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팀 폭력' 박철우의 분노 "피꺼솟.. 사과 필요 없다"
“박철우 최고” 프로배구 남자부 한국전력 박철우(3번)가 18일 안산 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OK금융그룹과의 경기 중 득점에 성공한 뒤 웜업 존의 팀 동료들로부터 환호를 받고 있다. 이날 14득점으로 팀의 3-1 승리를 도운 박철우는 인터뷰실에서 2009년 아시아선수권대회 남자배구 대표팀 시절 자신을 폭행했던 이상열 KB손해보험 감독(당시 대표팀 코치)에 대해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안산=주현희 스포츠동아 기자 teth1147@donga.com |
프로배구 남자부 한국전력 박철우(36)는 팀이 18일 안산 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2020∼2021 V리그 OK금융그룹과의 경기에서 3-1(20-25, 25-21, 25-15, 25-19)로 이긴 뒤 인터뷰실을 찾았다. 박철우는 작심한 듯 2009년 아시아선수권대회 남자배구 대표팀 시절 자신을 폭행했던 이상열 KB손해보험 감독(55·당시 대표팀 코치)에 대해 여전히 남아 있는 트라우마를 고백했다.
경기에 앞서 박철우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정말… 피꺼솟이네…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느낌이 이런 것인가…”라는 글을 남겼다. 박철우는 이 스물네 글자를 제외하면 어떤 말도 덧붙이지 않았지만 이 감독을 향해 쓴 글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경기가 끝나면 이긴 팀 수훈 선수가 인터뷰실을 찾는 게 관례다. 박철우는 “오늘 꼭 이겨서 이 자리에 오고 싶었다. 마치 이런 상황이 예견됐던 것만 같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분께서 감독이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황당했다. 경기장에서 마주칠 때마다 간신히 (마음속에) 가라앉혔던 모래알 같은 것들이 다시 올라오는 느낌이 든다. 그러면 나 스스로가 뿌옇게 변하는 느낌”이라며 “참고 조용히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기사를 보고 나니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너무 많이 들었다. 하루 종일 손이 떨렸다”고 말했다.
박철우에게는 이 감독의 이 같은 대답이 잊고 싶었던 과거의 상처를 들추는 방아쇠 역할을 한 셈이다. 게다가 이번 박철우의 작심 발언은 최근 배구계를 강타한 이재영, 이다영 쌍둥이 자매 등이 일으킨 학폭 파문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였다.
이 감독은 2년 만에 한국배구연맹(KOVO) 경기운영위원 자격으로 코트에 돌아왔다. 재기 기회를 줘야 한다는 배구인들의 요청이 있었다는 게 KOVO 측 설명이었다. 배구협회 징계가 1년도 안 돼 풀리면서 이 감독은 2012년부터 모교인 경기대 지휘봉을 잡았고 이번 시즌을 앞두고 친정팀 KB손해보험 감독을 맡아 프로배구 코트로 돌아왔다. 폭행 사건 당시 그는 KB손해보험 전신인 LIG 코치였다.
박철우는 팀 동료들과 순위 경쟁을 벌이고 있는 KB손해보험 선수들에게 제일 미안하다고 전제하면서 아픈 상처를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대학(경기대) 감독이 된 이후에도 ‘너는 철우만 아니면 지금 처맞았다’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주먹으로 못 때리니까 모자 등으로 겁을 준다’는 이야기도 계속 들렸다.” 그러면서 그는 이 감독의 고교 지도자 시절 선수 폭행 사례까지 폭로했다. “우리 때만 해도 ‘사랑의 매’를 용인하는 분위기였다. 우리 또래 중 부모님 앞에서 안 맞아본 선수가 없을 거다. 그러나 사랑의 매도 정도가 있다. 그분처럼 학생을 기절시키고 고막을 터뜨리는 건 정도를 넘어선 일이라고 본다.”
그는 “그런데도 인터뷰에서 마치 ‘내가 한 번 해봤다’는 식으로 한순간의 감정을 못 이겨 실수를 한 것처럼 말하는 걸 보고 참을 수가 없었다”며 “이번에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정면 돌파하고 싶어 이 자리에 왔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어 “내 이미지도 나빠질지 모르고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며 “나는 그분의 처벌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다. 그저 한국 배구가 한참 잘못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이 감독은 이날 본보와의 통화에서 “사과하고 싶다.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철우는 “이미 11년이 지난 일이다. 사과를 받고 싶지도 굳이 그분을 보고 싶지도 않다”고 선을 그었다.
안산=황규인 kini@donga.com / 강홍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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