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궁중화원은 왜 淸 황제의 사냥을 그렸을까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깊은 산속으로 중국 청나라 황제의 긴 행렬이 지나간다.
활과 화살로 무장한 수행원들 가운데로 하얀 용이 새겨진 가죽옷을 입은 황제가 위풍당당하게 말을 타고 있다.
병풍 속 그림에는 청 황제가 열하(熱河·지금의 청더)의 피서산장에서 여름을 보낸 뒤 가을에 무란웨이창(木蘭圍場)에서 사냥하는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중화사상에 젖은 조선 사대부들은 청나라를 오랑캐로 빗대 경멸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황제-수행원들 정밀한 묘사 압권
작자 모르지만 도화서 그림 추정
"淸 배우려는 북학파 태도 반영"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지난해 11월 미국 크리스티 경매시장에서 사들여 18일 공개한 ‘호렵도(胡獵圖·오랑캐가 사냥하는 장면을 담은 그림)’ 병풍은 인물 하나하나의 입체감이나 생동감이 그림 전체를 휘감고 있는 걸작이다. 총 8폭의 병풍은 약 1.5m 높이에 길이는 3.9m에 이른다. 병풍 속 그림에는 청 황제가 열하(熱河·지금의 청더)의 피서산장에서 여름을 보낸 뒤 가을에 무란웨이창(木蘭圍場)에서 사냥하는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18세기 후반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호렵도는 작자 미상이다. 주변의 산과 나무를 표현한 화법 때문에 한때 김홍도(1745∼1806)의 그림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옷 주름을 부드럽게 그리는 김홍도와 달리 강렬하게 표현돼 있어 정조대 도화서(그림을 주관하는 조선시대 관청)의 궁중 화원이 그린 걸로 추정된다. 임원경제지에는 김홍도가 호렵도를 그렸다고 기록돼 있지만, 현재까지 확인된 실물은 없다.
조선시대에 그려진 호렵도는 여러 점이 전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에 환수된 그림이 예술적 완성도에서 압권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림을 감정한 정병모 경주대 교수(미술사)는 “국가지정문화재 보물급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이 그림은 정조대 청나라의 문물을 배우려는 북학파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적지 않다. 중화사상에 젖은 조선 사대부들은 청나라를 오랑캐로 빗대 경멸했다. 더구나 17세기 병자호란을 거치며 이들에 대한 적대감마저 팽배했다. 그러나 18세기 들어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를 거치며 동아시아 최강국으로 우뚝 선 청나라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주자성리학 일변도에서 벗어나 청나라 고증학 등을 배우려는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 북학파의 움직임도 이때 시작됐다. 북학파를 중용한 정조는 1780년 열하에서 열린 건륭제의 칠순잔치에 연암 박지원(1737∼1805) 등을 축하사절로 보내기도 한다.
비록 호렵도라는 이름에 오랑캐라는 비칭이 등장하지만, 건륭제로 추정되는 청 황제와 수행원들을 정밀하게 묘사한 화가의 시선은 오히려 존경에 가깝다. 정병모 교수는 “호렵도에는 청을 배우고자 하는 북학파의 태도가 반영돼 있다”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신현수 가족 “사직한단 얘기 미리 들어”… 결국 文대통령 떠나나
- 신현수 비판도 옹호도 못하는 ‘어정쩡 與’
- 휴가 내고 사퇴 수순 밟는 신현수… 文대통령 떠나나
- 박범계 “마음 아프다… 계속 함께 文 보좌를”
- 신현수 사의 파문…與 갈등 재부상 촉각 vs 野 “최측근의 반란”
- ‘피아 구분’ 명확하지 않은 민주당?…신현수 비판도, 옹호도 못해
- 건조경보 양양서 산불…소방 대응 2단계 발령
- 안철수 “범야권 통합선대위” vs 금태섭 “安, 10년간 소통에 문제”
- ‘아름다운 야권 단일화’ 이뤄질까 [고성호 기자의 다이내믹 여의도]
- 文대통령 “삼성 도움 컸다” 코로나 백신주사기 생산업체 방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