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의 신경영 비전] 공매도와 게임스탑

이성재 2021. 2. 19.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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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전 두산 사장·물리학 박사] 공매도란 빌린 주식을 파는 것이다. 내 것도 아닌 남의 주식을 빌려서 판다는 게 사기처럼 들릴 수 있고 공매도의 공격을 받던 테슬라의 CEO인 일론 머스크도 공매도는 사기라고 비난했지만 사실 공매도는 주식시장이나 채권, 외환, 코모디티 시장에서 수백 년 동안 이루어지고 있는 합법적인 거래형태이다.

주식을 사지 않고 빌려서 파는 이유는 주가가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이다. 어떤 주식이 한 달 뒤 지금보다 낮은 가격으로 거래될 가능성이 높을 경우, 지금 그 주식을 빌려서 현재 가격으로 팔고 한 달 뒤 주가가 떨어졌을 때 낮은 가격으로 주식을 사서 빌린 주식을 갚으면 주가 차이만큼의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주가가 떨어지지 않고 오르게 되면 공매도를 한 사람은 오른 가격으로 주식을 사서 빌린 주식을 갚아야 하기 때문에 손실을 보게 된다. 주식을 살 필요 없이 빌리는 수수료만 부담하면 주가 차이에 따른 이익이나 손실이 고스란히 자기 것이 되기 때문에 공매도는 전형적인 고위험 고마진 투자로 분류된다.

공매도는 위험성이 높다는 것 외에도 주식을 빌리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개인 투자자는 하기 어렵고 대개는 헷지펀드와 같은 기관 투자자들의 전유물이 되고 있다. 문제는 기관 투자자가 공매도를 한 주식은 주가가 하락하는 경우가 많고 그 과정에서 주식을 보유하고 있던 개인 투자자들은 공매도에 동참하여 손실을 보전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속절없이 손실을 볼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주가가 떨어질 주식을 산 게 잘못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손실을 본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주가 하락의 원인을 공매도에서 찾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때로는 공매도를 한 기관 투자자가 고의로 회사에 대해 안 좋은 정보나 악성 루머를 퍼뜨려 주가 하락을 조장한다는 비난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공매도로 손실을 본 개인 투자자가 공매도로 막대한 수익을 챙기는 기관투자자에 대해 무력감과 적대감을 느끼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달 미국 증시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오프라인에서 비디오 게임을 파는 소매점 체인인 게임스탑의 주식을 공매도한 헷지펀드에 대항하여 온라인 토론방에서 힘을 모은 엄청난 수의 개인 투자자들이 게임스탑 주식을 매집하면서 게임스탑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것이다. 처음에는 철모르는 아마추어들의 불장난 정도로 여기던 헷지펀드들도 20달러이던 주가가 300달러가 넘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전문가들을 동원해서 시장에 주가 하락에 대한 공포심을 불어 넣으려 해도 헷지펀드를 혼내주겠다는 의지로 뭉친 개인투자자들은 흔들림 없이 주식 매수를 계속했다. 결국 헷지펀드들은 공매도를 포기하고 비싼 가격에 주식을 사서 빌린 주식을 갚을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공매도를 주도했던 헷지펀드 멜빈 캐피탈은 투자원금의 50%가 넘는 손실을 감내해야 했고 공매도에 동참했던 다른 헷지펀드들 역시 막대한 손실을 입고 공매도를 정리해야만 했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것이다.

불행히도 게임스탑 스토리는 개인투자자들에게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 초기 공매도를 주도했던 헷지펀드들은 굴복시켰지만 펀더멘털 이상으로 고평가된 주가가 제자리를 찾으면서 막판에 뛰어든 개인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입게 되었다. 주가 하락을 감지한 또 다른 헷지펀드들이 새롭게 공매도를 해서 수익을 올렸다는 말도 들린다. 하지만 게임스탑 주식 공매도를 두고 헷지펀드와 개인투자자들이 벌인 치열한 공방으로 공매도 시장이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된 것은 분명하다.

이제 더 이상 공매도는 헷지펀드들의 쉬운 수익원이 아니다. 공매도를 시도하려는 헷지펀드는 개인투자자들의 집단 공격을 받을 위험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게임스탑에서 성공을 맛본 개인투자자들이 다음 공격 대상 공매도를 찾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공매도의 주요 타깃이 되어온 셀트리온과 같은 회사의 주식을 매집하자는 개인투자자들의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공매도를 꼭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다. 주가가 지나치게 고평가 되는 것을 막아주고 문제가 있는 기업의 실체가 세상에 드러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장에 공포심을 불어 넣어 과도한 주가 하락을 부추기는 역기능 역시 부정하기 어렵다. 이제 게임스탑 사태로 공매도의 역기능이 어느 정도 순화될지 지켜볼 일이다.

이성재 (shower@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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