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선 명령과 전화위복[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45〉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몸이 앞뒤로 흔들리는 통에 잠을 깬 선장은 선교로 올라갔다.
선주와 선장은 조선소와 연락해 배를 부양할 계획을 세웠다.
침몰하는 배와 운명을 같이한 선배 선장들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손해배상 문제, 주위 사람들을 어찌 볼 것인지, 32세 선장에게는 모든 것이 막막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호주 남부에서 귀국할 때까지 1주일이 소요됐다. 너무나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기울어진 가세를 일으키기 위해 선택한 국비 해양대의 길이었다.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살았다. 가세는 점차 회복되고 있었다. 손해배상 문제, 주위 사람들을 어찌 볼 것인지, 32세 선장에게는 모든 것이 막막했다. 300척 선단에서 최고의 1등 항해사로 평가받았던 선장이기에 주위의 안타까움도 컸다. 해도에 나타나지 않은 산호초 위로 배가 항해했기 때문에 발생한 사고였다. 2등 항해사가 해도 개정을 누락해 생긴 일이지만 지휘 책임은 선장에게 있다. 실의에 찬 나날을 보내는 선장에게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민사 소송이 제기되었다는 것이다. 선원들의 잘못이 있었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음을 입증하는 것이 선장이 해야 할 일이었다. 선장으로서의 마지막 임무를 호주의 법정에서 수행했다.
선장은 귀국길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김포공항에 착륙하는 비행기에서 큰 영감을 얻었다. 짧은 활주로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하여 기장은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속력을 줄이기 위해 비행기의 날개를 위로 올려서 바람을 덜 받게 했고 브레이크도 최대한 밟았다. 그렇다. 앞으로 남은 인생은 이런 기장과 같은 자세로 살아가자고 결심했다. 법학을 공부해 불행한 사고를 당한 선원을 도와주고 싶었다. 1년 동안 준비를 거친 다음 석사 과정에 입학했고 그 이후 해상법에 천착했다.
그 사고로부터 꼭 30년이 되었다. ‘이보다 더 낮은 곳은 없다. 이제는 올라가는 일만 남았다’고 수없이 자신을 격려하고 채찍질하면서 살아왔다. 부끄러운 마음에 주눅이 들었었다. 선주와 화주에게 피해를 주었고, 선장의 명예를 훼손했다. 사고 후 움츠러들었던 자신의 모습이 너무 부끄러웠다. 당당하게 살고 싶었다. 해운업계에 더 많이 기여하기 위하여 남들보다 2배, 3배 열심히 30년을 하루같이 성실한 자세로 새로운 삶을 살아왔다. 어느 정도 좋은 평판도 확보되었다. 이제야 그 선장은 말할 수 있다. 그 사고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이 말을 할 수 있기까지 30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어차피 자식 줄 돈… 적금보다 주식증여, 세금도 아껴”
- 신현수 가족 “사직한단 얘기 미리 들어”… 결국 文대통령 떠나나
- 신현수 사태에…금태섭 “이성윤 지키기, 文대통령 뜻인가”
- “오늘도 원맨쇼 했다”던 노무현 전 대통령[최영해의 폴리코노미]
- 홍준표, 안철수에 “안초딩이라 놀린 것 사과…대단한 진전”
- 안철수 “퀴어축제, 노출 문제 지적한 것”…정의당 “절망적”
- ‘조국-사법남용’ 재판부 유임에… 판사들 “위헌적 특별재판부”
- ‘판사PC 강제개봉’ 김명수 고발건 각하…중앙지검 “동의불필요”
- 이용구 “차규근 통해 김학의 출국 알았지만 이광철에 전화 안 해”
- [이기홍 칼럼]총칼 대신 휘두르는 인사권, 입법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