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BTS와 아미, 친절의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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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에서 '서양철학: 쟁점과 토론'이라는 수업을 담당하고 있다.
학생들의 반응을 짐작했으면서도 그렇게 말한 것은 방탄소년단으로부터 친절함이라는 윤리적 가치의 소중함과 더불어 그것이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현장들을 배우고 경험했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양보하고, 밥을 챙겨주고 이불을 덮어주는 사소한 친절은 팬들에게 전달되고, 아미들은 그들을 실제로 본받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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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에서 '서양철학: 쟁점과 토론'이라는 수업을 담당하고 있다. 철학적으로 논쟁적인 주제들에 대해 학생들이 조별로 토론하는 과목이라, 조원들끼리 관계와 협업이 그 학기 학생들의 운명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나는 오리엔테이션에서 주변 학우들에게 친절하라고 말했다. 단지 수월한 조모임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친절은 우리가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실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윤리적 행위이자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힘이다. 이를 간절하게 전달한 후 촉촉한 눈빛의 호응을 기대하던 내 앞에서, 학생들은 대부분 띵한 표정을 지었고, 몇은 피식 웃었다.
요즘 많은 이들에게 친절이란 고객 서비스나 상술의 일부, 혹은 기껏해야 인사치레나 포장일 뿐이다. 게다가 무한 경쟁 사회에서 타인에 대한 친절은 경쟁력을 강화하지 않는다. 학생들의 반응을 짐작했으면서도 그렇게 말한 것은 방탄소년단으로부터 친절함이라는 윤리적 가치의 소중함과 더불어 그것이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현장들을 배우고 경험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일본에서 큰 지진이 발생했을 때 나는 일본 '아미'들이 걱정되었다. 그래서 번역기를 돌려 서툰 일본어로 일본 아미들이 안전하기를 바란다는 짧은 트윗을 올렸다. 나의 팔로어 중에는 일본 아미가 별로 없어서, 그저 기원의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트윗에 대한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답글이 줄을 잇고 트위터 알림창이 이틀 동안 멈추질 않았다. 번역기를 돌린 감사의 답글들에 오히려 미안할 지경이었다. '당신의 친절함에 감사한다', '따뜻한 마음이 고맙다'는 댓글들이 이어졌다. 정확한 상황은 모르지만, 일본의 어느 트위터 유저는 나의 트윗을 인용하며 지진 이후 일본 안에서 발생한 혐오 선동을 반성하기도 했다.
나만이 아니었다. 어딘가에 산불이나 지진이 발생하면, 전 세계의 아미들은 그곳에 살고 있을 아미들을 걱정하고, 그들에게 연대했다. 아미가 되면서 나는 더 넓은 세상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를 이렇게 바꾼 것은 무대 뒤 일상, 인터뷰, 다큐멘터리에 배어나오는 방탄의 친절함과 여기에 호응하는 아미들이었다. 7명의 20대 남성들이 모인 집단에 흔히 있을 법한 서열이나 명령보다는 돌봄이나 양보가 방탄에게서는 더 두드러진다. 서로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양보하고, 밥을 챙겨주고 이불을 덮어주는 사소한 친절은 팬들에게 전달되고, 아미들은 그들을 실제로 본받을 수 있게 된다.
이처럼 방탄은 아미들의 롤 모델이다. 아미들은 그들을 닮고 싶다고 말할 뿐 아니라, 실제로 그들을 닮아간다. 이는 7명의 멤버들이 서로에게, 팬들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사소한 진심' 때문이다. 일상 곳곳에 묻어나는 사소한 친절들은 그들의 예술과 메시지 안에서 세상을 바꾸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힘이 된다.
나는 방탄현상이 보여주는 사회 구조와 시대정신의 변화를 포착하고자 'BTS 예술혁명'을 썼다. 친절함의 가치는 책에 담지 못했으나, '방탄현상'의 핵심 중 하나이기도 하다. 방탄에 대한 열광과 서로를 걱정하는 아미들의 모습에서 배운다. 그동안 얼마나 사람들이 잔인하고 험한 세상에서 힘들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낯익지만 새로운 친절이라는 윤리적 실천이 세상이 원해왔던, 그리고 우리가 돌아봐야 할 가치는 아니었는지.
이지영 세종대 교양학부 교수·'BTS예술혁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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