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주 띄울 때 나는 냄새 알드래요?"

글·사진 이남석 자전거 여행가 2021. 2. 19.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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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촌일기9]
겨울밤 고요함이 극에 달하면, 환청 여행을 떠난다
눈이 내린 도광터. 길을 내기 위해 눈을 쓸고 있다. 산골에서는 중요한 하루 일과다.
산골의 겨울밤은 길고 조용하다.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는 동안 평상시에는 들리지 않던 샘에서 물이 어는 소리를 따라간다. 골에서 일어난 빙산 같은 바람이 언 가지를 후려치다가 훅 가랑잎을 날리며 숲 사이를 빠져나가는 소리를 좇기도 한다. 마치 섶에 불이 붙어 맹렬하게 타오르는 소리를 닮았다. 어떤 때에는 깜짝 놀라 문을 열고 낮에 불을 피웠던 화덕이 있던 자리를 확인한 적도 있었다.
소나무 가지가 비틀어질 정도로 추울 때 나는 소리와 날이 풀리고 땅이 꺼질 때 대기를 훑는 소리가 다르다. 긴 겨울밤, 생각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현실과 상상 사이를 자유롭게 떠다닌다. 행복과 불행에 대한 번뇌가 지나가면 사생에 대한 고통이 찾아온다. 자유로운 주제지만 또한 피할 수 없는 명제이기도 하다. 어떻게 거기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주변에 어떤 소리도 없으면 말 그대로 정적이라 할 수 있는데, 평소에는 들을 수 없던 기이한 소리가 들린다. 캄캄한 밤 내 손을 흔들어도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면 고요함은 최대가 되는데 그때부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 소리를 환청이라 표현한다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산골에서의 겨울밤은 이처럼 환청과 맞서야 할 때가 많다.
메주를 만들기 위해 장작으로 불을 지피고 있다. 어지간히 세게 때지 않고서는 콩이 익지 않는다.
어머니의 앓는 소리는 이유가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해마다 다섯 가마의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들었다. 2020년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아랫마을 농부로부터 세 가마의 콩을 구했다. 전국적으로 여름철 우기가 길어 밭작물이 왕성하게 자라지 못했지만, 강원도만큼은 큰 피해가 없었다. 매년 콩 농사의 추이를 보는 이유는 과연 올해 콩값이 얼마나 할 것인가를 예측하고 준비하기 위해서이다. 근동 동면의 좌운은 해마다 콩을 생산해 종자연구원에 제공할 정도로 많이 재배하고 있다. 그만큼 강원도는 콩 재배의 최적지로 강원도의 명성에 부합되는 지역이다.
맹동孟冬이라고 하면 절기로 입동이 있다. 땅과 물이 얼기 시작하고, 동물과 벌레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움으로 들어간다. 사람 역시 겨울나기를 준비하는데, 그 첫 번째가 김장이라면 다음은 장 담그기다. 서리가 내리고 논과 밭곡식을 모두 거두어들이면 동지를 전후 해서 콩을 삶고 메주를 만들었다.
“방이 쩔쩔 끓었드래요. 사무 밤낮으루 콩을 삶아 대니 방이 안 뜨겁겠수? 삭신 아픈 시아버지는 이래 아루막에다가 등을 지지구서는 ‘어이구 시원하다’ 했드래요.”
“저도 어려서 삶은 콩을 먹던 기억이 납니다. 삶은 콩 맛이 좋잖아요. 구수한 것이.”
“말하먼 뭐하드래요. 그때만 해두 먹을 게 없드래니 삶은 콩이 얼매나 맛있고 구수했겠수. 배가 고픈 차에 마구 먹다 보먼 어른들이 ‘그거 마이 먹으먼 설사한다. 마이 먹지 마라’ 사무 그라셨지. 그래도 아덜이 어디 말 듣나? 그냥 정신 없이 먹다가는 뒤에 가서 정나 들락거리느라 정신 없었지.”
