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년에 무려 1만167건'..대법원 민사소송 절반 차지한 '소송왕'

민사 상고심 2만건으로 급증
법조계 "통계착시 교정했어야"

대법원이 공식 통계가 왜곡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방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명의 '소송왕'이 지난해 대법원에 접수된 민사 사건의 절반가량을 혼자 제기하는 등 통계를 큰 폭으로 왜곡시키고 있는데, 내부용으로는 그와 관련된 사건을 배제한 통계를 산출하면서도 공식 통계에는 관련 내용을 전혀 나타내지 않은 것이다.

18일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소송왕' A씨가 대법원에 상고한 민사 사건은 1만167건으로, 지난해 민사 상고심 총 접수 건수인 2만1435건의 47.4%를 혼자 제기했다. 그는 2017년에도 2191건, 2018년과 2019년에는 각각 6129건과 5940건의 상고심을 접수시켰다. A씨는 교통사고 관련 소송에서 패소한 뒤 재심 청구 소송 등을 수년에 걸쳐 계속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국민의 재판 청구권과 관련된 부분이 있어 A씨에 대해 특별히 대응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전자소송을 오·남용하는 사례에 대해서는 등록을 말소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로 인해 사건 관련 통계가 심각하게 왜곡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법원 통계월보에 따르면 대법원 민사 미제사건은 2017년 7190건에서 2020년 1만9235건으로 약 2.65배가 됐다. 그러나 대법원에서는 A씨의 사건을 제외한 실제 미제는 오히려 줄었다고 보고 있다. 내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A씨 관련 미제 사건은 1만4098건으로, 이를 제외할 경우 총 민사 상고심 미제는 5000건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또 지난해 처리한 민사 상고심 1만3708건 가운데 상고기각은 총 1만77건으로 약 73.5%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A씨의 사건을 제외할 경우 실제 기각이나 파기환송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 현재 공개된 통계로는 파악할 수 없다. 1심과 2심을 거쳐 상고를 했기 때문에 1심과 2심 통계 역시 마찬가지로 왜곡된 상태다.

대법원에서는 2019년에도 A씨의 문제를 인식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으나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A씨를 제외한 통계를 함께 공개하는 방안도 고려했으나 실행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변호사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변호사는 "사실이라면 대법원 통계의 신뢰성을 믿을 수 없다는 의미"라며 "당연히 착시 현상을 교정한 통계를 잡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정희영 기자 / 홍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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