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도 참 쉽지 않네..LG엔솔-SK이노 협상 '난항'
(지디넷코리아=박영민 기자)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미국 전기차배터리 소송 판결이 내려지고 일주일이 지났다. 남은 건 합의금 협상이지만 두 회사는 협상을 재개할 기미가 없다.
합의금액 규모를 둘러싼 두 회사의 의견차가 큰 점도 이유지만 쟁점인 ‘영업비밀 침해’ 사실을 인정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19일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에 따르면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영업비밀 침해소송 판결 이후 양사의 합의는 단 한걸음도 나아가지 않았다.
양 측 모두 소송 전후로 "합의의 문은 열려있다"고는 하지만 합의금을 둘러싼 간극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판결 후 일주일 흘렀지만…아직도 불 꺼진 협상 테이블
우선 유리한 고지에 오른 건 LG에너지솔루션이다. 미국 ITC가 SK이노베이션의 일부 리튬이온배터리 셀·모듈·팩에 대한 미국 생산과 수입을 10년간 금지한다는 판결을 내리면서다. 현지에서 배터리를 생산해 공급하는 SK이노베이션으로선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업계는 양사가 소송 판결 이후 즉시 합의에 나설 것으로 예상했다. 판결 효력이 발생하기 전까지 60일이라는 짧은 시간이 주어졌고, 미국 대통령이 거부권(Veto)을 행사할 가능성도 있어 양측 모두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할 것으로 관측됐다.
문제는 배상 규모다. 양사는 배상과 관련한 협상을 여러차례 진행했지만 합의금 규모와 영업비밀 침해 인정 여부를 두고 평행선을 달려왔다.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5천~8천억원대, LG에너지솔루션은 3조원대 합의금을 바라는 것으로 전해졌다.
LG에너지솔루션 측은 합의금 눈높이가 가까워져야 추후 구체적인 지급 방식 등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미국 연방 영업비밀 보호법상 손배소 기준을 따르면 손해배상 금액의 최대 200%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지만 합의금에 이를 포함할 지는 SK이노베이션 태도에 달렸다"고 했다.
SK이노베이션은 3조원의 합의금 요구를 쉽게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SK이노베이션이 미국 조지아에 건설 중인 배터리 1·2공장에 투자한 금액이 3조원 규모다. 조지아 외에도 국내 서산, 중국 창저우, 헝가리 코마롬 사업장을 비롯해 최근 신규 투자를 결정한 헝가리 이반차 공장까지 앞으로 투자해야 할 금액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LG "지금이라도 영업비밀 침해 사실 인정해야" vs SK "인정 못 해"
SK이노베이션은 영업비밀 침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ITC가 절차상 문제점을 근거로 영업비밀 침해 여부에 대한 실체를 끝내 밝히지 못했다는 게 SK이노베이션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판결 내용을 면밀히 분석해 향후 항소 등으로 진실을 가리겠다"고 밝혔다.
업계 한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은 당시 LG화학(LG에너지솔루션)이 소송을 제기했을 때부터 줄곧 영업비밀 침해 사실을 부인해왔고, 이는 지금도 변함없다"며 "이 점이 애초에 합의 자체가 힘든 근본적인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합의 테이블에 앉는 순간 경쟁사의 영업비밀 침해 사실을 인정하는 모습으로 그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LG에너지솔루션 측 입장과 완전히 배치하는 반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전 사업부문을 통틀어 자사 인력이 SK이노베이션으로 유출됐고, 이들의 입사지원 서류에 배터리 양산 기술과 핵심 공정기술 등 주요 영업비밀이 담겼다고 주장해왔다.
소송 결과 이같은 모든 쟁점과 의혹이 소명됐고 확실해졌다는 게 LG에너지솔루션의 입장이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배터리 산업에서 지식재산권의 중요성과 영업비밀이 보호돼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했다"고도 강조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영업비밀을 침해했고 이 점이 미국 관세법 337조를 위반했다는 내용이 판결문에 명시돼있다"며 "이보다 더 실질적인 판단이 있을 수 있는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특허·손배소도 남았다…끝나지 않은 소송전 향방은
SK이노베이션이 포드 전기픽업트럭 'F-150'과 폭스바겐의 '모듈형 전기차 플랫폼(MEB)'에 공급하는 셀·모듈·팩 수입을 각각 4년, 2년간 허용했다는 점은 합의하는데 또다른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이를 '유예기간'으로 해석했다. 고객사에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2년여의 시간을 벌었으니 급할 게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LG에너지솔루션은 이 마저도 향후 손해배상소송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양 측은 합의를 위한 협상과 동시에 앞으로 특허소송과 손배소에도 임해야 한다. 이 소송들의 최종 판결에도 ITC 판결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영업비밀 침해소송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후 소송전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이 2019년 4월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제기하자, 9월 배터리 기술 특허침해 혐의로 ITC와 연방법원에 LG화학을 제소했다. LG화학은 자사 핵심 특허를 SK이노베이션이 침해했다며 ITC와 델라웨어주 연방법원에 특허소송과 손배소를 제기해 맞대응했다.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에 제기한 특허침해 소송 판결은 오는 7월 19일,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에 제기한 특허침해 소송 판결은 11월 30일에 나올 전망이다.
한편, 이번 소송 판결을 기점으로 배터리 업계에서 영업비밀 침해와 기술 유출, 특허 소송 등의 공방이 한층 격렬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에 비해 국내는 영업비밀 침해 등의 손해배상소송 처벌이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배터리는 주요 수출품인 메모리반도체와 비교하면 생산설비를 구축하는데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높은 편이 아니다"며 "영업비밀, 특허와 같은 무형의 재산을 두고 국내·외 업체가 앞으로 더 치열한 공방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영민 기자(pym@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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