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자사고 손 들어준 법원에 묻는다
(서울=뉴스1)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수 = 영화 '기생충'에서는 반지하에서 사는 사람들의 '냄새'를 상류계층과 하류계층의 구별기제로 사용하고 있다. 부르디에가 말한 아비투스, 즉 일종의 타계층과 구별되는 습성을 '냄새'로 구체화했다. 한국사회 전반에 구별과 차별의 인식과 문화가 거주지, 생활환경, 의료, 복지, 문화, 교육 등에서 나타나고 있다. 조선시대에 존재했던 반상의 차별이 교묘하고, 세련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재인 정부에서는 외국어고와 자율형 사립고(자사고) 국제고를 일몰하고 새로운 고교 체제를 개편하기 위한 과정에 착수했다. 특수목적고(특목고)와 자사고는 고교평준화의 보완 기제로 도입됐으며, 수월성과 다양성의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정책 목표와 실제의 간극은 매우 컸다. 일반고에 비해 별도의 선발권을 지닌 학교들은 결과적으로 고교 교육의 생태계를 파괴했다.
전기와 후기 선발체제로 이원화되다 보니 성적이 우수 학생들의 사실상 '싹쓸이' 내지는 '쏠림' 현상이 나타났다. 일반고의 '슬럼화' 현상이 발생했다. 이는 공정한 경쟁의 원리에도 맞지 않는다. 애초에 선발권을 가진 학교는 터보 엔진을 달고 출발하고 있고, 일반고는 경운기 엔진으로 달리는 상황에 이르렀다.
고유한 선발권을 가진 특목고의 입시는 불공정의 극치를 달렸다. 중학교 교육과정만으로는 입학이 어려웠다. 지금은 반영하지 않지만 한때 외고에서는 토익이나 토플 등 영어공인성적을 요구했다. 지금의 영재고와 과학고에 사교육 없이 진입할 수 있을까. 우수한 학생들이 모여드니 경쟁은 치열해지고, 자연스럽게 입학을 위한 사교육이 나타난다.
그렇다면 특목고와 자사고가 애초의 설립 의도대로, 취지대로 운영이 됐을까. 학교마다 편차가 있지만, 일반고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정도로 좋은 교육과정을 운영한 사례도 드물었다. 입시에 종속된 교육과정을 운영하면서, 교육과정 혁신을 게을리했다. 어떤 특목고나 자사고의 교육과정을 보면 한숨이 나올 정도로, 다양성의 가치를 고려한 교육과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결국 학교 체제는 다양화했지만 교육 내용은 입시로 귀결되는 획일화된 모습을 보였다. 우수한 학생을 모아놓았으니 입시 성과는 당연히 좋게 나올 수밖에 없고, 굳이 교육과정을 혁신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이른바 '땅짚고 헤엄치기식' 교육을 했다.
이러한 문제들은 계속 누적됐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입학전형을 개선하는 등 기능적 개선을 했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특히 자사고가 늘어나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공정한 입학전형의 설계다. 학원을 가지 않고도 중학교 교육만으로 합격이 가능한 구조를 보장해야 한다. 동시에 일반고가 특목고나 자사고에 비해서 불리해져서는 안된다.
두 번째로는 설립 취지에 맞게 운영하는가를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특목고와 자사고는 우수한 학생을 모을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 이러한 특권을 특목고와 자사고에 주는 근거는 무엇인가. 설립 목적과 취지에 맞는 운영을 하고 있는가를 지속적으로 평가하고, 피드백을 하고, 문제가 심각한 경우에는 지정 취소를 해야 한다.
세 번째로는 특목고와 자사고 제도의 일몰이다. 이제는 선발효과가 아닌 학교효과 내지는 교육과정 효과가 중요하다. 특목고와 자사고는 우수한 학생을 모으는 데 혈안이 될 것이 아니라 어떤 학생이 들어와도 그 학생의 잠재가능성과 고유성, 개개 인성을 잘 키우겠다는 학교의 비전과 철학을 먼저 세워야 한다.
더욱이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서 학생이 가야할 학교가 사실상 결정되는 교육을 통한 '구별짓기'와 '차별하기'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고교체제는 다양화', '교육과정은 획일화'된 경향이 있었다. 이제는 '고교체제는 단순화', '교육과정은 다양화'해야 한다.
학교 간에도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학교는 공유재다. 이제는 선발권 경쟁이 아닌 좋은 교육과정을 위해 노력하고, 지역내의 아이들을 함께 품는 네트워크형 학교를 시도해야 한다. 외고와 자사고, 특목고의 교육과정을 소속 학생들뿐만 아니라 지역의 아이들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한다면, 자사고와 특목고 일몰은 미래사회와 미래교육을 설계하는 데 매우 필요한 정책이다. 그런데 커다란 복병을 만났다. 외고와 자사고 측은 입학 전형 개선이라든지 자사고 평가, 제도 일몰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법적 소송으로 끌고 가고 있다.
아마도, 자사고와 외고 일몰을 허용하는 판결을 법원이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 듯하다.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가 심상치 않다. 지속적으로 외고와 자사고에 유리한 판결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이는 판사들 스스로 역사적 진공 상태 내지는 교육사에 대한 무지 상태에서 기계적인 혹은 기능적인 판결을 했거나, 본인이 지닌 세대 내지는 계층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결과로 판단된다.
본인 스스로 엘리트로서 개인의 자율성 내지는 선택권, 수월성, 사학의 자율성에 경도된 관점을 지녔을 가능성이 크다. 특목고와 자사고, 나아가 명문대 출신의 법조인들이 적지 않다. 그들의 자녀 내지는 손주들 역시 특목고와 자사고에 재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사고에게 유리한 이러한 판결을 낸 판사들에게 묻고 싶다. 그대들이 꿈꾸는 미래 학교와 교육의 모습은 무엇인가. 학교를 통한 계층의 통합 기능은 불가능한 것인가. 그대들은 경쟁 교육의 수호신인가. 특목고와 자사고 정책이 가져온 공교육의 황폐화 현상에 대해서 어떤 대안을 그대들은 제시할 수 있는가.
교육부와 교육청은 입학전형 제도 개선과 학교평가, 나아가 체제 개편을 할 수 있는 재량권은 전혀 없는 것인가. 교육부와 교육청은 가만히 있으란 말인가. 이 판결을 내린 판사 스스로 그동안의 경쟁교육에서 승리한 자아 혹은 자신감이 묻어있는 것은 아닌가.
공화주의란 무엇인가. 정치체제로서의 공화주의도 있지만, 삶의 관점으로 본다면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을 넘어 공동체의 이익을 살펴보려는 태도가 아닌가. 공화주의와 공공성의 가치를 사라지고, 특정 집단의 이익을 고려한 판결은 아닌가. 이런 식이면, AI(인공지능) 로봇 판사에게 판결을 다시 받고 싶다.
jinn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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