인은 어머니 업체(D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업체 측은 이런 사실을 끝까지 숨기려고 했다.

 그러나 해당 업체와 A씨, 그리고 법원은 이렇게 맞선다. 

① 가구 A/S를 열심히 하는 등 남들보다 영업을 잘해 수의계약을 따낸 것이다.

② 법원 공무원으로 20년 재직 중이지만, 수의계약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았고, 가구 구매 담당 업무도 맡은 적이 없다. 

③ 법원은 수의계약 과정에서 특정 업체에 특혜를 준 것은 없다.

 뉴스타파의 취재는 여기서 멈출 수밖에 없다. 이 수상한 업체의 '경이로운 수의계약 비결'을 밝혀내는 일은 이제 법원의 자정 능력과 검찰 등 외부의 수사에 달렸다.  

 뉴스타파는 2015년부터 2020년까지 국가 예산으로 가구를 산 법원과 법원 부속기관 81곳의 구매 내역을 법원을 대신해 공개한다. <6년 간 전국 법원 가구 구매 내역 보기> 투명한 공개가 최고의 감시이기 때문이다.      

뉴스타파 임선응 ise@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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