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민의 정치 포커스] ‘정권 심판론’보다, 중도 끌어들일 ‘정권 견제론’ 펴야
여야 모두 일대일 맞짱 토론으로 서울시장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 레이스를 시작했다. 민주당은 박영선 전 장관의 승리가 유력해 보인다. 솔직히 우상호 의원은 기적이 절실한 판세다. 야권은 좀 더 변수가 많지만 ‘안철수가 단일 후보가 될 수 있을까’가 최대 관심이다. 야권은 안철수냐 아니냐의 구도다.
단일화가 무산될 가능성을 논외로 하면 네 가지 시나리오를 예상할 수 있다. ⓵안철수가 서울시장이 되는 경우 ⓶안철수가 본선에서 지는 경우 ⓷국민의힘 후보가 서울시장이 되는 경우 ⓸국민의힘 후보가 본선에서 지는 경우다. 이 시나리오에서 단일 후보 안철수는 ‘국민의당’으로 출마한다. 단일화 이후에도 ‘국민의힘’ 입당이나 합당을 선언할 수는 있지만 가능성은 낮아졌다.
선거 결과가 ⓵·⓸인 경우에는 ‘제3지대’ 중심의 정계 개편이 탄력을 받을 것이다. ⓷·⓶의 경우에는 국민의힘 중심으로 야권이 재편될 것이다. ⓵은 ‘중도 확장’이 검증된 안철수가 야권 개편의 주도권을 쥘 것이다. ‘보수가 지지하는 중도 후보’ 안철수의 승리는 ‘중도가 지지하는 보수 후보’인 윤석열·원희룡·유승민에게도 기회다. ⓸는 국민의힘 해체 요구와 윤석열 출마 요구가 동시에 분출할 것이다. 사실상 윤석열 대안 부재다. ⓷은 국민의힘이 잃었던 자신감을 되찾을 것이다. ‘보수’라는 용어도 복권(?)될 것이다. ‘보수가 지지하는 보수 후보’인 나경원이 된다면 홍준표의 승산도 올라갈 것이다. 반면 오세훈이 된다면 홍준표보다는 유승민·원희룡의 가능성이 좀 더 커 보인다. ⓶는 야권 전체가 지리멸렬해질 수 있다. 2012년 문재인과 안철수가 단일화로 반전을 시도했듯이 윤석열과 홍준표가 모두 참여하는 단일화가 마지막 승부수가 될 것이다.
현 시점에서 아직 ⓵국민의힘 후보 ⓶야권 단일 후보 ⓷차기 서울시장은 승부추가 기울지 않았다. 예상이 쉽지 않다. 다만 안철수가 출마를 선언한 작년 12월 20일과 비교해보면 민주당의 승부 예보는 ‘패배경보’에서 ‘패배주의보’ 정도로 호전됐다. 반면 “3자 구도로도 자신 있다”던 국민의힘 김종인 위원장의 호기롭던 예보는 빗나갔다. 그는 “최근 상황은 단일화를 안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야권 단일화는 숙명적”이라며 현실을 받아들였다. 불과 한 달 만에 자신감은 사라졌다.
국민의힘이 야권 내에서조차 주도력을 잃은 것은 반문재인·반민주당 층에도 대안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보수는 정권을 되찾아올 ‘이길’ 대안으로 보지 않고, 중도는 나를 위한 ‘더 나은’ 대안으로 보지 않는다. 윤석열·안철수는 물론 이재명까지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는 중도보수의 마음을 되돌리지 못한 것이 뼈아프다.
현재 한국의 유권자 지형은 ⓵30% ⓶20% ⓷30% ⓸20%의 구도로 보인다. ⓵은 묻지 마 민주당이다. ⓸는 묻지 마 보수다. ⓶는 대체로 민주당을 지지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이탈할 수도 있는 스윙보터인 ‘중도 진보’다. ⓷은 오랫동안 보수 정당을 지지했지만 2017년 이후 ‘보수 동맹’으로부터 이탈한 스윙보터인 ‘중도 보수’다. 민주당이 ⓶의 이탈을 막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의힘이 ⓷의 지지를 회복하지 못하면 승리 가능성은 거의 없다.
2012년까지만 해도 ⓵20% ⓶30% ⓷20% ⓸30%의 지형이었다. 이때까지는 새누리당 대 반새누리당의 보수 우위 구도였다. 단일화는 민주당의 몫이었다. ⓷⓸의 보수 동맹은 굳건했고 ⓶의 중도 진보가 흔들리던 상황이었다. 이 지형이 2016년 총선 때는 ⓵25% ⓶25% ⓷25% ⓸25%로 변하더니 2017년 탄핵 후에는 현재와 같은 민주당 우위 지형으로 변했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만들어진 ‘보수 동맹’은 2017년 중도 보수의 이탈로 완전히 와해됐다. 보수가 중도를 잃은 것이 전략적 패착이다.
유동성 장에서는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돈이 가는 곳은 가격이 폭등한다. 지금 정치는 ‘중도 유동성’이 커진 장세다. 2016년 총선과 비슷하다. 홍준표는 “선거에는 중도가 없다”며 “중도는 스윙보터 계층이고 스윙보터들은 어느 한쪽의 세가 커지면 자기들 이해관계를 계산해 따라가는 계층”이라며 중도를 과소평가했다. 그는 “선거의 본질은 자기편 지지자들 결집”이라며 ‘보수 결집’을 역설했다.
나경원도 비슷한 생각이다. 그도 역시 “중도인 척하지 않겠다”며 선명한 보수 우파를 선언했다. 홍준표와 나경원의 ‘선 보수 결집, 후 중도 견인’ 전략은 특별한 조건에서는 옳다. 2012년 총선·대선과 같이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정체성·리더십·지지 기반이 굳건할 때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2016년 총선처럼 두 거대 정당의 지나친 당파성에 실망한 중도가 양쪽에서 이탈할 때는 맞지 않는다.
2016년 ‘국민의당’ 같은 제3정당 돌풍이 불 때도 ‘보수 결집’을 고집하는 것은 전략적 오류다. 지금이 그런 상황이다. 극단적 진영 싸움에 지친 중도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승자가 될 수 없다. “금태섭과 대화하고 싶다”는 박영선과 “입당이 아니면 안철수와 더 이상 얘기할 게 없다”는 김종인의 태도가 중도를 대하는 인식을 보여 준다. 승리에 대한 간절함과 절박감의 차이다.
선거 전략을 단순화하면 네 가지다. ⓵나에 대한 지지 강화 ⓶나에 대한 반대 약화 ⓷상대에 대한 반대 강화 ⓸상대에 대한 지지 약화다. 프레임, 이슈, 메시지 전략은 이 네 가지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내가 국민의힘의 전략가라면 ⓷⓶⓸⓵의 순으로 캠페인 목표를 정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국민의힘은 ⓵⓷⓸⓶의 잘못된 순의 전략적 오류에 빠져 있다. 지금은 보수를 겨냥한 ‘정권 심판’보다는 중도를 겨냥한 ‘정권 견제’가 현실적인 프레임이다. 중도의 지지 없이 승리는 불가능하다. 이제는 ‘자유 우파’의 이념적 늪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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