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만 공부하랄 수 있나요"..금융시장 지킴이의 '배움경영'[피플&스토리-위성백 예금보험공사 사장]

2021. 2. 19.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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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석·박사 학위 보유한 학구파
직원 역량강화 위해 CFA 함께 도전
자격증 공부하다 내친 김에 집필까지
'회계! 내가 좀 알려줘?' 4쇄돌입 화제
금융사 건전성관리도 '지표보다 원리'
실질적인 위험 대비 역량강화에 중점
착오송금 반환제도 7월부터 도입 성과
캄코시티 정상화로 피해자 구제 숙제
위성백 예금보험공사 사장(사진)은 최근 ''회계! 내가 좀 알려줘?''라는 책을 내 화제가 되고 있다. 위 사장은 직원들에게 회계 공부를 강조하며 자신도 이에 동참해 CFA 시험을 함께 준비하고 있다. 올해로 3년 임기의 마지막 해를 맞아 착오송금반환지원제도, 캄코시티 사업 정상화 등의 결실을 거두기 위해 매진할 계획이다. 이상섭 기자

연초 금융권과 출판계에서는 ‘회계! 내가 좀 알려줘?’라는 책이 화제다. 1년에 1500부가 팔릴까 말까 하는 회계 관련 서적이 1월 초 출간된 지 한달만에 2200부가 판매돼 이제 4쇄 인쇄까지 들어갔다.

책을 쓴 주인공은 위성백 예금보험공사(예보) 사장(61)이다. 2018년 9월 취임한 위 사장은 2019년 직원들에게 뜻밖의 제안을 하나 한다. 자신과 같이 국제공인재무분석사(CFA) 자격증을 한번 따보자는 제안이다.

어렵기로 소문난 재경직 행정고시 출신에 서울대경제학석사에 뉴욕주립대 경제학박사학위까지 가진 위 사장이 다소 엉뚱한 도전을한 이유는 뭘까?

▶ ‘배움’으로 미래를 대비한다= “예보는 다른 금융사들을 평가해야 하니까, 그들보다 더 많은 회계지식이 필요해 보이더군요. 직원들에게 평소 회계 공부를 강조해왔는데, 목표 의식을 좀 더 가질 수 있도록 CFA를 하라고 권했죠. 고통분담(?) 차원에서 저도 같이 하겠다고 나섰죠”

최고경영자(CEO)가 선봉에 선 ‘전과’(?)는 상당했다. 그 해 59명이 CFA 1차 시험을 봐서 무려 45명이 합격했다. 예보 직원이 700여명인데, 8% 가까이 CFA에 도전해서 그 가운데 76%가 넘게 합격한 것이다.

CFA는 시험과목도 방대한데다, 영어로 치러야 한다. 이 때문에 금융관련 최고자격증으로 꼽힌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업무부담 와중에서 위 사장도 당당히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배움’은 그의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 가운데 하나다. 서울대 독문과를 졸업한 위 사장은 평소 관심있던 수학과 금융 공부를 더 하기 위해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에 진학, 화폐금융론으로 석사학위를 받는다. 이 때까지만 해도 행정고시를 제대로 준비할 생각이 없었다. 석사장교로 군 복무를 마친 뒤에야 행시를 준비했고, 1년 남짓한 준비기간 만에 단숨에 합격했다.

“전역 후 진로를 고민하다 그 동안 배운 것을 활용해보고자 재경직 행정고시를 봤죠. 다행히 경제학, 통계학 이런 것들이 다 기초가 돼 있었어요. 암기보다는 원리 이해하는 방식으로 공부를 해와서 오래 전에 공부한 것들도 비교적 잘 기억하는 편이죠”

미국 연수시절에는 뉴욕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보통의 공무원들이 석사학위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굳이 미국에서 그 어려운 박사학위에 도전했다. 배움에 대한 끝없는 갈증 때문이다.

“석사 학위를 따둔 덕분에 바로 박사과정 들어갈 수 있었어요. 당시 주제는 계량경제학을 바탕으로 한 예측(forecasting)이었습니다. 어떤 방법을 썼을 때 가장 좋은 예측결과를 얻을 수 있느냐인데, 다행히 숫자에 관한 걸 원래 좋아해서 학위를 받을 수 있었어요”

학문을 공부하듯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위 사장은 가장 바탕이 되는 것부터 이해하려 한다. 직원들도 서류로만 이해하지 않는다. 그는 취임 후 첫 정기 인사에서 팀장급 이상 직원 200명에게서 이메일로 자기소개서를 받았고, 주말을 이용해 일일이 답장을 보냈다. 소위 ‘복붙(복사해서 붙여넣기)’ 식의 형식적 답장이 아니라 직원 한명한명에 맞는 회신을 했다. 그 결과 취임 초부터 조직의 업무를 단번에 파악하고 분위기를 다잡을 수 있었다는 평가다.