공작산 너머 다리 옆 양지에 모여 한담을 나누던 노인 세 분은 번갈아 가면서 어릴 적 집에서 메주 쑤던 얘기를 이어갔다. 도랑 건너 하루갈이(소를 데리고 하루 낮 동안 갈 수 있는 밭의 넓이) 비탈밭에서 수확한 콩으로 메주를 쑤는 날이면 아궁이가 넘치도록 나무를 넣고 불을 지폈으니 방은 얼마나 뜨거웠겠는가. 콩을 삶고 나면 큰 소쿠리에 퍼내 콩물을 거르고 다시 함지박에 옮겨 식힌 후 으깼다. 절구에 넣어 찧기도 했지만 대부분 베나 무명 자루에 넣고 발로 밟았다.
생콩을 물로 씻고 있다. 씻은 콩을 하루 재운 뒤 다음날 삶는다.
이불에 밴 쿵큼한 군내
이렇게 으깬 콩을 평상이나 마루에 옮겨 놓으면 온 집안사람들이 매달려 메주를 만들었다. 널따란 나무판자나 도마 위에 으깬 콩을 올려놓고 반죽하듯 꾹꾹 다져서 콩 반죽 사이에 공기를 뺐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사각형이나 납작한 타원형의 모양으로 메주를 만들었다.
사실 이런 일은 완력이 센 남자가 해도 모자랄 판에 여인들이 했으니 그 신역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메주 쑤는 일을 끝낸 어머니들은 저녁 때 방에 눕자마자 앓는 소리를 한 것이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 하루를 재운 메주는 다음날이 되면 꾸덕꾸덕해지는데 이걸 짚으로 묶어서 볕이 잘 드는 처마나 기둥 보에 매달아 건조시켰다.
“띄울 때는 그 냄새가 말두 못하지. 그래도 그쩍이는 어디 알았나? 그 냄새 다 맡아가면서 잤지. 어머이가 메주하구 짚을 이래 섞어서 이불루 푹 덮었는데 뜰 때가 되먼 아주 냄새가 얼마나 고약한지. 이불에 밴 군내가 그해 여름까지두 쿵큼한 냄새가 안 없어졌드래요.”
노인들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절기마다 느끼는 특별한 햇볕을 쬐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들도 한때는 젊었을 것이다. 순환하는 계절에 따라서 꼬박꼬박 돌아오는 일거리를 한 번도 빠트리지 않고 했을 것이다. 그렇게 사지를 써서 한 일이 쌓이면서 몸은 노쇠해지고 일하는 것이 힘들어지니 이제는 지나간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유일한 낙이 된 것이다.
도광터에 와서 장을 담가보자고 생각하고 실천한 것이 10년이 넘었다. 지게로 가마솥을 지고 올라와 화덕을 만들고 처음 가마솥에 콩을 넣고 불을 지피던 기억이 아직도 뚜렷하다. 하지만 첫 출발은 기대만큼 좋지 않았다. 순전히 어릴 적 기억에 남아 있는 메주 만드는 방법에 의지한 것이 큰 실수였다. 덕분에 콩 한 가마니는 설익어서 버리고, 또 한 가마니는 태워서 버렸다. 비싼 수업료를 지불한 셈이었다.
콩이 끓기 시작하면 뚜껑을 열어 저어서 섞어 준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센 화력에 밑바닥 콩이 솥에 눌어붙는다.
솥이 눈물 흘리면 콩이 달궈진다
다음날 작업을 중단하고 주변에 경험이 풍부한 노인들을 찾아다니면서 하나하나 배우고 세세한 과정을 메모했다. 물론 불합리한 부분이나 개선해야 할 공정은 조심스럽게 창의력을 발휘한 부분도 있지만, 역시 경험 많은 분들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된장을 대량으로 만드는 곳에서는 콩을 고압의 수증기로 삶고 메주를 성형하는 것도 모두 기계로 하므로 별문제가 없다. 하지만 나처럼 대여섯 가마의 콩으로 된장이나 막장을 만드는 사람에게는 하나하나가 손으로 해야 하는 공정들이며 그 과정 모두 중요하다.
10년이 넘도록 이 작업을 반복했으니 이젠 모든 과정이 나름 표준화되고 손에 익었다. 콩을 삶는 것부터 시작해서 메주를 만들고 말려 띄우는 과정까지 장인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어도 실수 없이 해낼 수 있게 되었다. 최대 여섯 가마의 콩은 혼자서 매일 한 가마씩 작업을 했다. 두 명이 작업한다면 열 가마 정도는 큰 무리 없이 할 수 있을 정도로 모든 공정이 표준화되었다.
