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간 뮤지컬.. 명성황후의 '진짜 얼굴'을 묻다
서울예술단 2020년 작품 영상에 옮겨
현장감·웅장한 음악 등 오롯이 담아
국모·마녀라는 단편적 해석 벗어나
새로운 시선으로 삶과 죽음 들여다봐
주인공 차지연 "눈빛·떨림까지 생생"
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895’는 2013년 초연 당시 객석 점유율 99.6%를 기록하며 서울예술단의 대표 레퍼토리로 떠올랐다. 2015년 재연과 2016년 3연에 이어 4년 만인 2020년 7월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4연의 막을 올렸다.
24일 상영관에서 개봉할 공연실황 영화 ‘잃어버린 얼굴 1895’는 2020년의 4연 작품을 영상에 옮긴 것이다. 단순히 기록용으로 카메라에 담은 게 아니라 유료 스트리밍, 영화관 개봉, DVD 출시까지 보다 많은 관객을 만나기 위한 구체적 계획에 따라 제작된 영화다. 공연장 특유의 현장감, 웅장한 음악과 화려한 퍼포먼스의 스펙터클을 스크린에 오롯이 담기 위해 9대의 4K카메라 촬영과 5.1채널 사운드 믹싱으로 완성했다.
영화는 단 한 장의 사진도 남기지 않은,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명성황후 이야기를 담은 팩션 사극이다. 국모 혹은 마녀라는 단편적 해석에서 벗어나 그의 삶과 죽음을 새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본다. 이미 잘 알려진 역사적 인물의 일대기를 들려주기보다는, 명성황후가 겪었던 사건들을 되짚어간다. ‘고종의 사진은 많이 남아있는데, 명성황후의 사진은 단 한 장도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 명성황후가 시해된 1895년 을미사변의 밤과 그를 둘러싼 주변인물, 정치적 세력다툼을 또 다른 관점으로 풀어낸다.
엇갈리는 평가 속 명성황후가 아닌 역사의 격동기,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투쟁했던 한 여성, 개인에 주목한다. 그의 사진을 찾아 나서는 여정 속에서 관객들은 한 인간으로서의 명성황후가 겪은 아픔과 슬픔, 욕망 등과 마주하게 된다.
조선의 마지막 왕비의 얼굴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영화는 시종일관 명성황후라는 이름 위에 겹겹이 덮인 가면을 걷어내고 그의 진짜 얼굴을 묻는다. 영웅으로 해석하거나 희대의 악녀로 박제하지 않고, 임오군란부터 갑신정변, 을미사변까지 역사의 소용돌이 속 삶을 다각도로 조명하면서 마침내 보다 입체적인 캐릭터를 빚어낸다.
1897년 고종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11월 22일을 명성황후의 국장일로 선포한다. 죽은 지 2년여 세월이 지나서야 명성황후의 혼령은 국상일 전날 밤, 생전에 남긴 흔적과 기억을 되짚어 한 사진관을 방문한다. 사진관 벽면을 채운 궁궐 풍경과 왕실 가족사진들을 보면서 자신의 생전 시절로 돌아간다. 궁녀의 무리가 그의 행적을 따른다. 극중 생전의 황후는 왕비로 칭한다.
사진관에서 일하는 휘는 살아생전의 왕비와 악연을 맺은 인물이다. 임오군란 때 휘의 어미는 피난 온 왕비를 못 알아보고 내뱉은 험담 탓에 매 맞아 죽는다. 고향 집을 부수고 어미를 죽게 한 왕비에게 복수하기 위해 휘는 왕실 촉탁 일본인 사진사 덴신의 조수로 들어가 때를 엿본다. ‘한성순보’ 기자로 조선에 들어온 기구치는 ‘민비 암살’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왕비의 얼굴이 박힌 사진을 구하려 애쓴다.
조선은 청과 일본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한다. 왕비는 일본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기 군대를 가지려 결심한다. 조선 왕비의 얼굴을 궁금해하는 외국 언론과 세간의 관심, 정적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얼굴을 드러내는 것을 저어하면서 사진 박기를 거부하는데, 1895년 을미사변의 밤은 기어이 오고야 만다.
명성황후 역을 맡은 차지연은 시사 후 “세세한 부분들, 배우들의 눈빛이나 손끝 하나의 떨림까지도 포착했고, 다이내믹한 움직임들을 역동적으로 잡아냈다”며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긴다”고 관람 소감을 밝혔다. 그는 “무대 예술은 사람과 사람 간의 에너지, 땀, 숨소리가 어우러져 공간을 가득 채우고, 우리를 다른 세상으로 데려가 주는 마법을 부리는데, 스크린을 통해서도 감정과 움직임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을까 걱정이 컸지만, 기우였다”며 웃어 보였다.
“특히 무대 예술은 주로 서울에서 이뤄지는데, 이를 영화로 만들어 전국 40여개 상영관에서 개봉하니 지방 관객을 포함한 더 많은 사람이 뮤지컬을 즐길 수 있을 거예요. 극장의 뮤지컬을 스크린으로 본다는 게 아직 낯설기는 하지만, 또 하나의 장르가 생겨났다고 여기면 될 것 같아요.”
명성황후 배역에 중점을 둔 부분을 물었다. “초연부터 4연까지 연기하는 동안 제게도 큰 변화가 생겼어요.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 거예요. 삶에서 느낀 것들을 작품 안에 고스란히 담아내는 거죠. 이 무대 위에, 이 작품 안에, 이 역할로 두 발을 뿌리내리고 있구나. 삶에 울림을 주는 작품이라서 언제나 함께하고 싶은 바람이 있어요.”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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