▶기본원리가 중요…금융회사에도 기본 강조=예금자 보호를 위해 금융회사 건전성을 살피는 예금보험공사는 평소 때는 그 역할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코로나19 같은 비상 상황에서는 역할이 굉장히 중요해진다. 혹시 모를 상황에서 금융회사들의 건전성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적 활동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회사를 볼 때 기본이 되는 원리를 중요시하는 위 사장은 겉으로 들어난 숫자에 현혹되지 않는다.

“우리 금융회사들이 과거에 워낙 어려움을 많이 겪어서 위험관리를 강화했고, 꽤 튼튼해진 것도 사실이에요. 다만 숫자로 보이는 것과 실제 얼마나 좋아졌느냐는 다르죠. 코로나로 어려워졌는데 대출기한 연장해주고, 자금지원해주고 해서 어려운 부분 가려져 있을 수 있어요다. 숫자로 나타난 것보다는 조금 더 힘들 수 있어 대비를 해야 합니다”

그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실질적 재무구조다. 금융회사가 각종 지표에 만족하지 말고 실질적으로 위험에 대비할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영구채나 자본증권 같은 것들은 보완자본으로 기초자본과는 완전히 다른데 다만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만해준다는 점을 경계하고 있다. 보완자본은 위기때는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겉으로 꾸며진 숫자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공모주 청약예금, 인천공항 산파=위 사장은 30년간 공직생활을 하면서 기획재정부 산업재정기획단 건설교통재정 과장, 공공혁신본부 제도혁신팀장, 공공정책국 정책총괄과장, 기획조정실 기획재정담당관 등을 역임했다.

재무부 증권국 사무관 시절인 1993년 공모주 청약예금을 만들었다. 청약예금에 예금액에 비례해 공모주를 청약할 수 있게 하는 현재의 시스템이 그의 작품이다.

기업에는 자본조달을 돕고, 가계에는 투자수익을 안겨줄 기회를 마련해주는 획기적인 사업이었다.

건국 이래 최대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인 인천공항 건설사업도 그의 손을 거쳤다. 대규모 공공사업을 진행할 때 재정부담을 줄이기 위해 공기업 자금을 매칭(matching)해서 투자하는 구조를 고안한 게 바로 위 사장이다. 재정으로만 사업을 진행하기에는 부담이 큰 경우 공기업의 자금을 함께 투자해 사업의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올해 3년차 임기 마지막 해 …결실에 최선=“저는 원리 이해하는 방식으로 공부합니다. 그래서 월말 고사 때는 시험점수가 좀 덜 나오고 연말,기말고사 때 잘나오죠.”

2018년 예보 사장에 임명돼 올해 3년 임기의 마지막 해를 맞는 위성백 사장은 시험으로 치면 임기의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다. 그만큼 예보는 올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일들의 결실을 맺을 시점에 와 있다. 우선 착오송금 반환지원제도가 오는 7월부터 시행된다. 은행 계좌번호 등을 잘못 입력해 돈을 엉뚱한 곳으로 보내게 됐다면, 예보를 통해 통해 돈을 반환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은행뿐 아니라 토스, 카카오페이 등 선불전자지급수단도 지원 대상에 포함된다. 2019년 기준 3203억원의 착오송금이 발생했고, 그중 1540억원이 원래 주인에게 돌아가지 못했는데 그 같은 피해를 막을 수 있게 된다.

부산저축은행 피해자 손실을 보전하기 위한 캄보디아 캄코시티 사업 정상화도 박차를 가한다. 캄코시티는 한국인 사업가가 진행하던 신도시 사업으로, 부산저축은행이 2369억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부산저축은행의 파산, 캄코시티의 분양실패 등으로 현재까지 중단된 상태다.

부산저축은행 파산관재인인 예보는 캄코시티 자산을 매각하거나, 사업을 재개하는 식으로 현금을 마련해 부산저축은행 피해자 약 3만8000명에 손실을 보전할 계획이다. 지난해 법적 분쟁을 대부분 해결하고 사업을 정상화할 계획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다소 지연된 면이 있었다. 예보는 캄보디아 정부 등과 캄코시티 사업 정상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피해자 손실 보전에 최선을 다한다는 계획이다.

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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