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형 조선사 연이어 사들이는 사모펀드, 투자인가? 투기인가?
(시사저널=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자금난에 허덕이는 중형 조선사들이 눈물의 빅세일에 나섰다. 사모펀드와 인수·합병(M&A) 업체가 여기에 뛰어들어 '쩐의 전쟁'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이 과연 투자자본인지, 투기자본인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자회사인 신한중공업이 매물로 나왔다. 일감이 없어 현재 가동 중단 상태다. 신한중공업은 울산 온산국가산업단지 내 69만4000㎡(21만여 평)의 부지를 보유 중이다. 자산 3269억원, 부채 3280억원 상태다. 신한중공업은 지난해 6월 회생 절차를 개시한 후 새 주인을 찾고 있다. 예상 매각가는 1000억원대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자산가의 30% 수준이다. 신한중공업은 지난 1990년 설립 후 해양플랜트 설비 제작에서 독보적 기술력을 인정받아 2007년 대우조선해양이 인수한 후 지난해 말 기준 대우조선해양이 지분 89.22%를 보유하고 있다.
신한중공업 인수의향서(LOI)를 낸 업체는 NH오퍼스, 범양·무궁화컨소시엄, 파인트리자산운용, 스트라이커캐피탈매니지먼트, 세진중공업, 에이치엘비(HLB) 등 6곳이다. 이들 중 4곳은 펀드를 조성해 재원을 마련하는 재무적 투자자(FI), 2곳은 조선 관련 동종업체인 전략적 투자자(SI)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은 2월24일 결정된다. 평가기준을 보면 경영 정상화나 기술 경쟁력은 극히 미미한 반면, 인수대금을 많이 제시하는 업체가 가져가는 구조다. 조선업에 전문성이 없는 재무적 투자자들이 신한중공업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투자은행(IB) 업계는 "조선경기 불황으로 저평가된 신한중공업 땅은 재무적 투자자에게는 매력적인 투자상품"이라고 말한다.
'딜'의 핵심은 부동산이다. 신한중공업은 해양플랜트 제품 생산부지 조성을 위해 2013년 6월 해안매립(38만7000㎡) 공사에 착수해 2019년 12월 완공했다. 총공사비는 1932억원, 3.3㎡당 조성원가(취·등록세 포함)가 165만원 들어갔다. 하지만 이번 입찰 예정가는 50만원 정도로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인근 공장 부지는 100만원 선에 거래된다. 신한중공업 1, 2차 부지를 합하면 약 70만㎡인데 땅이 너무 크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경기 침체까지 장기화되면서 아무나 손댈 수 없다. 울산공장장협의회 관계자는 "해안을 끼고 있는 이 땅은 기업을 하기 좋은 노른자위다. 경기가 풀리면 땅값 상승은 시간문제"라고 전망했다. '쩐의 전쟁'을 벌이는 재무적 투자자들에게는 이만한 매물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울산시는 신한중공업 부지에 풍력발전단지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협상대상자가 직접 시행할 수도 있지만, 풍력발전사업자에게 땅을 팔아 시세차액을 남기는 쪽을 택할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견해다. 신한중공업 근로자들은 동종업계에서 인수해 기업 회생에 주력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투기자본 형태의 사모펀드에서 회사를 인수하면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단계적으로 조선업을 접을 것이고, 땅장사를 위해 '먹튀' 폐업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영도조선소 부지에 아파트 지을 것" 관측도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매각도 부동산 투기 의혹에 휩싸였다. 지난해 12월 한진중공업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등이 조선업과 관련 없는 동부건설 컨소시엄(사모펀드)을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노동계와 지역사회는 이번 매각 성사로 영도조선소는 폐쇄되고 부동산 개발이 이뤄질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심진호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장은 "동부건설의 사실상 모회사인 한국토지신탁은 부동산 개발로 이익을 내는 회사다. 조선업을 유지하지 않을 거라는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매각 조건으로 3년 이상 조선업을 유지한다는 내용을 달았지만, 그 후에는 조선소를 정리해도 된다는 면죄부를 준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부산시도 조선업 정상화와 고용 유지가 어려운 곳을 선정한 산업은행 측에 유감을 표했다. 땅 투기 가능성을 막기 위해 부지의 용도변경 불허 카드도 꺼냈다. 변성완 부산시장 권한대행이 "조선소 부지에 부동산 가치만을 우선시하는 개발에 대해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차단하겠다"고 경고할 정도였다.
동부건설 컨소시엄은 조선소 자리에 아파트를 지을 것이라는 일각의 관측을 일축한 바 있지만, 부지 용도변경과 개발 이슈가 M&A 딜의 전 과정을 이끌어온 만큼 주목받고 있는 '금싸라기 땅'이다. 부산경실련은 예비입찰에 사모펀드와 신탁사, 해운사 등 조선업과 직접 관련이 없는 7개 업체만 참여한 것은 부산 최대 조선소의 존속이 불투명한 상황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부산경실련은 "조선업 회사 매각에 투자회사들이 몰리는 이유는 단 하나, 이곳이 상업지로 용도변경되면 대규모 개발이익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조선업 유지 의무기간인 3년이 지나면 이 땅을 다른 용도로 개발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 시민연대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투자금 회수라는 자본논리에만 매몰돼 사모펀드와 같은 투기 세력에게 부산의 대표 조선소를 매각했다고 성토했다.
"대규모 실업 사태와 지역경제 침체 우려도"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코로나19 장기화로 조선업 상황이 악화되면서 국내 중형 조선사들은 줄줄이 매각되는 운명을 맞고 있다. 지난해 3월 수출입은행은 성동조선을 HSG중공업과 큐리어스 PE(프라이빗에쿼티) 컨소시엄에 매각했다. STX조선해양은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유암코-KHC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뒤 본계약 협상을 진행 중이다. 인수금액은 2500억원이다. 업계 관계자는 "채권단이 낮은 가격에 적극 매각을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유암코는 기업 구조조정 전문업체로 정평이 나 있다. 유암코 컨소시엄은 구조조정 작업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조선업을 유지할지는 불투명하다는 게 조선 업계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매각에 어려움을 겪던 대선조선도 지난해 말 동일철강 컨소시엄과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대선조선은 2010년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체결한 이후 10년 만에 경영 정상화를 통해 채권단 관리를 졸업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중형 조선업 구조조정의 마지막 퍼즐은 그런대로 완성된 듯 보인다. 사모펀드가 매물로 나온 중형 조선소 대부분을 손에 넣거나 인수를 시도하고 있다. 문제는 과연 이들이 '부활의 뱃고동'을 울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전문가들은 조선 산업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축구장을 야구 구단주가 인수하면 축구장을 야구장으로 만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일 수밖에 없다. 강영훈 울산발전연구원 박사는 "펀드를 조성해 새 주인이 된 재무적 투자자들이 조선업을 유지해 나가며 경쟁력을 키워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이들이 조선업을 포기하고 부동산 매각이나 개발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면 대규모 실업 사태는 물론 지역경제와 국내 조선 산업에 금이 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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