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이어 김봉진도.. '벤처 신화' 그들의 기부는 재벌과 달랐다

박지연 2021. 2. 1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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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평범한 회사원에서 자수성가
②사죄 뜻 아닌 자발적 약속
③사재에서 절반 기부
"전례 없는 기부약속 잇따라.. 새 바람 기대"
국내 배달 앱 1위 '배달의민족' 창업자인 김봉진(오른쪽) 우아한형제들 의장과 부인 설보미씨. 우아한형제들 제공

배달의민족(배민)을 창업한 김봉진(45) 우아한형제들 의장이 자신의 재산 중 절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8일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재산의 절반 이상을 내놓겠다”고 밝힌 김범수 카카오 의장에 이어 벌써 두번째 깜짝 선언이다.

이들은 이른바 '흙수저' 출신의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다. 강요나 압박 없이 스스로, 사재를 털겠다고 나선 점도 공통적이다. 재산과 경영권은 당연한 상속의 대상으로 여겨온 한국의 재벌가 문화에서 이들의 '통 큰 선언'이 새로운 기부와 상속 분위기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기대도 커지는 분위기다.

우아한형제들은 김 의장이 글로벌 기부클럽인 ‘더기빙플레지(The Giving Pledge)’의 219번째 기부자이자 첫 한국인으로 이름을 올렸다고 18일 밝혔다. 더기빙플레지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 부부와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2010년 함께 설립한 자선단체다. 약 1조1,000억원(10억 달러) 이상의 자산을 보유해야 가입할 수 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영화 ‘스타워즈’를 만든 조지 루카스 감독 등이 회원이다.


김봉진의 꾸준한 기부 재조명

김 의장은 평소에도 꾸준히 기부를 실천했다. 그동안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71억원을 기부하는 등 누적 기부액이 100억원을 상회한다. 그는 기부선언문에서 “2017년 100억원 기부를 약속하고 이를 지킨 것은 지금까지 인생 최고의 결정이었다고 생각하며 이제 더 큰 환원을 결정하려 한다”고 밝혔다.

배민을 국내 배달앱 1위로 키운 김 의장은 2019년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에 배민을 40억 달러(4조4,000억원)에 매각했다. 당시 매각 대금으로 받은 DH 주식 가치가 뛰어 현재 그의 재산은 1조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기빙플레지 가입 조건을 봐도 그의 기부금은 5,500억원 이상으로 예상된다.

언제,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재산을 환원할 것인지 구체적 계획은 아직 밝히지 않았다. 다만 교육 불평등 문제 해결, 문화 예술 지원 등과 관련된 자선단체를 돕는데 기부금이 쓰이도록 하겠다는 게 그의 계획이다.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을 보며 더기빙플레지 선언을 꿈꿨다는 김 의장은 선언문에서 “제가 꾸었던 꿈이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도전하는 수많은 창업자들의 꿈이 된다면 더없이 기쁠 것 같다”고 밝혔다.

우아한형제들은 18일 김 의장이 세계적 기부클럽인 '더기빙플레지(The Giving Pledge' 219번째 기부자로 등록됐다고 밝혔다. 더기빙플레지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부부가 2010년 함께 설립한 자선단체다. 우아한형제들 제공

김범수·김봉진의 기부가 특별한 이유

지난 8일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의장도 재산의 절반 이상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현재 지분가치로 볼 때 5조원이 넘는 액수다. 두 의장의 ‘기부 선언’이 특별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그동안 ‘부의 대물림’을 당연시해온 재벌기업과의 차별성이다. 간혹 비리가 밝혀지거나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을 때 마지못해 사죄의 의미로 기부에 나서는 그림은 익숙하다. 반면 두 의장은 자발적으로 기부를 약속했다.

회삿돈이 아닌 사재(私財)로 기부를 선언한 점도 그간의 기부와 다른 점이다. 국내 여러 기업은 사회공헌 기금을 마련해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면서 기업 차원에서 마련한 예산을 환원한 것이다. 사랑의열매에 따르면 1998년 설립 이후 기부금 비율은 개인이 32%, 기업(법인)이 68%다. 법인 기부금이 개인보다 두 배 이상 많다.


개인 기부→법인 기부→ 다음은?

전문가들은 김범수·김봉진 의장의 통 큰 기부가 우리 사회에 새로운 기부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박두준 한국가이드스타 연구위원은 “돈을 모아서 사회에 꼭 필요한 데 쓰겠다는 목표를 둔 벤처 기부자가 늘고 있다”며 “IT 산업으로의 전환기에 사회적으로 부각되는 기업에서 회삿돈이 아닌 개인 돈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모델을 제시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강요가 아닌 자발적으로 하는 기부가 새로운 문화가 될 수 있어 더욱 긍정적 신호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개인의 기부로 시작해 기업의 사회환원으로 안착한 기부문화가 이제 또 한 차례의 변곡점을 맞았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관계자는 “98년 사랑의열매 설립 이후 법인 기부금 비율이 꾸준히 높았는데, 2007년부터는 개인 중에서도 목돈을 내놓는 기부자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사랑의열매 회원 중 5년 내 1억원 이상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가입자는 지난 10일 기준 2,547명에 달한다. 2007년 출범 이후 연간 200~300명이 꾸준히 신규로 가입한다. 이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전례를 찾기 어려운 기부 약속이 연달아 나온 만큼 두 의장의 선언으로 새로운 기부바람이 생기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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