다 익은 콩을 퍼내는 모습. 콩 한 알도 태우지 않고 삶는 게 기술이다.
콩을 삶기 전날 생콩을 깨끗이 씻어서 바구니에 담아놓는다. 그것을 강원도에서는 콩을 하루 재운다고 한다. 사람들은 보통 콩을 물에 담가 불리면 쉽게 삶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맞지만 하나는 맞지 않다. 콩을 물에 오랫동안 불리면 콩에 함유된 기름 성분이 모두 빠져나가 소위 말해서 콩을 삶아도 찰기가 없어진다.
콩을 삶는 날은 새벽 5시에 일어난다. 하루 재운 콩을 솥에 넣고 물을 길어다 붓는다. 물의 양을 조절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콩 위로 엄지와 검지로 한 뼘 정도 되도록 물을 채운다. 너무 많이 부으면 끓어 넘치기 쉬우며, 너무 적게 부으면 뜸을 들일 때 타기 쉽다. 물을 다 채우면 다음은 불땀이 좋은 장작으로 아궁이를 가득 채운 후 불을 댕긴다. 장작에 불이 붙으면 이때부터 불과 솥을 동시에 살펴야 하는데 끓기 시작하면 솥뚜껑을 열어놓고 콩이 충분하게 익도록 괄하게 불을 땐다.
솥이 눈물을 흘린다고 하는데, 이것은 끓기 직전 수증기가 무쇠솥 뚜껑에 맺히면서 솥 밖으로 물방울이 나오는 현상을 말한다. 그때는 솥뚜껑을 열어 놓고 최대한 화력을 높인다. 그리고 끓으면서 생기는 거품을 큰 주걱이나 바가지 같은 것으로 제거한다.
솥에 물이 줄어들고 콩이 익기 시작하면 장작을 더 넣지 않고 밑에 있는 숯불로만 뜸을 들인다. 이때부터는 솥뚜껑을 새끼손가락 하나 정도 들어갈 만큼만 열어 놓는다. 말하자면 남아 있는 화기로 콩을 익히는 셈이다. 이렇게 불을 때기 시작해서
5시간이 지나면 마침내 콩이 익는다.
콩을 고무대야에 넣고 으깨는 작업. 완벽하게 익어야 쉽게 으깨진다.
겁 없는 오소리의 방문
콩을 삶는 기간에는 집 주변으로 멧돼지나 오소리, 텃새들이 몰려든다. 냄새를 맡고 버려지는 콩이나 찌꺼기를 먹기 위해서이다. 그러니 콩을 씻거나 삶은 콩을 옮길 때, 혹은 메주를 만드는 과정에서 실수로 콩 부스러기가 바닥에 떨어져도 크게 염려하지 않는다. 며칠만 지나면 깨끗하게 없어지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침인가는 문을 여니 오소리 한 마리가 지척에서 뒤뚱거리면서 먹이를 찾고 있었다. 겨울을 나기 위해 얼마나 가을에 몸을 불렸는지 작은 체구임에도 모습이 풍선 같았다. 그냥 내버려 둘까 하다가 장난삼아 “어이!”하고 불러봤다. 그나 나나 함께 산속에 사는 친구니 벗을 한번 불러본 것이다. 사람 소리를 들으면 도망갈 줄 알았다. 그런데 고개를 돌려 한참 나를 노려보더니 그대로 식사를 계속했다.
메주 틀을 이용해 으깬 콩을 넣고 메주 모양을 만드는 작업.
이번 겨울은 다른 해에 비해 더 추운 것 같다. 지난해에 시작된 역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는 중에도 병을 물리치려는 전 세계 연구원들의 노력이 백신 기술 발전을 한 세기는 앞당겼다고 한다. 평시 같았으면 손 놓고 있을 백신 개발을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 각국에서 경쟁적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24시간이 활동 주기라 한다면 유익함을 얻는 시간과 쓸데없이 버려지는 시간, 행복해지는 시간과 번뇌가 밀려오는 시간의 비율은 어떻게 될까. 구분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일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누적되어 삶이 이어지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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