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이번 설도 괜찮았습니다
[경향신문]
지난가을 추석만 해도 달랐다. 처음 맞닥뜨린 ‘코로나 명절’에 당황했지만 그래도 ‘이번만 뭐…’ 하는 생각들이었다. 다음 설을 기약하며 가볍게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태 연속 낯선 명절 풍경에 어리둥절하고 불안한 마음이 든다. ‘언제쯤이나…’ 하는 막막함마저 생긴다. 미니멀라이프가 소소한 유행이라고 하지만 모든 것이 왜소해졌다. ‘5인’이란 장벽 앞에서 대가족의 명절 전통은 공동화됐다. 가족들은 오히려 나뉘었다. 부모는 자녀들을 두고 자신의 부모를 찾았고, 할아버지·할머니들은 손주들의 부재를 또 아쉬워만 했다. 음복하고 나눌 가족이 준 만큼 명절 음식의 풍성함도 이전 같지 않다.
실망과 울화가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방역수칙을 지키는 데는 마음을 모았다. 지금은 그게 ‘공동체’를 지키는 일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경북 칠곡의 석담 이윤우 선생 종갓집은 30명이던 제관을 4명으로 줄였다고 한다. 농담으로만 하던 ‘스마트폰 세배’ ‘줌 세배’도 곳곳에서 이뤄졌다. 공간을 공유하지 않아도, 명절을 일부나마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낯설면서도 새롭다.
두 번의 코로나 명절은 이처럼 원하든 원치 않든 일상적으로 당연시했던 전통들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실상 그 전통에는 오래전부터 갈등이 내연해왔다. 구성원 내부의 평등하지 않은 전통의 세례, 사회·경제적 차이가 만든 미묘한 위화감, 일방향으로만 흐르는 ‘공경’ 등. 단순히 세대 차이만 아닌 변화한 사회가 만든 사회적·시대적 문제였다.
지금 명절 전통의 상당 부분은 과거 일손을 함께 나누던 농경공동체에 뿌리를 두고 있다. 대가족 공동체가 농사라는 공동목표를 위해 하나의 ‘회사’처럼 기능하던 시절의 전통이다. 지분 차이와 위계가 존재하고 자애와 공경의 윤리가 그 공동체를 묶고 움직이는 기반이 된다. 산업화하고 도시화한 개인의 시대와는 그래서 마찰음을 내기도 했다. 그렇게 보면 오히려 이번 설처럼 규모·내용 모두에서 ‘미니멀’한 명절이 더 현실에 다가서는 것일 수 있다.
지금과 같은 명절 전통이 영원할 수 없다는 예감은 이미 있어왔다. “내 죽은 뒤는 모르겠고…”라는 체념적 전승의 바람은 그래서다. 전통이 소멸해야 할 것이 아니라면, 그래도 공동체를 묶는 한 요소로 존재해야 할 것이라면 적절한 변화는 불가피하다. 이는 ‘온고지신(溫故知新)’과도 같은 일이다. 더딘 변화의 이면에는 이 전통을 둘러싼 대립이 조금은 ‘종교적 신념’처럼 충돌해온 점도 있다.
명절 전통, 공동체 전통의 변화는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도 필연적이다. 과거 가족은 한 삶의 유일한 안전망이었다. 산업화·민주화하는 과정에서 그 삶의 울타리는 온전히 가족에 맡겨졌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진전된 사회 변화는 새로운 대안을 요구한다. 많은 경우 가족이 다른 가족의 안전망이 되기에는 경제·사회적 조건들이 각박해졌다. 한마디로 그 자신도 온전히 감당하기 버거울 만큼 개인의 삶들이 너무 “빡시다”. 그 결과 적어도 지금은 공동체 속 삶의 안전망이 사회이거나 국가여야 한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자손과 가족들, 시끌벅적한 명절의 흥성스러움은 다복과 행운의 표징처럼 여겨져왔다. 하지만 그런 전통의 바깥은 물론 그 속에서도 소외되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점은 외면해왔다. 2대 이상 이어진 핵가족들이 있고 그들의 차례 전통은 이미 미니멀하다. 아예 가족이란 궤도에서 이탈한 이들도 우리 사회에는 존재한다. 이처럼 그동안 명절 속 가족의 모임과 역할극이란 ‘전승과 단절’ ‘풍요와 빈곤’ ‘공경과 불경’ 같은 이항대립들의 결합이라 할 수 있다. 자크 데리다 식으로 말하면 이번 설은 이 같은 대립과 심리적 우열감을 ‘해체’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결국 두 번의 코로나 명절은 ‘명절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더 깊게는 전통이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미니멀한 명절이 조금은 어색하고 쓸쓸해도 나쁘지만은 않았음을 안다. 외려 한 공간에서 시끌벅적하게 만나지 못하게 되면서 애틋해지는 것 또한 있다. 온전히 다 전달되지 못했을지는 몰라도, 온택트라는 낯선 통로를 통해서라도 세배하는 모습 속에 그런 마음이 읽힌다. 명절 준비의 노고가 준 만큼 여유는 늘었다. 그래서 오히려 가족들이 ‘만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시끌벅적함 속에선 알지 못하고, 불편함으로만 느껴졌던 것들을 말이다. 그렇다면 코로나 명절은 전통과 공동체의 ‘재발견’일 수 있다.
김광호 기획에디터 겸 문화부장 lubof@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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