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엽의고전나들이] 네 욕심이 제일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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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비웠어." 같은 말은 흔하다 못해 지겨울 정도이다.
그런데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는 좀 껄끄러울 때가 있다.
적당한 벼슬을 하고, 재산은 편하게 살 정도면 족하고, 인간관계 문제없이 평온하게 보내며, 자연을 즐기다 제 명에 죽겠다는데 그게 그리 큰 잘못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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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설집 ‘삼설기’(三說記) 가운데 ‘삼사횡입황천기’(三士橫入黃泉記)가 있다. 제목 그대로 ‘세 선비가 졸지에 황천으로 간 이야기’다. 어느 봄날, 글공부하던 세 선비가 술에 대취하여 인사불성이 되었다가 저승사자가 잘못 데려가고 만다. 본인의 몸은 이미 장사를 다 치른 마당이니 도로 그 자리로 갈 수가 없었고, 각자 가고 싶은 곳을 말하면 소원대로 보내주기로 했다. 첫째 선비는 충신 집에 태어나 영웅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위엄을 떨치고자 한다. 그러자 염라대왕은 그러한 집으로 보내도록 명령한다. 둘째 선비는 명문가에 태어나 선풍도골(仙風道骨) 선비로 문과에 급제하여 온갖 높은 벼슬을 다한 후 나이가 들면 벼슬을 물리고 노후를 편안히 보내고자 한다. 이번에도 염라대왕은 그렇게 하도록 허락했다.
문제는 셋째 선비였다. 그는 법도를 잘 아는 집의 자제가 되어 입신양명을 한 후 최고의 효행을 하고, 속세를 떠나 자연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무병장수하다 고종명(考終命)하기를 바랐다. 그러자 염라대왕은 “이 욕심 많고 무거불측(無據不測: 근거가 없어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못됐다는 뜻)한 놈아!”로 욕설을 하며, 그런 자리가 있다면 자기 자신이 염라대왕 자리를 던져두고 하겠다며 야단을 쳤다. 그런데 얼핏 보면 셋째 선비의 소원이 제일 소박해 보인다. 적당한 벼슬을 하고, 재산은 편하게 살 정도면 족하고, 인간관계 문제없이 평온하게 보내며, 자연을 즐기다 제 명에 죽겠다는데 그게 그리 큰 잘못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 속을 파고들면 세상에 나서면서도 세속에 매이지 않고, 무얼 가지면서도 안 가진 듯 지내겠다는 것이다. 권력을 탐하면서도 명예롭기를 바라고, 챙길 건 다 챙겨두고도 욕심 없는 사람으로 비치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입으로는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랫빛 /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를 흥얼대면서도 한강 뷰가 그럴듯한 강변아파트 정도에는 살아야 직성이 풀리겠다면, 염라대왕의 질타를 피할 길이 없다. “네 욕심이 제일 크다!”
이강엽 대구교대 교수·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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