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중국 중화민족주의에 어떻게 대응할까
[경향신문]
최근 인터넷상에서 한·중 사이에 문화유산에 대한 논란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작년 말에 한국의 전통의상인 한복과 고유의 음식인 김치가 중국에서 유래하였다는 중국 내 일부 누리꾼들의 주장에 대해 한국 누리꾼들이 이를 바로잡으려는 대응이 나타났다. 그런데 올해 1월에는 중국의 사법 및 공안을 담당하는 권력기구인 중국공산당 중앙정법위의 SNS 공식 계정에 한국이 김치와 관련, 사사건건 논쟁을 벌이는 이유가 자신감 결여에 기인한다는 글이 게재되었다.
지난 16일에는 중국의 대표 검색 사이트인 바이두(百度)에서 윤동주 시인을, 위키피디아 중문판에서는 세종대왕·김구·김연아·이영애 등 한국인이 존경하고 자랑하는 인물들을 중국 조선족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국의 기성세대들은 학창 시절 윤동주 시인의 ‘서시(序詩)’를 듣고 ‘별 헤는 밤’을 외우며 별 하나하나에 추억, 사랑, 쓸쓸함, 동경, 시, 그리고 어머니를 담아내었다.
이들에게 윤동주 관련 논란은 2000년대 초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고구려·발해의 역사 왜곡 못지않은 감성적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 또 BTS의 한국전쟁 관련 수상소감과 가수 이효리의 ‘마오’ 언급과 관련해 중국 누리꾼들의 불만이 강하게 표출되는 일들이 있었다.
한·중 사이에 왜 이런 일이 계속해 발생할까? 최근 중국 내 중화민족주의를 중심으로 한 애국·민족주의 교육의 강화가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한족 중심의 정체성에서 중화민족의 개념이 중국에 등장하는 것은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서구열강에 의해 주권과 이권이 찢겨나가던 청나라 말기이다. 변법자강운동을 이끈 개혁사상가 량치차오는 난세에 대응할 내부적 힘을 모으기 위해 한족 중심의 배타적 ‘소(小)민족주의’에서 중국 내 대표적 소수민족인 만주족, 몽고족, 회족, 묘족, 장족을 포함하는 ‘대(大)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처음으로 중화민족의 개념을 제시했다.
이후 중화민족주의가 다시금 부상한 것은 탈냉전 시기였다. 국제사회에서 이념의 경쟁이 끝나가며 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들이 붕괴됐다. 내부에서는 1989년 6월 톈안먼 사건까지 발생하며 공산주의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자 중국 지도부는 중화민족주의를 중심으로 애국·민족주의 교육을 강화했다. 결과적으로 경제 성장과 애국·민족주의는 공산주의 사상이 맡았던 당의 정통성과 리더십 유지라는 정치적 역할을 탈냉전 시기에 수행하게 된다.
중화민족주의의 세 번째 역사적 무대는 시진핑 지도부 시기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2012년 10월 당 총서기에 선출되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표명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 시기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이 격화되자 중국은 내부 결속과 당의 정통성 및 중국인들의 충성도를 높이기 위해 애국·민족주의 교육을 다시금 강화한다. 이로 인해 최근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 중화민족에 대한 자긍심과 함께 미국에 대한 반감이 높아졌다. 트럼프에 이어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은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중국의 애국·민족주의 고조의 흐름도 당분간 이어질 것이며 이 과정에서 한·중 간 민족주의적 논쟁도 계속해서 발생할 수 있다.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어찌 보면 최근 한·중의 논쟁은 미·중의 경쟁에서 한국이 유탄을 맞은 상황이다. 또한 민족주의 드라이브는 자긍심과 쇼비니즘 그리고 이성과 감정의 경계를 혼란하게 만든다. 따라서 중국 누리꾼들에게 차분하게 우리의 생각을 알리고 포용적으로 논의하다 보면 곧 서로를 이해하고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일부 중국 누리꾼들이 한복이 중국의 소수민족인 조선족의 의상이기 때문에 중국 의상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의상인 한복이 조선족을 통해 중국에 더욱 알려지고 친근해진 것이지 중국 소수민족인 조선족의 의복이라 중국의 의상이 아닌 점을 차분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중국계 한국인 화교(華僑)들이 월병(月餠)을 먹기 때문에 이제 월병은 한국의 고유 음식이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인 이치이다.
하지만 누리꾼들 간의 논쟁이 아닌 중국 국가기관 또는 사회 주요 매체의 논란에 대해서는 분명한 대응이 필요하다. 탈냉전 시기 애국·민족주의 교육을 받았던 당시의 10~20대가 이제 40~50대가 되어 중국의 국가기관과 사회 주요매체를 이끌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침묵은 오해를 낳을 수 있다. 논란에 대해 짧고 분명하게 대응한 후 불필요한 논쟁은 피한다는 원칙을 가져야 한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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