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득 칼럼]정치인의 나라, 기업인의 나라

양승득 2021. 2. 1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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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일을 핑계로 이런저런 자리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기업인들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는 화제가 정치로 바뀌었을 때의 반응이었다. “제가 뭘 아나요...”라고 얼버무리거나 말끝을 흐리는 답이 우선 많았다. “재미없는 얘기 말고 다른 얘기나 합시다”라면서 말문을 닫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귀를 세우고 호기심을 보이는 경우는 별로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귀동냥하러 다니는 게 직업인 사람을 마주하게 되면 몰랐던 이야기라도 얻어걸릴까 싶은 표정을 지어 보이련만 ‘정치’ 냄새나는 단어만 나오면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이 꽤 됐다는 얘기다. 이런 현상은 최근 부쩍 심해진 것으로 기억한다. 원인은 두 가지 중 하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스토리가 별로였거나 나라 돌아가는 꼴에 넌더리를 내며 관심을 접은 것 중 하나에 해당하지 않았나 싶은 것이다. 말이 돌아서 왔지만 필자의 결론은 딱 하나, 기업인은 정치나 정치인에 대해 조심하고 속내를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기업, 기업인을 바라보는 정치인의 눈과 입, 가슴 속도 이럴까? 솔직히 말하자면 ‘반대’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최근 국회 주변에서 쏟아진 말과 통과된 법 등에 비추어 본다면 이런 판단은 확증에 가깝다. 기업이 판을 깔아놓은 행사장 등에 참석한 정치인이 기업을 추켜세우고 “기업인이 애국자”라는 찬사를 늘어놓아도 이는 겉치레 인사일 뿐이라는 걸 모르는 이들은 이제 거의 없다. 폭주하듯 밀어붙인 규제 3법도 모자라 중대재해법을 뚝딱 처리하고 또 다른 규제 폭탄을 만지작거리는 정치권에서 재계가 확인한 것은 지독한 반기업정서와 독선, 오만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고위 공무원들에게도 육두문자를 거침없이 퍼붓는 이 무대에서 “들어오라고 해”라며 여당 초선의원이 내뱉은 고압적 언사는 애교에 가까울지 모른다.

양측의 서로를 향한 시각이 왜 이렇게 다른지 원인을 콕 찍어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민심의 선택을 받았다는 선민의식과 자신들이 하는 일은 나라를 위한 것이고 마냥 옳다는 정치권의 근거없는 우월감이 배경이 됐다면 이는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선출된 권력이 하는 일은 모두 정의롭고 합리적이라는 편견과 아집에 사로잡힐 경우 이들 집단은 괴물로 돌변할 수 밖에 없어서다.

거대 여당이 장악한 21대 국회의 큰 특징 중 하나는 기업 활동과 관련된 법 제정에 특히 열심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개원 후 작년 말까지 쏟아낸 법들은 기업의 한숨과 비명을 배경으로 한 것이 압도적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기업인들 입에서 “백척 간두에 서있다”는 비명이 줄을 이었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복합쇼핑몰까지 의무휴업을 강제하는 유통산업발전법과 근로자3법, 이익공유법, 사회연대기금법 등이 줄줄이 국회 통과를 기다리더니 이제는 식품, 완구 등의 포장재 사전 검열을 의무화한다는 법안까지 나왔다.

쿠팡이 미국 증시 상장을 공식화한 뉴스가 최고의 화제가 됐다. 설립 10년을 갓 지난 신생 회사의 가치가 55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소식도 놀랍고, 누적적자가 4조5580억원에 이르는데도 이를 환영하고 주목한 미국 증시의 개방성과 실험 정신도 부럽다. 그러나 쿠팡의 미국행 결심에서 정치권이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될 것 중 하나는 ‘규제’다. 국내에는 아직 없는 경영권 방어장치인 차등의결권이 김범석 쿠팡 의장에게 부여된 것과 함께 유, 무형의 반기업 장벽과 규제를 벗어나기 위한 포석도 담겨 있는 것 같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뼈 아프다. 정치와 경제가 따로 노는 나라가 건강할 수 없다. 기업, 기업인을 경주마처럼 부릴 수 있는 지혜와 배포를 갖추길 정치권에 권한다. 경제를 견인할 기업, 기업인을 경마장(세계 시장)에서 마음껏 뛰게 하자. 말이 우승한다고 상금이 말에게 가나? 둔한 말도 죽을 힘을 다해 뛰게 만드는 기수가 많아야 상금도, 명예도 커진다.

양승득 (tanuki26@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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