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나눔가게 앞 수십명 대기..'코로나 생활고'의 풍경
400명 넘게 찾아 예상의 4배
기부금 7000만원어치 물품
10일간 모두 소진 운영중단
[경향신문]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5도까지 내려간 18일 오전 8시. 전남 순천시 ‘권분가게’ 앞에 50여명이 줄을 섰다. 오전 10시 문을 여는 가게 앞에서 사람들은 두꺼운 외투로 몸을 감싼 채 순서를 기다렸다. 이 가게는 1인당 3만원까지 물품을 무료로 가져갈 수 있는 나눔가게다. 조선시대 흉년이 들었을 때 부유층에게 재물 나누기를 권했던 ‘권분(勸分)’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날 가게를 이용할 수 있는 300명에게 주는 번호표는 오전 9시쯤 배부가 끝났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순천시는 시간을 앞당겨 오전 9시부터 가게 문을 열었다. 건물 앞 행렬은 순천시가 권분가게를 연 이후 매일 반복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지자체가 마련한 무료 나눔가게를 이용하는 시민들이 크게 늘고 있다.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으면서 기부금이나 물품이 빠르게 소진돼 일부에서는 운영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순천시의 권분가게는 문을 연 지 열흘 만에 ‘휴장’을 결정했다. 지난 9일 문을 연 권분가게에는 쌀과 라면, 달걀, 과자, 커피, 세제 등 40여개 생활필수품이 진열됐다. 당초 시는 하루 100명 정도가 이용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개장 첫날 400명 넘게 가게를 찾았다. 이후에도 매일 300여명의 사람들이 필요한 물건을 가져가고 있다.
설연휴를 제외하고 이날까지 가게가 문을 연 6일 동안 이용한 사람은 2000여명에 이른다. ‘권분운동’을 통해 모아둔 기부금 7000만원으로 구매한 물건은 열흘도 못 가 동이 났다. 결국 순천시는 19일까지만 권분가게를 열고 잠시 운영을 중단하기로 했다.
일부에서는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은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이용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지만 순천시는 “그런 사람은 극소수”라고 했다. 정은경 순천시 자치지원팀장은 “매일 현장을 확인하고 있는데 ‘얌체시민’은 100명에 3~4명 정도로 미미하다. 대부분은 혼자 사는 노인 등 실제 어려운 사람들”이라면서 “코로나19로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생활고에 처한 것으로 보인다. 권분가게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후원이 꼭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시민들이 가게에서 가장 많이 가져간 물품 1위와 2위는 라면과 달걀이었다. 시는 추가 기부금을 모금하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10여종의 생필품으로 품목을 줄여 다음달 2일부터 가게를 다시 열 예정이다. 이용 대상도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한 시민들 위주로 제한하기로 했다.
경기 ‘그냥드림’도 인파 몰려
“예상보다 심각한 빈곤 방증”
경기도가 지난해 12월29일부터 성남과 광명, 평택의 푸드마켓에서 운영에 들어간 3곳의 ‘먹거리 그냥드림’ 코너를 찾는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경기도는 이곳에 라면과 즉석밥, 즉석식품 등 기부받은 식료품을 비치하고 필요한 사람이면 누구나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먹거리 그냥드림 이용자는 지난 15일 기준 8044명으로 1만명에 육박한다. 그냥드림 역시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일부 물품들은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경기도는 그냥드림이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보고 3월까지 도내 29개 복지관과 노숙인 시설 등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지주연 경기도 복지사업과장은 “취지에 공감한 주민들이 그냥드림 코너에 달걀이나 과일 등을 기부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강현석·경태영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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