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다] 한 시대가 끝나던 날 / 김태권

한겨레 2021. 2. 18.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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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는 어릴 때부터 책을 읽었다.

이 일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한 시대가 끝났다는 느낌이 든다.

<장미의 이름> 을 읽을 때만 해도 고전과 현대를 잇고 지식인과 대중을 잇는 이런 작품이 쏟아져 나와, 소설 속 수도원 같은 답답한 옛 세상이 곧 사라지리라고 나는 착각했다.

에코 같은 작가는 자주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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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다]

움베르토 에코 (1932~2016)

움베르토 에코는 어릴 때부터 책을 읽었다. 그런데 그때는 파시스트 독재자 무솔리니가 이탈리아를 다스렸다. 그래서인지 에코는 평생 두 가지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첫째, 파시즘이 되살아나도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면 어떡하나? 이 걱정을 담은 글이 <장미의 이름>과 ‘프란티에게 바치는 찬사'와 ‘원형파시즘에 대하여'다. 둘째, 사실과 허구를 사람들이 잘 구별하지 않는다는 고민이다. <푸코의 진자>와 <바우돌리노>에서는 사실처럼 보이는 허구의 위력을, 유작인 <제0호>에서는 사실을 허구처럼 보이게 만드는 보수언론의 수법을 다루었다.

때로는 두 문제를 동시에 고민했다. 오래전부터 에코는 <시온장로 프로토콜>이라는 괴문서의 기원을 추적했다. 파시스트 인종주의자들은 이 문서가 진실이라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옛날 소설을 베껴 날조한 거짓 문서였다. 에코는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해 ‘거짓의 힘'과 <프라하의 묘지>를 썼다. 물론 나의 해석일 따름이다. 번역가 이세욱의 지적처럼 “에코의 문학 세계가 풍부하다 보니 사람마다 논점이 다르고 주목하는 바가 다르니” 말이다.

2016년 2월19일은 에코가 세상을 떠난 날이다. 이 일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한 시대가 끝났다는 느낌이 든다. ‘옛 세상이 저물고 이성과 문화가 대접받는 새 세상이 열린다'고 꿈을 꾸던 시절 말이다. <장미의 이름>을 읽을 때만 해도 고전과 현대를 잇고 지식인과 대중을 잇는 이런 작품이 쏟아져 나와, 소설 속 수도원 같은 답답한 옛 세상이 곧 사라지리라고 나는 착각했다. 아니었다. 에코 같은 작가는 자주 나오지 않는다. 지금 와 생각하니,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재가 되어 사라지는 쪽은 소설에서처럼 도서관의 고전 책더미일지도 모르겠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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