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 물고문·생후2주아 내동댕이..아동학대, 왜 갑자기 늘었나
코로나 집콕 탓 가정폭력↑..사회 의식 강화도 한몫
(서울=뉴스1) 김도엽 기자 = '생후 2주 여아를 학대해 숨지게 한 익산 사건', '6개월간 방치되다 뒤늦게 발견된 구미 3살 여아 사망 사건', '10살 여자 조카를 물고문 학대해 끝내 숨지게 한 용인 이모·이모부 사건', '창밖으로 신생아를 던진 경기 일산 20대 친모 사건'….
양부모의 학대로 16개월 입양아가 사망에 이른 '양천 입양아 정인양 사망 사건' 이후에도 아동을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들이 줄줄이 터지고 있다. 그간 '분풀이성 폭행', '경제적 지원 끊기', '돈벌이에 이용' 등의 아동학대 사건 등은 빈번했지만 최근에는 잔혹하게 죽음에 이르게 하는 강력 사건들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아동학대 범죄가 더 잔혹해지고, 끊이지 않는 점을 두고 전문가들은 저마다의 해석을 내놨다. '양천 입양아 사망 사건'을 계기로 그간 쉬쉬하며 드러나지 않았던 사건·사고가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방어력이 취약한 아동이 범죄에 더 쉽게 노출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인이 사건' 이후 아동학대 신고 2배나 급증
살인, 강도, 성범죄 등에 비해 우선순위가 뒷전이던 아동학대 관심도가 높아져 시민들의 신고가 늘어난 점도 한몫했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18일 <뉴스1>과의 통화에서 "지난 2013년 '울산 계모' 사건 이후 아동학대 관련 신고율이 지속적으로 늘었다"며 "예전 같으면 사소하게 넘겼을 일도 이제는 시민들이 아동학대를 바라보는 '구심점'이 생긴 것"이라고 분했다.
잔혹한 아동학대 범죄가 발생하면 통상 시민들의 신고도 급증하는데, 이에 암암리의 아동범죄들도 더 많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는 것이다.
국민적 공분을 산 지난 2013년 10월 의붓딸을 폭행해 숨지게 한 '울산 계모 사건' 이전에는 같은해 8월, 9살 여아를 계모와 언니가 폭행해 숨진 '칠곡 계모 사건'이 있었고, 이듬해인 2014년 10월, 25개월 입양 여아를 쇠파이프로 때려 숨지게 한 '울산 양모 여아 살인사건' 등이 연일 이슈였다.
특히 울산 계모 사건이 발생한 해에는 아동학대 신고 건수가 1만3076건이었지만, 이듬해는 36.1% 증가한 1만7791건이 접수됐다. 이후 신고 건수는 매년 늘어 지난 2019년 4만1389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최근 양천 입양아 사망 사건으로 신고 건수가 급증한 것과 유사하다.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13일부터 올해 1월 말까지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월평균 267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그 이전 평균 월 180여건에서 47% 늘어난 수준이다. 경찰청은 지난 1~14일까지 하루 평균 아동학대 신고 건수가 47건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전년 동기 24건 대비 2배 가까운 95.8%나 폭증한 것이다.
◇코로나로 집에 머무는 시간 많아져 가정폭력 노출 증가
전문가들은 절대적인 신고 건수가 늘자 잔혹한 범죄들도 더 자주 접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연도별로 등락을 보이긴 하지만, 학대로 인해 사망한 아동은 지난 2014년 14명에서, 2019년 42명으로 3배 늘었다. 자칫 '단순 변사 사건'으로 묻힐 뻔한 사건들도 '잔혹한 학대 사망' 사건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단순 변사 사건으로 처리될 사건 중 전문가 소견을 거치면 아동학대 사망 사건으로 드러날 사건들이 많다. 양천 입양아 사망 사건이 대표적이다"며 "범인의 진술에만 의존해 사건화되지 못하고 암암리에 묻힌 아동 사망 사건들을 고려하면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수 있다"라고 했다.
단순 학대가 아닌 강력 아동범죄가 늘어난 점의 배경에는 코로나19가 적지 않은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가정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며 가정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이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코로나 영향으로 집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갈등으로 인한 가정폭력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강력 아동학대 있었지만 사회인식 바뀌며 더 많이 드러나"
반면 잔혹한 아동범죄들이 최근 들어 심각해진 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숱한 범죄들은 지금껏 있었으나,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훈육'이라는 이유로 폭력을 용인했던 사회에서 인식이 바뀌기 시작하며 묻혔던 사건들이 이제야 발견되는 것"이라며 "아동 사망 사건들을 다시 리뷰해 볼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숨겨졌던 아동학대 부분이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아동학대 사건은 일반 사건과 달리 지속성을 가진 범죄라 최근 급격히 학대 사건이 늘었다기보다, 시민들의 의식 성장과 함께 사소하게 봤던 작은 문제들도 신고해 늘어난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아동학대에 대한 시민적 관심도가 높아지자 범행도 더 치밀하고 잔혹해진다는 의견도 내놓는다.
경찰 관계자는 "'멍 자국 지우는 방법'을 검색한 익산 사건이나 범행 방법 등을 검색한 고유정 등을 보면 들키지 않았으면 완전범죄로 묻힐 수 있는 사건들이다"라며 "감시의 눈이 많아지니 그만큼 범죄의 수법도 치밀해지는 경향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dyeop@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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