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C] 최소한, 68년 묵은 차별

2021. 2. 1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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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8일 국회 앞에서 열린 가사노동자 고용개선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강은미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원내대표),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대표), 안창숙 행복돌봄 이사장 등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오대근 기자

이분법은 위험하나 별수 없이 자주 소환하고 마는 잣대다. 요즘 내가 주변을 보는 눈은 자꾸만 두 가지 구분으로 흐른다. 타인의 노고와 헌신을 존중하는 이와 그렇지 못한 이. 타인의 성의의 눈에 밝아 ‘얼마나 고생이 많냐’고 묻는 이와 여기에 무딘 이. 깨끗하게 쓸고 닦인 자리를 볼 때면 거길 스친 ‘투명노동’의 노고를 떠올리는 이와 거기 무감한 이. 노동에 가능하면 더 제값을 치르려는 이와 기왕이면 공짜나 헐값으로 시키려는 이. 그렇기에 더 애정과 존경이 향하는 이와 견디는 데 다소 힘이 드는 이.

그나마 직면한 후자가 개인이라면 내심 안타까워하면 그뿐이지만, 정작 가장 견디기 어려운 건 법과 제도까지도 후자의 태도를 닮았을 때다. 볼 때마다 제자리걸음인 가사노동자 관련 논의는 그 대표적 예다.

1953년 근로기준법이 생기고도 가사노동자들은 법 밖의 존재였다. 법 제정 당시 '가사 사용인'을 예외로 둔 탓이다. 이를 바꾸겠다는 법안은 19대, 20대 국회에서 줄줄이 사라졌다. 그저 ‘무관심’ 탓이 컸다. 최근 국회에는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 제정안 (가사근로자법)’이 계류 중이다. 가사노동자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하고, 4대보험, 최저임금, 연차휴가, 퇴직금 등을 보장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가사서비스를 혁신 산업으로 육성하려는 취지도 강하다. 격렬한 반대도 없지만, 일사불란하고 절박한 추진도 없다. 68년 묵은 차별과 방관은 아직 진행형이다.

이 법은 논의가 이토록 더뎠던 이유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쟁점이 없다. 그나마 일각이 제기해 온 우려도 사소하고 갸우뚱하다. 비용 상승 우려만 해도 그렇다. 원래 치러야 할 대가를 법의 공백 덕에 치르지 않다가 대뜸 비용은 어떻게 하냐는 식이기 때문이다. 한 기사가 소개한 시민 반응은 이렇다. “안 그래도 (가사노동자 월급에) 200만원 넘게 들어서 힘이 드는데.” 이분은 어느 날 회사가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A님, 앞으론 4대 보험 없이 사세요. 퇴직금도 못 드리겠어요. 안 그래도 당신의 월급 때문에 우리가 너무 힘듭니다.”

가사노동자 대규모 구조조정 우려도 과장됐다. 그다지 절실하지 않고, 스스로 할 시간이 있는데도 가사노동자를 채용해 온 가정은 드물다. 누군가 맡아 하지 않으면 도무지 삶의 유지가 불가능한 필수 노동이 대부분이다. 일부 대형 업체로의 쏠림 현상, 고령 근로자 소외 등은 철저한 보완책으로 풀 일이지 법의 공백 방치가 그 대안일 리는 없다.

사실 가사 노동을 향한 차별이 어디 68년만 묵었을까. 훨씬 유구하다. 오죽하면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부키 발행)’라는 제목의 책이 다 있을까. 누가 청소, 빨래만 대신해주면 누구나 다 탁월한 성취를 이루는 건 아니지만, 고전 경제학의 아버지조차도 그 성취와 일부는 분명 그림자처럼 존재했던 그의 가족 혹은 가사노동자 덕에 만든 것이란 얘기다.

A가 새벽같이 회사에 나와 압도적 근면성실을 뽐내는 건 같은 시간에 온갖 가사와 육아를 대신하는 그의 가족 덕이다. B와 C가 고된 맞벌이를 마치고, 적어도 밤에는 설거지나 빨래를 하는 대신 잠을 잘 수 있는 건, 매일 낮 집으로 출근해 구석구석을 쓸고 닦고 치워둔 D 덕분이다. E가 육아 중 경력단절을 피한 것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아이를 돌봐준 F 덕분이다. 이들 중 누구의 노동도 공짜여서도 헐값이어서도 안 되는 건 매한가지다.

안 그래도 시장에서 노동은 점점 헐값이 돼 간다. 초유동성 시대에 모두의 임금 가치는 가만히 있어도 계속 추락한다. 진입 장벽이 낮다는 이유로 투명노동자들은 한 번 더, '집안일'이라는 이유로 가사노동자들은 거기서 한 번 더 차별받는다. 시장이 그런다고 법과 제도마저 그래선 안 된다.

매우 간단한 이치다. 모두는 자신을 대신해 장을 보고, 밥을 짓고, 먹고 난 그릇을 치우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분리수거를 하고, 속옷을 세탁하고, 셔츠를 다리고, 집 안 구석구석을 닦고 광내고, 노약자를 돌본 이에게 제값을 치러야 한다. 다 함께 수 백 년을 모른 체했을 뿐이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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