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反文’만으로 정권 못 잡는다
탈진영으로 국민 설득해야 중도·보수 단합할 수 있다
‘반문(反文) 연대’가 야권의 화두가 된 지도 햇수로 5년째다. 이 단어는 2017년 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따라 치러지게 된 조기(早期) 대선을 앞두고 당시 선두 후보였던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친문(親文) 진영에 맞서 보수와 일부 중도 정치 세력이 “일단 뭉쳐야 한다”고 하면서 처음 등장했다.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이런 주장은 더욱 빈번해졌다. 국민을 ‘편 가르기’ 하며 자신들의 왜곡된 현실 인식에 동의하는 사람들과만 함께하겠다는 식의 ‘외눈박이’ 국정에 대한 야권의 필사적 대응이었다.
하지만 선거 승패만을 기준으로 본다면 ‘반문 연대’를 앞세운 정치는 모두 참혹한 패배로 귀결됐다. 그런데도 야권은 여전히 반문을 외치며 한 달여 남은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와 1년여 남은 대선을 향해 다가서고 있다. 이미 ‘레임덕’이 거론되는 정권 말까지도 반문 정서에만 호소하면 선거에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야권 인사들을 보면 우직한 건지, 미련한 건지 분간이 잘 되지 않는다.
2017년 대선 패배 이후 제1 야당은 당명(黨名)만 2차례 변경했지만 국민들의 신뢰와 호감을 얻지 못했다. 껍데기만 바꿨을 뿐, 일관된 어젠다를 통해 대중 친화적 정당상(像)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부족해 알맹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보수의 새로운 지향을 찾기 위한 시도는 무기력 속에 방치됐다.
2012년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당은 좀 달랐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지지율 속에 국민들의 싸늘한 외면을 받았지만 2013년 초부터 의원들은 자발적 모색에 나섰다. 당시 생겨난 당내 기구 을지로위원회가 대표적이었다. “우리 사회 을(乙)들을 위해 일하겠다”며 만들어진 이 기구는 ‘민주당은 서민과 약자를 위한 정당’이라는 직관적 이미지 형성에 기여했다. 친노(親盧)·비노(非盧)에 이어 친문·비문(非文)으로 이어지는 계파 내전 속에 지리멸렬하던 민주당이었지만 을지로위원회만큼은 두 차례 비대위를 거치면서도 사회 각계와 연대하는 활동을 이어갔고, 집권의 기반이 됐다.
4월 보궐선거 이후 집권 세력의 분화와 형질 변화는 필연적이다. 아직 뚜렷한 대선 주자를 만들어내지 못한 친문의 사정을 감안하면 현재 대선 주자 지지율 선두인 ‘명백한 비문’ 이재명 경기지사를 중심으로 미래 권력 담론이 형성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상황이 현실화한다면 두 달쯤 뒤부터는 야권의 반문 공세조차 사라진 과녁에 날리는 화살처럼 허망해질 우려가 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과거 비문 성향이었던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여당 후보가 된다면 유권자들 사이의 반문 정서가 일부 상쇄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선거 승리를 원한다면, 제1 야당 국민의힘부터 스스로의 정체성과 국정에 대한 비전을 쉽고 명료한 언어로 풀어내 ‘반문 그 이상’을 국민 앞에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권 단일 후보 자리를 놓고 다투는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오세훈 전 시장 등과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개인에게도 해당되는 과제다.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수호 같은 추상적 개념어만으로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는 사실은 황교안 전 대표 시절을 거치면서 이미 절감했다.
세계사를 돌이켜보면 투표권 확대, 인종차별 철폐, 보험과 연금의 도입 등 진보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역사적 혁신의 주역이 대체로 유럽과 미국의 보수 정권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이 문재인 정권의 폭정을 비판하는 동시에 절실하게 찾아야 할 것은 이처럼 시대 변화에 걸맞은 탈진영적 어젠다이기도 하다. 야권이 중도·보수를 가리지 않고 합심할 수 있는 동력원(動力源)도 여기서 생겨날 수 있다. ‘5년째 반문 연대’가 비로소 결실을 볼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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