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의 특급논설] 변창흠 장관님, 겸손해야 이깁니다
벌써 재산권 침해 논란 일어
문재인정부 4년 돌아보면
과도한 자신감이 화 불러
집값 전망 번번이 어긋나
신뢰 회복이 최우선 과제
[파이낸셜뉴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56)이 "(공공주도 재건축을) 안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변 장관은 16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사업을 신속하게 할 수 있고, 이익이 되고, 믿을 수 있고, 전문성이 있고, 품질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안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2·4 대책에서 2025년까지 서울 32만호를 비롯해 전국에 83만호를 공급하기로 했다. 그중에서도 알맹이는 공공주도형 서울 재건축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6일 국토부 업무보고에서 "변창흠표 부동산 정책을 반드시 성공시켜 국민들이 더 이상 주택문제로 걱정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정책에 장관 이름을 붙여 '표'라고 부른 것은 이례적이다. 장관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시장이 변 장관의 예측대로 2·4 대책에 적극 호응할까. 문 정부 4년을 돌아보면 신뢰도가 뚝 떨어진다. 이 정부에서 쏟아진 부동산 말말말의 흑역사를 짚어보자.
2019년 11월 문 대통령은 "부동산 문제는 우리 정부가 자신 있다고 장담하고 싶다"며 "대부분 기간 부동산 가격을 잡아왔다"고 말했다. "전국적으로는 부동산 가격이 오히려 하락했을 정도로 안정화되고 있다"고도 했다.(MBC '국민과의 대화').
2020년 8월 수석보좌관 회의에선 "종합대책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과열 현상을 빚던 주택 시장이 안정화되고 집값 상승세가 진정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며 "앞으로 이런 추세가 더욱 가속화되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종합대책은 문 대통령이 '주택·주거 정책의 종합판'이라고 평가한 8.4 대책을 말한다.
하지만 시장은 대통령의 예상과 전혀 다른 궤도를 그렸다. 어쩔 수 없이 문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주거 문제의 어려움으로 낙심이 큰 국민들께는 매우 송구한 마음"이라고 머리를 숙였다.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은 2017년 6월 23일 취임사에서 "최근 집값 급등은 투기 수요 때문"으로 못박으면서 "부동산 정책은 투기를 조장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정부가 결정해야 한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 달라"고 말했다. 어쩐지 좀 으스스하다. 같은 해 8·2 대책이 나온 직후엔 "내년(2018년) 4월까지 시간을 드렸으니 자기가 사는 집이 아닌 집들은 좀 파시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작년 8월엔 이른바 영끌 논란을 불렀다. 김 전 장관은 국회 국토교통위 전체회의에서 "법인과 다주택자 등이 내놓은 것을 30대가 영끌해서 샀다는 데 대해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영끌은 영혼까지 끌어모았다는 뜻이다. 영끌 답변은 앞으로 집값이 떨어질 텐데 뭘 모르는 30대가 무리수를 둔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그때 영끌로 집을 산 30대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난해 12월 퇴임사는 급반전이다. 김 전 장관은 "저는 이제 미완의 과제를 남기고 떠난다"며 "집 걱정을 덜어드리겠다는 약속을 매듭짓지 못하고 떠나게 돼 무척 마음이 무겁고 송구하다"고 고개를 떨궜다.
'부동산은 악이다.'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관통하는 철학이다. 나쁜 놈과 싸우니 도덕적으로 꿀릴 게 없어 보인다. 그래서 그런가, 자세가 사뭇 고압적이다.
문 대통령은 작년 1월 신년사에서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정부 출범 첫 해인 2017년 8월 당시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집 가지고 장난치지 마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을 보는 이 정부의 속내가 잘 드러났다.
그러나 말이 세다고 시장을 이기는 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취임 후 첫 국회 연설에서 "집값만큼은 대통령인 제가 직접 챙기겠다"고 말했다. 2005년엔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부동산만은 확실히 잡겠다"고 다짐했다. 2005년 당시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은 "헌법 만큼 고치기 어려운 (부동산) 제도를 만들겠다"고 했다. 아뿔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 따르면 부동산 값은 참여정부와 문재인정부에서 가장 높게 뛰었다. 이런 역설이 있을까.
변창흠 장관은 공공주도 재건축을 "안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안 하면 바보라는 건가. 이건 아니다. "안 할 이유가 없다"고 데퉁스럽게 말하는 대신 "시장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겠다"고 몸을 낮춰야 한다. 신뢰는 겸손에서 온다. 벌써부터 토지 수용을 놓고 재산권 침해 논란이 불거졌다. 정부는 법에 따른 정당보상을 강조하지만 아무리 돈을 준대도 자기 땅을 선뜻 내놓을 사람은 없다.
지금 시장은 정부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곧이 듣지 않는다. 생각해 보라. 지난 4년 간 정부는 자그마치 25차례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누가 봐도 실패의 연속이다. 그래놓고 "안 할 이유가 없다"하면 누가 수긍하겠는가.
국토부는 2·4 후속 대책을 속속 내놓을 계획이다. 변창흠표 정책이 시장에 정착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 덕에 집값, 전세값도 잡히면 좋겠다. 다만 그 전에 변 장관이 신뢰 회복에도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기 바란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고 했다. 특단의 공급보다 더 급한 게 특단의 신뢰 회복이다. 그 점에서 변창흠의 두 달은 실망스럽다.
변 장관에 당부한다. 어깨에 힘부터 빼라. 어떤 운동도 힘을 빼야 고수다. 9회말 투아웃에 역전 홈런을 치는 게 진짜 스타다. 잔뜩 힘을 넣으면 헛스윙하기 십상이다. 변 장관은 과도한 관심을 받고 있다. 부담에 짓눌려, 하늘이 두 쪽 나도 2·4 대책을 꼭 성공시켜야 한다고 다짐하는 순간 바로 헛스윙이다. 겸손하게, 더 낮은 자세로 시장을 설득하기 바란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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