셈법 복잡한 日 '위안부' ICJ 회부 추진.."국제법적 시각에서 아쉬워"

이소현 2021. 2. 18.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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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법재판소(ICJ) 회부를 둘러싼 우려
ICJ에서 '위안부' 전쟁범죄로 확인 받더라도
최근 배상 판결까지 잃을 게 더 많다는 의견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3) 할머니가 대표로 나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회부해 달라고 공개 요청했지만, 국제법을 전문으로 다루는 학계에서는 해당 사안을 너무 급히 추진한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피해 할머니들이 본질적인 요구사항인 일본의 자발적인 책임 인정과 사죄가 ICJ에 넘겨진다고 해도 보장하기 어렵고, 그동안 위안부 운동에서 이뤄온 성과마저 모두 잃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16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유엔 국제사법재판소 회부 촉구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익명을 요구한 국내에서 권위 있는 국제법학자는 18일 페이스북을 통해 “ICJ 회부 추진위의 의견은 이렇게 서둘러서 발표해야만 했는지 적어도 국제법적 시각에서는 개인적으로 참 많이 아쉽다”고 밝혔다.

ICJ 회부 논의는 충분한 공부와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는 지적이다. ICJ에서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해결하자는 움직임은 1991년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첫 공개 증언 이후 30년 만에 처음이다.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등 시민단체가 1994년 네덜란드 헤이그의 상설중재재판소(PCA)에 맡기려 했지만, 일본 정부가 거부하면서 무산된 바 있다.

무엇보다 유엔의 주요 사법기관 중 하나인 ICJ의 판단을 받으려면 분쟁 당사국 간 합의가 필요하다. 한국 정부가 재판에 회부하겠다고 결정해도 일본 정부의 동의 없이는 회부가 어렵다. 아무런 관할권 근거 없이 한 국가가 일방적으로 회부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예외 사례에 해당한다. 국제법학계에 따르면 만약 한 국가가 일방적으로 회부하면 ICJ는 피제소국이 실제로 응하지 않는 한 간단한 보도자료 배포 외에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제소국이 제출한 소장이 ICJ 홈페이지에 실리지도 않고 사건도 정식 등록되지 않는다.

그는 “최소한 ICJ 회부 관련 논의는 국제재판의 실제 절차와 함의에 대한 깊은 지식과 고민이 필요하고 할머니들의 최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전략적 사고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ICJ 판단을 받아 ‘잃는 것’이 클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는 “지금까지 일본 정부는 위안부 제도가 당시 국제법상 범죄였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동시에 적극적으로 부정하지도 않아 왔다”며 “그 문제는 회피한 채 일본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 이 문제는 다 해소됐다는 주장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용수 할머니가 대표로 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ICJ 회부 추진위원회’는 위안부 제도가 당시 국제법을 위반한 전쟁범죄로 법적 책임이 있다는 입장이지만 개인 배상청구권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포기됐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는 “ICJ 판결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제도가 당시의 국제법을 위반한 범죄라는 사실을 설사 확인받더라도, 절차적으로 개인 배상청구권은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포기됐다”며 “만약 ‘한국 법원이 일본의 주권면제를 존중해야 한다’고 ICJ가 판단하게 되면 그 폐해는 실로 심각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국제관습법에 따르면 주권 국가는 다른 나라 법정에 서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는데 이를 주권면제라고 부른다.

오히려 지금까지 이뤄온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성과가 무의미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그는 “1990년대 이후 유엔 등 국제사회를 통해 이루어 온 노력들과 최근 서울중앙지법 판결까지를 모두 무(無)로 돌려버리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청구권 협정 및 국가면제 불인정에 따른 국제법 위반이라는 일본의 주장에 힘을 싣는 격이기 때문이다.

또 ICJ 회부 과정에서도 첨예한 쟁점이 존재한다. 그는 “정확히 무슨 법적 문제를 판단해달라고 부탁할지 특별협정 형식을 작성하게 되는데 이 협정의 내용에 따라 관할권의 범위가 한정되며 소송절차의 형성도 결정된다”며 “설사 ICJ를 가기로 큰 틀에서 합의하더라도 특별협정 내용 합의 자체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일간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뿐만 아니라 강제징용, 원폭피해, 사할린한인, 독도영유권 등 여러 이슈가 있는 점도 ICJ 회부 건에 대해서 정치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는 “일본이 우리에게 불리한 쟁점들을 제기하면 사법재판소는 양국의 요청사항을 모두 판단할 여지가 높고 이 경우 다른 한·일간 과거사 문제로 불똥이 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앞서 이용수 할머니는 지난 16일 기자회견에서 “나는 지금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며 “이제는 방법이 없다. 우리 정부가 국제법으로 일본의 죄를 밝혀달라. 일본이 잘못을 깨닫고 반성하도록 ICJ에 판단을 받아달라”고 호소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ICJ 회부 추진위원회는 “일본 정부가 지난 1월 위안부 제도의 주체가 일본 정부라는 점을 인정한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을 일개 한국 국내 법원의 판결로 여기고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권위 있는 ICJ로 갈 것을 제안했다. 또 이 판결이 금전배상을 명령하는 것에 그쳐 일본의 진정한 법적 책임 인정, 역사교육 반영 등 피해자 인권 구제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소현 (atoz@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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