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한파 정전'에 불붙은 '그린 뉴딜' 공방

이효상 기자 2021. 2. 18.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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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만가구 여전히 전력 끊겨
공화 "풍력발전 멈춰 치명"
실제 수요 화력발전이 60%
민주 "기후변화, 본말전도"

[경향신문]

담요 뒤집어 쓰고 가스 사려는 줄 기록적인 이상 한파로 수백만가구에 전력이 끊긴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17일(현지시간) 담요를 뒤집어쓴 시민들이 프로판가스를 사기 위해 추위에 떨며 한 시간 넘게 줄을 서고 있다. 휴스턴 | AP연합뉴스

미국 텍사스주의 대규모 ‘블랙아웃(정전)’ 사태가 나흘째 이어지면서 미국 정가에서는 그 원인과 책임을 둘러싼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공화당은 텍사스의 풍력발전소 가동 중단을 빌미로 조 바이든 행정부의 ‘그린 뉴딜’ 정책을 걸고 넘어졌다. 민주당과 기후변화 연구자들은 이들 주장이 사실관계를 오인한 데다, 본말이 전도됐다며 일축했다.

텍사스주 전력망을 관리하는 텍사스전기신뢰위원회(ERCT) 대변인은 17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통해 “160만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8GW(기가와트)의 전력을 복구했지만 여전히 120만가구는 정전 상태에 놓여 있다”고 밝혔다. 평균 가구 규모를 기준으로 추산하면 360만명은 여전히 전력 공급을 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주부터 미국 중부 전역에 기록적인 한파가 이어지며 최소 31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텍사스주는 평년 기온을 훨씬 밑도는 이상 혹한에 전력 공급까지 차질을 빚으며 지난 14일부터 순환 정전에 들어갔다. 석탄·가스 화력발전소부터 풍력·태양광발전소까지 전원 종류에 관계없이 대부분 발전소가 가동을 멈췄기 때문이다.

공화당 소속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가 바이든 정부의 그린 뉴딜 정책을 때리며 선공에 나섰다. 그린 뉴딜 정책은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인 석탄화력발전소 등을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순차적으로 대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애벗 주지사는 전날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풍력발전소 가동 중단을 언급하며 “그린 뉴딜이 얼마나 치명적인 거래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했다. 또 “여름에 냉방을 하고 겨울에 난방을 하기 위해서는 텍사스뿐 아니라 다른 주에도 화석연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도 했다.

그러나 텍사스의 블랙아웃에는 풍력발전소보다 화력발전소의 생산 차질이 보다 큰 영향을 끼쳤다. ERCT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기준 텍사스 지역에서 가동이 중단된 발전소의 발전용량을 모두 합치면 43GW에 이른다. 이는 860만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규모다. 이 중 석탄·가스 등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화력발전소의 발전용량 손실이 26.5GW로 전체의 60%를 차지했다. 날개나 전지판이 얼어붙어 가동이 중단된 풍력·태양광 발전소의 발전용량은 17GW로 이보다 적었다.

게다가 당초 텍사스는 겨울철 전력피크 때 전체 전력수요의 10%가량만을 풍력에너지로 공급할 계획이었다.

이상기후가 예견됐음에도 미리 대처하지 못한 텍사스주 정부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텍사스주는 2011년에도 이상기후로 인한 전력공급 차질을 경험했다. 하지만 더운 날씨에 맞춰 설계된 발전설비를 교체하지 않았다. 이번 혹한에도 설비 다수는 영하의 기온을 견디지 못하고 가동을 멈췄다. 다른 주와 연결되지 않은 독립적인 전력망도 원인이 됐다. 평상시에는 연방정부의 조사를 덜 받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지만, 지금 같은 유사시에는 주변 주로부터 전력을 끌어오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 소속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은 트위터에 “애벗 주지사는 TV에서 손가락질할 게 아니라 사람들을 돕기 시작해야 한다”며 “자신의 주의 에너지 공급에 관한 책을 읽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극단적 기상현상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의 징후인 만큼 바이든 행정부가 이번 블랙아웃을 기후변화 대응의 시급성을 강조하는 계기로 삼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북극의 온난화로 인한 극소용돌이의 이례적인 남하가 남부 텍사스의 기록적 한파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바이든 정부의 녹색경제 사업에는 추가 송전선 설치 및 전력 저장시설 설치, 전선의 지중화, 전력망 개선을 위한 예산이 포함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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