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업체만 37곳… 수직 상승하는 ‘거창’
지난 9일 경남 거창군 남상면 한국승강기안전기술원. 높이 102m 시험타워에서 엘리베이터 안전성을 검증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올려다보니 까마득한 34층 수직 공간. 도르래 모양의 권상기가 ‘카(car)’라고 불리는 엘리베이터 탑승 공간을 올렸다 내렸다 반복하며 점검하고 있었다. 안전 인증은 승강기를 건물에 설치하기 전 통과해야 하는 최종 관문. 승강안전기술원 이성일 운영지원팀장은 “국내에서 승강기 안전 인증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며 “추락이나 충돌, 문 끼임 등 갖가지 사고 상황을 가정해 테스트한다”고 말했다. 승강기 관련 부품 20여종에 대한 인증 업무도 진행한다. 200여곳에 달하는 승강기 제조사와 부품 제조업체 종사자들이 인구 6만1000명의 거창으로 몰리는 이유다. 2019년과 2020년 지역별 숙박업 카드 사용액 조사에서 유명 관광지가 아닌데도 신용카드 사용액이 증가한 소도시 중 1위가 거창이다. 이성일 팀장은 “인증뿐 아니라 설계 단계부터 컨설팅을 받으러 전국 각지에서 승강기 업계 관계자들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102m, 34층 수직 공간에서 승강기 인증
승강기는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무빙워크, 주차 타워 등을 포함한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승강기 시장 규모는 4조원대, 글로벌 시장 규모는 140조원대에 달한다. 최근 초고층 건물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고부가, 첨단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승강기 산업의 잠재력에 일찌감치 주목한 거창군은 2008년 ‘승강기 허브 도시’로 변신을 시도했다. 한국폴리텍대학 거창캠퍼스가 신입생을 구하지 못해 폐교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서울에서 진주로 이전한 승강기안전관리원이 거창에 한국승강기대학을 세우고 기업을 유치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2년 후인 2010년 세계에서 유일한 승강기대학이 문을 열었다. 티센크루프와 미쓰비시, 쉰들러 같은 글로벌 승강기 전문 기업을 겨냥한 맞춤형 협약반을 갖춘 승강기공학부에서 매년 수백명의 전문 인력을 배출했다. 최근 7년간 취업률은 85%. 대기업과 외국기업, 공기업 취업률은 50%를 넘었다.
거창군은 30여만평 부지에 승강기 산업단지도 조성했다. 땅값 90%, 연구개발비 지원 등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어 20여개 기업을 유치했다. 2019년에는 국내에서 유일한 승강기 산업특구인 ‘거창 승강기 밸리’로 지정됐다. 국비와 민자 등 800억원을 투자해 일자리 1200여개를 새로 만들고, 2600억원 규모의 경제 파급 효과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승강기안전기술원은 ‘기업이 찾는 도시 거창'을 만드는 촉매가 됐다. 지난해 승강기 개별 안전 인증 건수는 4512건으로, 2019년 198건보다 22배 증가했다. 교육생은 총 6825명에 달했다. 거창군은 승강기 업체들에 인증비 50%를 지원하는 사업도 벌였다. 지난해 10월, 세계 10위권 엘리베이터 제조사의 한국지사가 거창에 자리를 잡았다. 내년까지 60억원을 투자해 공장과 연구개발 시설을 짓는다.
현재 거창에는 승강기와 관련 부품을 제조하는 업체 37곳이 터를 잡고 있다. 박명옥 거창군 승강기산업 담당은 “승강기는 1대당 필요한 부품이 2만개”라며 “거창엔 대기업에 납품하는 부품 회사가 많고 수출도 많이 한다”고 했다. 이들 기업의 연간 매출액은 2000억원대에 달한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승강기 허브 도시로 육성”
거창군은 정부가 추진하는 ‘세계 승강기 허브 도시’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41억원을 들여 남상면 승강기 전문 단지에 시험타워 1곳과 승강기 산업 복합관을 건립하고 있다. 승강기 관련 기업 지원을 통해 승강기 산업 고도화를 촉진하겠다는 뜻이다.
125m 높이의 새 시험타워는 기존 타워에서 600m 거리에 들어선다. 초고층 건물에 설치하는 분속(分速) 210m 이상 고속 승강기를 인증할 수 있다. 대당 가격이 수억원에 달하는 고가 제품 생산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타워 꼭대기 층은 스카이라운지로 조성해 관광 시설로 활용한다. 내년에 준공되면 경제 파급 효과는 660억원, 고용유발 효과는 500명에 달할 전망이다. 올해는 국내 최초 승강기고등학교가 문을 연다. 신입생 모집이 어려워진 거창공고를 특성화고교로 전환했다.
구인모 거창군수는 “지난 13년간 승강기 산업을 거창의 미래 먹거리로 육성했다”며 “거창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승강기 허브 도시로 키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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