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비자는 '핀테크 업체 망하면 예탁금 어쩌나' 걱정인데..
[경향신문]
한은, 금융결제원서 충전·거래내역 수집 ‘전금법’ 개정안에 반발
전문가 “소비자 보호로 논의 전환을”…공은 국회로, 25일 공청회
한국은행이 금융위원회가 추진하는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 개정안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양 기관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한은은 핀테크·빅테크의 지불·결제수단을 거친 충전·거래내역을 금융위가 관리하게 되면 중앙은행의 지급결제 권한이 침해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금융소비자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어느 기관이 주도권을 잡느냐보다는 선불충전금 보호를 어떻게 받을지다.
■덩치 커지는 핀테크, 위험 관리 필요
카카오·네이버페이와 같은 간편결제·송금의 지급결제 서비스 규모가 커지면서 전자금융업자의 선불충전금 규모도 대폭 증가하고 있다. 18일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14년 7800억원이던 충전금 규모는 지난해 9월 2조원을 넘어섰다. 전자금융업자의 덩치가 커지는데 파산 위험에 대비하지 않을 경우 이용자 피해가 우려된다. 지난해 6월 독일에서는 1위 핀테크기업 와이어카드가 19억유로(약 2조5300억원)의 분식회계를 한 것이 드러나 파산신청을 했고 그 피해가 이용자들에게 전가되면서 큰 문제가 됐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9월부터 선불충전금을 업체 자산과 분리해 은행 등 외부기관에 신탁하는 ‘전자금융업자의 이용자자금 보호 가이드라인’을 시행하고 있지만 47개 선불업자 중 쿠팡페이·티머니 등 11개사가 여전히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정무위 윤관석 의원이 대표발의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에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용자 예탁금을 고유재산과 구분해 은행 등 관리기관에 예치·신탁하는 방법으로 별도 관리하는 내용과 자금이체업자가 부도났을 때 전자지급거래청산기관으로부터 정보를 제공받은 관리기관이 이용자예탁금 지급을 대행하게 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렇게 별도 관리된 이용자 예탁금은 다른 채권에 우선해 변제하게 된다.
■금융결제원 두고 양 기관 갈등
한은과 금융위의 갈등은 금융위가 이 청산기관으로 금융결제원을 정하면서 시작됐다. 현재 시스템에서는 핀테크 업체들이 이용자별로 얼마를 맡겼는지, 어떤 거래를 했는지 등을 내부 처리하기 때문에 파악하기 어렵다. 금융위는 옵티머스자산운용이나 와이어카드처럼 서류를 위조했을 경우 문제가 커지기 때문에 금융결제원 청산을 거치도록 하자는 것이다. 반면 한은은 금융기관의 청산이 필요하지 않은 내부거래까지 금융결제원 시스템을 통하게 하고, 이것을 근거로 금융위가 금융결제원을 포괄적으로 감독하겠다는 의도로 보고 있다. 한은은 “금융위가 사실상 금융결제원을 통해 네이버와 같은 빅테크 업체들의 모든 거래정보를 별다른 제한 없이 수집하게 된다”며 “이는 가정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모든 가정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해 놓고 지켜보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반발했다. 고동원 성균관대 교수도 지난 16일 토론회에서 “전자지급거래청산업에 대한 금융위의 감독권이 한은의 지급결제 제도 감시 권한과 충돌한다”며 “전자지급거래청산업 도입은 불필요하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빅브라더’ 논란에 대해 청산기구가 평상시에는 개인정보를 기계적으로 처리할 뿐이고 감독당국도 모니터링을 할 수 없게 해놨다고 설명하고 있다.
반면 이순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18일 금융연구원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이용자 예탁금이 이용자별로 예탁·관리되지 않을 경우 수탁 금융회사가 파산했을 때 예금보호가 충분히 보장되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용자 예탁금에 대해 고객별로 예금보호를 적용하려면 고객별 계좌정보 유지 등의 일정한 조건이 충족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외부 청산제도가 고객별 정보관리 측면에서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정성구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도 “청산기관에 대한 과도한 개인정보 이전 우려는 청산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청산기관에 대한 신뢰의 문제”라며 “금융결제원은 금융결제망 운영과 관련 개인정보 처리를 하고 있고 청산기관의 정보 오·남용 방지, 보안 강화를 위한 특칙이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금융정보분석원이 이상·혐의거래를 포착해 문제 거래를 검찰에 통보하는 것처럼 사후 처리하는 방식을 주장하지만 금융위는 실효성이 낮다고 본다. 현재도 하루 평균 1000만건 거래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개정안이 통과되면 종합지급결제사업자가 도입되고 선불충전금 이용 한도도 상향되기 때문에 현재보다 거래량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외부 청산에 대한 양 기관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지만 정작 핀·빅테크 업체들이 도산할 경우 이용자 예탁금을 어떻게 보호할지에 대한 문제는 논의되지 않은 상황이다. 개정안을 둘러싼 금융위와 한은 간 갈등은 금융결제원에 대한 권한이 핵심이다. 근본적으로는 지급결제제도에 대한 감독과 감시권한에 대한 두 기관의 업무 영역 다툼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소비자 보호 중심으로 논의의 방향을 틀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정중호 하나금융연구소장은 “금융위 안처럼 사전적으로 규율할 것인지, 아니면 사후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할 것인지, 또 사전 규율이 필요하다면 어떤 기관이 할 것인지, 한은인지 금융위인지 아니면 제3의 기구인지 논의하는 게 생산적”이라고 말했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25일에는 여야 국회의원들이 참석하는 공청회가 열린다.
임아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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